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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버거웠는데… 90만명 “내년부터 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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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버거웠는데… 90만명 “내년부터 숨통”

입력
2017.08.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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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비 내고 나면 한달 5만원”

박탈감 느끼던 빈곤층 여건 개선

생활비 없으면 제자리 수준

“실질적인 소득 보전 대책을”

서울 강북의 한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하는 박금자(67·가명)씨의 방은 9.9㎡에 불과하며 창문도 없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두 번 쓰러진 후 입원비로 700만원을 쓰고 보증금 없는 곳을 찾아 이곳으로 이사했지만, 박씨는 “언제 다시 창문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서울 강북의 한 고시원에서 홀로 생활하는 박금자(67·가명)씨의 방은 9.9㎡에 불과하며 창문도 없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두 번 쓰러진 후 입원비로 700만원을 쓰고 보증금 없는 곳을 찾아 이곳으로 이사했지만, 박씨는 “언제 다시 창문 있는 집에서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서울 금천구의 보증금 200만원, 월세 15만원의 13㎡(약 4평)짜리 단칸방. 홀로 사는 김순옥(83ㆍ가명)씨의 보금자리이자 전 재산이다. 한 사람이 몸을 누이면 꽉 들어차는 공간엔 살림살이들이 빼곡하다. 김씨는 집에서 밥을 지어 먹을 수가 없다. 집이 비좁아서가 아니다. 월 수입의 전부인 기초연금(20만6,000원)으로 월세를 내면 남는 돈은 고작 5만원 남짓. 수입의 4분의 3 가량(72.8%)을 주거비로 쓰니 생활비는 턱 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김씨는 복지관에서 독거노인을 위해 챙겨주는 반찬 배달을 기다리고, 점심은 동네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다.

13일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부양의무제도를 주거급여에서만큼은 완전히 없애기로 한 것은 김씨처럼 주거빈곤층의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제 김씨는 2000년부터 총 4차례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했지만 모두 탈락했다. 소득(재산 환산 포함)은 중위소득 30% 이하로서 주거급여(중위소득 43% 이하) 대상이지만, 출가한 외동딸이 부양의무자라는 이유에서다. 시부모를 전적으로 부양하는 딸 부부는 김씨까지 돌볼 여력이 없다. “자식에게 기댈 수 없다”는 김씨는 17년째 애만 태웠다.

지난 10일 정부가 발표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18~2020년)’에 따르면 김씨는 내년 10월부터 주거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때부터 부양의무자의 소득ㆍ재산을 따지지 않고 주거급여가 지원되며, 김씨는 주거비(임차료 지원금) 15만원을 받아 기초연금을 오롯이 생활비로 쓸 수 있다. 김씨처럼 추가 혜택을 받을 사람은 약 90만명으로 추산된다.

현행 주거기본법 제2조는 ‘국민은 쾌적하고 안정적인 주거환경에서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지난해 기준 전국 102만7,000여가구가 최저주거기준(1인 가구 14㎡ 이상)에 못 미치는 곳에서 살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4월 발표한 ‘2016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주거빈곤에 시달리는 이들 중 59.9%는 월세를 내고, 51.7%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올해 말 수도권 주택보급률은 100.1%로 전망되지만, 김씨와 같은 주거 빈곤층은 월세에 쪼들려 입에 풀칠도 벅찬 상황이다.

‘2017년 기초생활보장 실태조사’에 따르면 빈곤층이 생활 영역별로 느끼는 박탈감은 주거영역에서 가장 심각했다. 수급가구의 47.1%, 비수급 가구(중위소득 30~40%)의 47.6%가 주거 영역에서 박탈감(물질적 결핍, 불안, 자괴감)이 컸다. 비수급 가구를 보면 의료(29.9%), 식생활(29.8%), 의생활(19.9%), 교육(1.7%) 순으로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배병준 복지부 복지정책관은 “수급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데 힘쓰는 동안 정부 지원으로부터 소외된 비수급 빈곤층 상황이 심각해졌다”며 “짝눈이었던 정부 정책을 바로잡으려면 비수급 빈곤층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혜승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주거수준의 주거생활 영위를 위해선 임차료 지원 수준을 더 높여야 하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제 폐지 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거비가 지원돼도 생활비가 없으면 생활수준은 나아질 수 없다”며 “생계급여에 대한 부양의무 기준을 폐지해 실질적인 소득 보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급격히 늘어날 재정 부담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빈곤문제를 기초생활보장제도로만 해결하려면 수급자가 빠르게 늘어나 재정 부담이 크다”며 “자활능력을 키우기 어려운 노인은 사회보험 등을 확대해 수급자로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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