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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트럼프의 악수

입력
2017.06.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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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이한 악수법은 예전부터 유명했다. 손에 힘을 꽉 준다거나 손을 잡고 자기 쪽으로 갑자기 잡아당기기 일쑤였다. 아베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는 아베의 손을 17초 동안이나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는 메르켈의 악수 제의를 거절해 구설수에 올랐다. 그런 트럼프가 지난 5월25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마크롱은 작심한 듯 트럼프의 손을 꽉 잡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마크롱은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트럼프식 악수가 의도적이었다고 털어놨다. 마크롱에게 당한 트럼프는 같은 날 다른 일정에서 마크롱과 악수하며 마크롱의 팔을 자기 쪽으로 세게 잡아당기는 ‘복수’를 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공격적인 악수법에 대해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하거나 상대방에게 겁을 주려는 행동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었다. 원래 우호와 존중을 드러내기 위한 악수가 트럼프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의 정치적인 공격 무기가 된 셈이다. 침팬지 연구의 대가인 제인 구달은 작년 9월 당시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트럼프의 행동에 대해 수컷 침팬지의 행동과 닮았다고 말했다. 과시적인 행동으로 상대를 지배하려는 성향이라는 설명이다.

트럼프의 공격적인 악수가 그저 침팬지와 닮은 기이한 행동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뒤에 숨어 있는 현안들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방위비 분담문제였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때 나토가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일부 회원국이 안보에 무임으로 승차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냈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트럼프는 나토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자신의 발언을 거두었다. 그러나 GDP의 2%로 방위비를 늘리기로 한 2014년 웨일즈 나토 정상회의의 합의를 지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8개 회원국 중 미국을 포함한 다섯 나라가 현재 이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나토 정상회의에 이어 26일 시칠리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도 트럼프와 다른 정상들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특히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의 반대로 만장일치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나머지 6개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정 이행에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파리협정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주관한 파리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2015년 12월 타결된 협정으로 전 세계195개국이 동참했다.

G7 정상회의가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간 트럼프는 결국 지난 1일 파리협정에서 탈퇴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파리협정이 미국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때부터 지구온난화는 사기이며 중국의 음모라고 주장해왔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국무장관에 미국의 대표적인 석유회사인 엑슨모빌의 틸러슨 회장을 임명하는 등 미국의 에너지 정책을 다루는 주요부서의 장관에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을 앉혔다. 지구온난화는 엄연한 과학적 사실이며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가 그 주범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전 세계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해 온 결과이다. 여기에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이나 미국 항공우주국 같은 기관도 포함돼 있다. 지난 1월 미 국립해양대기청은 2016년의 지구 평균기온이 20세기 평균기온인 13.9도보다 0.94도 더 높았다고 보고했고, 미 항공우주국은 2016년의 지구 평균기온이 20세기 중반의 평균보다 0.99도 더 높다고 보고했다. 두 연구기관의 공통된 결론은 2016년의 지구가 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주장처럼 미 국립해양대기청과 미 항공우주국이 중국을 위해 사기를 친다고 믿기는 어렵다. 트럼프가 아예 과학적 사실을 믿지 않거나, 아니면 화석연료 기업들을 위해 과학적 사실을 외면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파리협정의 미래도 염려되지만,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지 벌써 걱정이다. 나토 회원국들에게 쏟아냈던 안보 무임 승차론과 방위 분담금 지불 요구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 문제는 지금 정국의 태풍으로 떠오른 사드 배치 문제와도 직결된다. 과학적으로 확립된 팩트마저 거부하는 트럼프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평범한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직전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가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전문가 평가 12위를 차지하고 “미국에 자부심을 갖게 해 준 지도자”라는 세평을 들었던 터라 트럼프의 등장이 꽤 당황스럽다. 오바마 뒤의 트럼프라는 반전은 앞으로의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다. 역사의 반동이 시대를 되돌리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새삼 촛불혁명으로 거듭난 우리의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문재인 정부도 지금의 초심을 끝까지 잃지 말기 바란다. 우선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악수할지부터 미리 잘 준비하기를.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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