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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

입력
2018.08.20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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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윤씨(가명)와 희성씨(가명)는 친구지간. 재윤은 온라인 광고ㆍ마케팅 대행사를 운영했고, 희성은 중견기업 구매담당 부서에서 일했는데, 희성이 회사를 그만둔 후 재윤의 회사에 합류했다. 번듯한 중견기업에서 구매 담당 차장으로 있던 희성이 재윤의 회사에 합류하고자 했을 때 재윤은 다소 의아해했다. 희성은, 자기가 중견기업에 근무하면서 많은 업체와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 회사들의 온라인 광고ㆍ마케팅 업무를 수주할 수 있으니 서로 윈윈이 되지 않겠냐고 했다. 온라인 광고ㆍ마케팅 대행업은 영업이 중요한데, 친구가 도와준다면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해 재윤은 희성을 받아들였다. 재윤은 희성을 영업부문 총괄이사로 임명했고, 회사 지분 20%도 부여했다.

희성이 합류한 지 2년쯤 됐을 때 희성은 재윤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희성이 회사 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들었던 재윤으로서는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이 일이 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내 지분 그냥 돌려줄게. 난 좀 쉬고 싶어.” 일을 억지로 하게 할 수는 없다. 재윤은 아쉬운 마음에 희성에게 위로금 3,000만원을 전달하면서 휴식 후 재기할 것을 기대한다고 덕담을 건넸다.

희성이 퇴사한 이후부터 눈에 띄게 재윤 회사의 주요 고객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계약 해지의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 뒤 영업을 담당하는 정 부장이 재윤에게 털어 놓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희성은 새 회사에 합류해서 온라인 마케팅 영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6개월 전 A사가 희성에게 접근했다. A사는 온라인 광고와 관련된 특허기술을 갖고 있는데, 이를 활용하면 기존 광고에 비해 월등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A사는 기술을 대고 희성은 영업을 담당하는 조건으로 4대 6으로 동업을 하기로 했다는 것. 희성이 60% 배분을 받는 조건이었다. 희성은 이 조건을 매력적으로 받아들였고, 재윤에게 얼렁뚱땅 거짓말을 하며 퇴사한 것이었다.

사업은 A사 이름으로 진행했기에 대외적으로 희성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희성은 재윤 회사에 있을 때 영업했던 회사들을 만나 “기존 광고에 비해 효과가 월등한 광고 기법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광고 단가도 재윤의 회사보다 낮게 제시하면서 고객을 빼왔다. 희성이 예전 중견기업에서 퇴사한 이유는 납품업체로부터 뒷돈을 받다 감사에 걸려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조건으로 그랬다는 것이었다.

재윤은 배신감에 속이 쓰렸다. 정 부장은 법적 조치를 하자고 했지만 재윤은 굳이 친구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희성의 사업적 실험은 성공적이었을까.

A사가 특허기술을 갖고 있다던 광고 기법은 결국 특허로 등록되지 않았고, 더욱이 현행법상 허용될 수 없는 광고 기법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A사는 희성에게 사업을 제안할 때 초기 투자금을 요청했고, 희성은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1억원을 투자했다. 어느날 A사 대표는 종적을 감췄고, 광고 계약금을 냈던 고객사들은 희성에게 환불을 요구하다 희성이 이를 갚지 못하자 희성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놀라운 건 우리 사장님이 그 고객들 광고를 돈 안 받고 다 해 주기로 했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우리 고객이었는데 그분들에게 손해가 나면 안 된다면서요. 배신한 친구 사기죄도 다 취하되도록 해 줬구요. 우리 사장님이 이래요 글쎄···.”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자기네 사장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후배 정 부장.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기존 신뢰를 저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도 있고, 신뢰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이름과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변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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