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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

입력
2016.06.28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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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이 뭘까요?”

이 질문에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대답은 다양하다. 사자, 곰, 뱀, 악어처럼 포유류 아니면 파충류 이름을 댄다. 가끔가다가 살아있는 모습을 결코 본 적이 없는 공룡을 말하다가 친구들의 핀잔을 듣는 아이도 있다. 하지만 중학생 이상의 청중들에게 물으면 답은 하나다. ‘사람’이 바로 그것. 어찌나 단호한지 정말 사람이 제일 위험한 동물처럼 들린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나쁘게 보면 되겠는가.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은 따로 있다. 날씬한 몸매에 투명한 날개와 털이 덥수룩한 다리, 털이 보송보송한 더듬이, 바늘처럼 기다란 주둥이가 특징인 이것. 몸무게는 기껏해야 2㎎. 우리 머리카락 네 가닥 무게쯤 된다. 너무도 작고 연약하여 안쓰러울 정도다. 하지만 이 동물의 이름을 듣는 순간, “아! 정말 싫다.”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의 이름은 모기. 그렇다.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은 ‘모기’다. 무려 72만5,000명이 매년 모기 때문에 죽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연의 소리를 좋아한다. 빗소리와 시냇물 소리에 평화를 느낀다. 새의 노래를 듣고 짜증을 내는 일은 웬만한 사람은 할 수 없다. 곤충의 울음도 좋아한다. 곤충은 목청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날개를 비벼서 소리를 낸다. 보통 짝을 찾기 위한 애절하면서도 간절한 울음이다. 그 간절함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앵하는 모깃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소리는 결코 노랫소리나 짝을 찾는 애달픈 울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사실이다. 모기는 짝을 찾을 때 소리를 내지 않는다. 모기는 피곤한 몸을 뉘우고 불을 끄면 사람에게 출동하느라 어쩔 수 없이 소리를 낼 뿐이다. 모깃소리 들리더니 곧 가려움이 몰려오더라는 경험은 온 지구인 다 해 본 것이다. 모기는 사막과 남북극을 제외한 모든 곳에 산다.

50만 년 전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직립원인은 더운 지방을 떠나 추운 지방으로 이주했다. 먹을 것도 상대적으로 적고 생활도 불편한 추운 지방으로 이주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병균과 벌레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을 피워서 추위만 피할 수 있으면 나머지는 감수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모기는 가장 끔찍했다. 생각해보라. 전기모기채, 스프레이 살충제, 물파스도 없는 여름밤을 견디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모기장은커녕 제대로 된 옷도 없던 시절에 말이다.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모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모기 연구자들조차 모기가 좋아서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모기는 번거롭고 성가시고 없으면 정말 딱 좋은 존재다. 사람들은 모기를 몹시도 미워한다. 우리가 모기를 미워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우리를 물고 가렵게 하기 때문이다. 가렵지만 않다면 앵 소리에 우리가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눈에 불을 켜고 모기를 잡을 이유가 없다.

여기에 모기의 비극이 있다. 모기 가운데 아주 일부가 우리 피를 빨아먹는다. 뭐, 많이 먹는 것도 아니다. 우유 한 방울 정도다. 우리가 밤새 여러 마리의 모기에게 피를 빨린다고 해도 기껏해야 티스푼 하나 정도의 양이니 우리가 보시하는 셈 치면 된다. 게다가 모기가 피를 빠는 이유를 안다면 우리는 참을 수 있다. 바로 모성애다. 오로지 산란기의 암컷만 피를 빨아먹는다. 자식을 위해 풍부한 영양분이 필요한 것이다. 수컷이나 산란기가 아닌 암컷은 괜히 사람의 피를 빨아먹으면서 위험을 자초하지 않는다.

모기가 피를 한 번 빠는 데는 무려 8~10초나 걸린다. 이 시간이면 우리가 모기를 잡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모기의 입장에서 보면 자식을 위해서 정말로 지옥 같은 공포를 견뎌야 한다. 사람의 혈액에는 혈관에 상처가 나면 피를 응고시켜서 굳히는 물질이 있다. 8~10초 동안 주둥이를 사람 혈관에 박고 있으면 그사이에 피가 굳어서 모기는 주둥이를 사람 피부에 박은 채 생을 마감해야 한다. 방패가 있으면 창은 더 정교해져야 하는 법. 모기는 피를 빨아먹는 동시에 침 속에 혈액 응고 억제물질인 히루딘을 섞어서 우리 혈관에 주입한다. 우리 몸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다. 히루딘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면서 히스타민을 분비한다. 히스타민은 우리를 가렵게 만든다. 그러니까 우리를 가렵게 만드는 물질은 모기에게서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몸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이봐! 위험한 적이 나타나서 자네를 공격하고 있어. 제발 일어나서 좀 잡으라고” 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몸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모기가 물든 말든 가렵지만 않으면 좋겠어”라고 우리 몸이 생각했다면 우리는 지구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렵기 때문에 모기를 피하려고 추운 곳으로 이주했고 모기를 잡았기 때문에 우리 인류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다.

지구에는 약 3,500종의 모기가 산다. 이 가운데 478종이 말라리아모기다. 얘네들이 문제다. 얘네들 때문에 대부분 어린 아이들인 수십만명이 매년 목숨을 잃는다.

모기 소리가 들리면 일어나 불을 켜고 벽을 살펴야 한다. 배부른 모기는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벽에 붙어서 소화를 시키며 쉰다. 그래서 우리가 때려잡은 모기들은 이미 배부른 모기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게 아니다. 걔네들이 산란하기 전에 막아야 한다. 후세들을 위해서라도 아니 내년을 위해서라도 일단 모기는 잡아야 한다. 그래야 산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모기만 빼고.

참, 사람에게 두 번째로 위험한 동물은 바로 사람이다. 매년 47만5,000명이 사람에게 목숨을 잃는다. 모기도 앵하면서 신호를 보내고 우리 몸도 가려움으로 경고를 하는데, 그 나쁜 사람이라고 신호를 안 보내고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겠는가. 단지 그 신호에 오히려 미혹되게 만드는 우리의 탐욕이 우리의 눈을 가릴 뿐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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