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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석학 칼럼] 중동의 새로운 세기

입력
2016.01.03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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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연합(EU) 그리고 세계은행처럼 서구가 이끄는 기구들은 반복적으로 묻는다. 중동은 왜 스스로를 통치하지 못하느냐고. 솔직하지만 자기인식이 부족한 질문이다. 결국 중동의 좋은 통치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소는 자치 부족이었다. 중동의 정치 기구는 1차 세계대전부터, 일부 지역은 그 이전부터 미국과 유럽의 반복된 간섭의 결과로 불구가 됐다.

한 세기면 충분하다. 2016년은 중동 내부에서 자라난 정치가 맞는 새로운 세기의 첫 해가 돼야 한다. 중동 자치가 시급하게 초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한 도전이다.

지난 100년간 이어졌던 중동의 불길한 운명은 오스만제국이 1차 대전에서 패배로 가던 1914년 11월 시작됐다. 그 결과 제국은 해체됐고 승전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제국의 나머지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이미 1882년부터 이집트를 지배하고 있었던 영국은 지금의 이라크, 요르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정부들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게 됐다. 북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을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는 레바논과 시리아를 좌지우지하게 됐다.

공식적인 국제연맹의 위임통치권과 헤게모니의 다른 수단들은 영국과 프랑스 권력이 석유, 무역항, 선박 항로, 현지 지도자들의 외교 정책 등을 지배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 나중에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지역에서 영국은 헤자즈 왕국 하심 가문의 아랍 민족주의에 대항해 이븐 사우드의 와하비 근본주의를 지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처형에 반발해 바레인 시민들이 2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의 시아파 이슬람 성직자 처형에 반발해 바레인 시민들이 2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간섭자의 역할을 물려받았다. 1949년 시리아에선 미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고 1953년 CIA는 (이란의 석유에 대한 서구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이란의 모사데그 총리를 축출했다. 같은 일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1년엔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렸고 2013년 이집트의 무르시 대통령을 실각시켰다. 그리고 시리아에선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에 맞서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거의 70년 가까이 미국과 동맹국들은 반복적으로 자신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간섭하거나 내부 쿠데타 세력을 지원해왔다.

서방 세계는 수천억 달러의 무기를 판매해 중동 전역을 무장시켰다. 미국이 설립한 중동 도처의 군사기지와 CIA의 반복된 작전 실패로 남겨진 막대한 양의 군비는 미국과 유럽을 위협하는 난폭한 적의 손에 들어갔다.

그러니 서구의 지도자들이 아랍 국가들과 중동의 다른 나라들을 향해 왜 자력으로 통치하지 못하느냐고 물을 때는 자신들도 이런 지적에 대한 답을 준비해야 한다. “100년 동안 당신들의 간섭이 (알제리,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지에서 열린 투표 결과를 거부함으로써)민주주의적 제도의 기반을 약화시켰고 반복적이고 만성화된 전쟁을 부추겼다. 늘 의심하면서 경쟁시키려 드는 바람에 가장 포악한 지하디스트들을 무장시켜 오늘날 말리 바마코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이르는 대량 학살의 현장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중동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섯 가지 원칙을 제안하겠다.

첫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세계 어느 곳의 정부든 무너뜨리거나 불안정하게 만들기 위한 CIA의 비밀작전을 멈춰야 한다. 1947년 CIA는 두 가지 권한을 갖고 탄생했다. 하나는 정당한 정보 수집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의 국익에 ‘적대적’으로 간주되는 정권을 전복시키는 참혹한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CIA의 비밀 작전을 종식시킬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중동에서 분명하게 이어온 역풍과 대혼란의 유산을 끝내야 한다.

두 번째로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중동 지역에서 때때로 정당한 외교 목표를 좇아야 한다. ‘자발적인 연립정부’를 미국 주도로 만드는 현재의 접근 방식은 실패했다. 그것은 심지어 이슬람국가(IS)를 막는 정당한 목적마저도 지정학적 갈등으로 가로막힌다는 걸 의미했다.

미국이 자국의 새로운 외교 계획을 유엔 안보리 투표라는 시험대에 올리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3년 안보리가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을 때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하지 않는 게 현명했다. 영구적으로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러시아가 미국의 아사드 정권 타도 지원을 반대했을 때 미국은 그를 무너뜨리기 위해 비밀 작전을 하지 말아야 했다. 그리고 이제 안보리 전체가 IS와 싸우기 위한 (미국을 제외한)전세계적 계획 아래 뭉칠 것이다.

세 번째로 중동의 민주주의로 이슬람교도들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현실을 미국과 유럽은 받아들여야 한다. 선거에서 뽑힌 이슬람교도 정권 중 다수는 형편 없는 정부가 그렇듯 실패할 것이다. 그들은 다음 선거에서 타도되거나 거리에서 또는 심지어 지방 장군들에 의해 타도될 것이다. 하지만 영국, 프랑스, 미국이 이슬람교도 정부를 계속 실각시키려 한다면 실제로 장기적 혜택을 이어가거나 주지 못한 채 중동의 정치적 성장을 막을 뿐이다.

네 번째로 사하라 남쪽에서 북아프리카와 중동, 중앙아시아까지 자국에서 성장한 지도자들은 지금의 이슬람 세계가 마주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도전이 교육의 질이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중간소득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중동 지역은 과학, 수학, 기술혁신, 기업능력, 소기업 발전 그리고 (그로 인한)일자리 창출 등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다. 높은 품질의 교육이 없다면 경제적 번영과 정치적 안정의 가망은 없다.

마지막으로 중동은 환경의 질적 저하와 화석연료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라는 점에서 유난히 취약하다는 점을 고심해야 한다. 세계가 저탄소 에너지로 이동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화석연료 의존은 특히 심각한 문제다.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서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건조지역이다. 8,000㎞에 이르는 지역이 수분 부족에 사막화, 온도 상승 그리고 식량 공급 불안정을 겪고 있다.

중동이 마주하고 있는 진짜 도전은 이러한 것들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 아사드의 정치적 미래, 교리적 분쟁 같은 건 충분하지 못한 고품질 교육, 직업 훈련, 선진 기술,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필요성에 비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분명히 덜 중요하다. 이슬람 세계의 용감하고 진보적인 다수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이 같은 현실에 눈 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면 선의를 지닌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평화적으로 협력하고 제국적 방식의 전쟁과 조작을 끝냄으로써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제프리 색스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ㆍ지구연구소장

번역=고경석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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