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차 회계사: 초봉이 3000만원 후반, 파트너 돼야 연봉 뛰는데
소형 로펌 3년 차 변호사: 월급 대기업·금융기관 수준인데 쩨쩨하다 할까 봐 눈치
특허법인 2년 차 변리사: 초봉 4500만원가량 받아 전셋돈 마련 '錢錢긍긍'
개인병원 페이닥터: 억대 연봉은 대형 병원 의사들 얘기, 주5일제는 꿈도 못 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누구나 꿈꾸는 전문직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시에 붙으면 모교 정문 앞에 이름 석자가 새겨진 축하 플래카드가 붙는다. 의사 사위 얻으려면 열쇠 3개(집 자동차 병원)는 있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이들 ‘사자 돌림 직업’를 위한 중매 시장과 중개인(일명 마담뚜) 직업이 성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여전히 의대에는 수능 성적 상위 2%(서울 소재 의대는 0.1%)의 우수학생들이 몰리고 있고, 단지 변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서른, 마흔이 넘어 로스쿨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지만, 과거처럼 자격증만으로 왼손에는 돈, 오른손에는 명예가 보장되던 시절은 지났다.
이것도 다 시장원리 때문이다. 변호사든 의사든 회계사든 선발인원이 많아지다 보니, 즉 공급이 증가해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자 돌림 직업’을 갖고 사회에 첫 발을 뗀 2030세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고소득? 결혼하려면 대출 필수
김광식(36ㆍ가명) 변호사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모은 돈으로 지방대 로스쿨을 나와 현재 소형 로펌에서 일하고 있다. 김앤장이나 광장, 태평양 같은 초대형 로펌 변호사와는 많은 부분이 다르다.
3년 차인 그의 월수입은 500만원 안팎.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 직원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적잖은 부담을 겪는다고 했다.
“한번은 축의금으로 5만원 넣었다가 ‘째째하다’고 소문이 나 곤욕을 치렀습니다. 후배들을 만날 때도 삼겹살 집에 가면 표정부터 달라져요. 그래서 경조사비는 무조건 10만원 이상이고, 술을 사도 소고기만 먹습니다. 솔직히 연봉을 까고 싶지만 누가 믿기나 할까 싶고 구차해질 것 같아서 그러지도 못합니다.”
2010년 회계사 시험에 합격해 회계법인에서 일하는 박철현(31ㆍ가명)씨도 고소득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부터 젓는다. “초봉이 3,000만원대 후반이었는데 10년 전과 똑 같은 수준입니다. 물가나 다른 대기업 임금인상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우리 월급은 하락한 셈이지요. 물론 파트너가 되면 연봉이 드라마틱하게 뛰지만 요즘은 파트너 되기 쉽지 않습니다. 젊을 때부터 파트너가 된 시니어 파트너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어 인사가 적체되고 있습니다.”
그는 일반 샐러리맨과 별반 처지가 다르지 않다고 했다. “회계사라고 하면 결혼 할 때부터 내 집에서 살 것이라 생각하는 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내 집은커녕 연봉 5,000만~6,000만원으론 1~2년 직장생활 해서 서울에 전세 얻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특허법인 근무 2년 차로 4,500만원 가량의 초봉을 받았다는 변리사 조현아(29ㆍ가명)씨 역시 “결혼 예정인 남자친구도 소위 전문직이지만 둘의 수입으로는 회사와 가까운 강남에 전세 얻기도 힘들다. 대출을 받거나 아니면 강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의사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고 했다. 대형병원 월급의사들의 경우 대부분 억대 연봉을 받지만, 중소형 병원이나 개인병원의 페이닥터들은 그에 훨씬 못 미친다. 대형병원 월급의사인 최성호(33ㆍ가명)씨는 “10년 전 1~3년 차 연봉이 1억원 안팎이었는데, 지금도 거기에서 크게 오르지 않았다. 물론 우리 사회의 평균 급여에 비한다면 많은 연봉이지만 의사는 무조건 돈을 쓸어 담는 직업이 아니다”고 말했다.
● 영업 뛰고 밤샘 야근 “공짜는 없다”
로펌 취업 이후 김 변호사의 저녁은 야근 아니면 술자리다. 수임한 사건처리를 위해 밤에도 일을 하거나, 고객(의뢰인) 관리를 위해 술을 마셔야 한다. 일종의 ‘접대’인 셈인데, 변호사 시장에선 ‘접대능력’도 꽤 중요한 성공잣대로 평가받는다. 술자리가 잦으면 주말에도 출근해 일린 업무를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30대 후반이지만 결혼은 뒤로 미뤘다. 김 변호사는 “이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소 3년은 모든 걸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계사와 변리사들 역시 밤샘 야근이 잦다. 박 회계사는 “프로젝트에 들어가면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12시간 이상 일한다. 고객들이 요구하는 날짜에 맞추기 위해서 며칠 씩 밤을 새는 경우가 많다. 시간당 임금을 따지면 본전 생각이 날 때가 많다”고 했다.
조 변리사는 “정말 바쁠 때는 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6시까지 딱 두 번 밖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밥 못 먹는 것은 기본이다. 특허청 등 업무와 관련된 직원들이 퇴근하면 업무 처리를 할 수 없어 그 전까지 집중적으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허와 관련한 단어 하나에 고객들이 목매는 경우가 많아 자잘한 부분에 신경을 쓰게 돼 성격도 이상해지는 것 같다.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다.
의사 최성호씨는 “사회적으로 주5일제가 정착됐지만 병원은 다르다. 페이닥터가 된 이후 친구나 친지의 결혼식, 활동하던 동호회 모임 등에 거의 가질 못하고 있다. 한밤은 물론이고, 주말 공휴일 가리지 않고 진료를 해야 주변 병원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흉부외과나 신경외과 의사는 숫자가 많지 않아 365일 당직인 셈”이라며 “심지어 어떤 대형병원은 의사 가족에게 병원 근처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주는데 일 터지면 빨리 병원으로 올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선생님은 옛말…추락하는 권위
과거 전문직은 소득뿐 아니라 명예도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의사는 ‘선생님’으로 불렸고, 고시 합격자는 ‘영감님’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필요 이상의 ‘바람’이 빠지는 것은 좋지만 전문성마저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의사 최성호씨는 “피부과의 경우 피부에 생긴 병변이나 진행정도 등이 워낙 다양해 정확한 병명을 바로 진단하기는 쉽지 않다. 감기 환자의 기침, 숨소리, 콧물 색깔 등을 보고 원인 균이나 바이러스를 맞혀보라는 것인데 환자들은 ‘의사가 그런 것도 모르냐, 돌팔이 아니냐’는 말을 서슴없이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시골 어르신들은 의사의 말을 100% 신뢰하는데 서울에선 반말하는 학생이나, 욕설하는 환자들도 많다”며 “의사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전공과는 무엇인지 꼼꼼히 따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안과 레지던트 3년 차인 한정우(29)씨는 “환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고 병원에 오기 때문에 의사가 조언을 해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교수급이 아니면 진료 안 받겠다고 하는 환자도 많아 의사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어렵게 민형사 소송 건을 수임해도 일부 고객들은 처음부터 ‘가격 후려치기’를 한다. 그러면 다른 로펌으로 갈까 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나다 순으로 배정되는 영장실질심사 변호 활동이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며 “변호사를 구하지 못하는 피의자들의 국선변호 순서가 돌아오면 ‘어차피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데 부수입이라도 벌자’는 심정으로 변론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이 같은 애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사회 평균치보다는 훨씬 높은 명예와 소득, 훨씬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워낙 인원이 갑작스럽게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이 클 뿐이다. 단지 의사나 변호사라는 이유만으로 부와 명예를 누렸던 과거가 오히려 비정상이고, 지금이야말로 경쟁을 통한 차별화로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지는 과정으로 보는 게 맞다.
때문에 2030세대의 ‘젊은 사자’들은 선배 세대들에 비해 돈과 명예보다는 전문성을 중시하고, 일 자체에 보람을 찾으려는 경향이 뚜렷하다. 김 변호사는 “벌칙금, 각종 인허가 서류 문제와 관련해 일반 서민들이 몰라서 피해받는 부분들을 알려 줄 때 고맙다는 인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내 법률 지식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뿌듯해지는데 이런 것은 돈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보람”이라고 말했다. 경험을 더 쌓은 뒤 서민들을 위한 민사판례 사례집을 책으로 엮어 내는 것이 꿈이라는 그는 “요즘 젊은 변호사들은 전관예우나 이런저런 연고보다 오로지 법률전문가로서의 전문능력으로 평가받는 게 당연하고 또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양진하기자 realha@hk.co.kr
결혼정보업체 배우자 순위서도 '굴욕'
공무원, 금융직, 교사에 밀려나 의사 5위
“전문직이면 무조건 일등신랑감이냐고요? 그건 옛날 이야기입니다.”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들은 최근 결혼 시장의 트렌드는 ‘명분보다 실리’라고 했다. 이상적인 변호사의 조건으로 변호사 의사 회계사 변리사와 같은 ‘사짜' 타이틀보다 실제 수입과 삶의 안정성을 더 높게 평가한다는 설명이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집이 없는 35세 전문직 남성'이 여성 100명에게 만남을 신청했을 때 성공률은 65%로 나타났다. 소득 학벌 외모 등 조건이 비슷한 중소기업 직원이 집을 가진 경우라면 성공률은 60%였다. 전문직과의 차이가 5%포인트에 불과했다.
이웅진 한국결혼문화연구소장은 “여성들은 이제 단순히 전문직이라는 이유 만으로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고 실제 수입과 결혼 준비 정도를 주요 조건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최근 여성들, 특히 어머니들의 안목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경향은 배우자 직업 선호도 조사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해 12월 성인 남녀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배우자로 적합한 남성의 직업 1위는 공무원 및 공기업직원(13.6%)으로 나타났다. 뒤를 이어 일반 사무직(10.4%), 금융직(7.8%), 교사(6.8%)의 순이었다. 2003년 조사때 1위였던 의사는 5위(6.7%)로 떨어졌다.
남성이 원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직업도 교사(12.9%), 일반 사무직(10.4%), 약사(6.15%), 금융직(5.7%) 순이었다. 듀오의 김미연 주임은 “최근 경제가 어려워져 노후 문제가 부각되며 공무원과 공기업 직원 등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남녀가 결혼 상대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세태가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김 주임은 “최근 젊은 세대들이 일과 성공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중요시하면서 가정과 배우자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직업을 선호하고 있다”며 “최근 몇 년간 배우자 선택 기준에서 상대방의 성격이 직업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도 그 방증”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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