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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배운 정신 실천” 월급 기부하는 ‘낭만산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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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배운 정신 실천” 월급 기부하는 ‘낭만산악인’

입력
2018.03.22 17:3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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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업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무기계약직 조금이라도 도우려

취임 이후 매달 100만원씩 기부

“보전 중심 패러다임 도입” 강조

무분별한 산행은 제한하기로

권경업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지리산과 설악산 국립공원에 ‘특별자연보전 지구’를 지정하는 등 보존 중심의 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제공
권경업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지리산과 설악산 국립공원에 ‘특별자연보전 지구’를 지정하는 등 보존 중심의 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립공원 관리공단 제공

“산에서 얻은 만큼 베풀고 양보해야죠.”

지난해 11월 30일 취임한 권경업(68ㆍ사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매달 자신의 월급에서 100만원을 떼어 기부한다. “공단에 몸담은 지 10년이 지나도 진급도 잘 안되고 급여도 잘 오르지 않는다”는 756명의 무기계약직 직원들을 조금이라도 돕자는 취지다.

권 이사장은 또 장거리 출장이 아니고는 관용차를 이용하지 않는다. 직접 차를 몰고 출퇴근하면서 직원들과 눈 높이를 맞춰보자는 이유에서다. 21일 강원 원주 혁신도시 내 공단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한 겨울 한파 속에서 일하는 직원들을 만난 뒤 고충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라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권 이사장은 20대인 1977년 설악산 토왕성 빙벽폭포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 등반, 백두대간 종주 등 40년 넘게 산과의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나비 넥타이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1990년대부터 백두대간을 주제로 한 연작시 60편을 발표 ‘낭만 산악인’이기도 하다. 크고 작은 기부를 통해 산에서 배운 비움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2년 나섰던 히말라야 등정에서 받은 충격이 인생을 바꾼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했다. 당시 원정대가 현지에서 짐꾼 250여명을 고용했는데, 이들이 맨발로 30㎏가 넘는 짐을 지고 눈길을 오르며 받는 일당이 50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권 이사장은 “그 순간 적지 않은 돈을 들여 해외 원정에 오른 자신이 짐꾼에 비해 얼마나 좋은 조건에 있는지를 느꼈다”며 “미약하지만 이웃들을 돕고 살자고 결심한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989년 그는 7년간 모은 돈을 털어 부산 성지 어린이대공원 한 쪽에 전국 최초로 노인 무료 급식소를 만들었다. 이어 후원자들과 힘을 합쳐 2011년 히말라야의 길목인 네팔 카트만두 체플룽과 동남아 라오스에 병원을 설립해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이렇듯 인생 대부분을 산과 함께한 권 이사장은 4개월 전 연어가 모천(母川)에 회귀하듯 국립공원을 아우르는 자리에 취임했다. 관리ㆍ감독해야 할 전국 22곳 국립공원(6,726㎢)이 서울 여의도 면적(2.9㎢)의 2,319배에 달할 만큼 책임이 큰 자리다.

“그토록 동경하던 산과 자연과 관련된 업무를 맡게 된 나는 행운아”라고 밝힌 그는 “자신의 역할은 보전 중심의 생태계 보전 패러다임을 도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연이 가진 주권을 보호하는 것이 국립공원관리공단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가치라 믿기 때문이다. 취임 후 지리산과 설악산 국립공원 내 ‘특별자연보전 지구’ 지정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선물을 준 지리산과 설악산이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쉴 수 있도록 무분별한 산행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권 이사장은 “등산객들로 인해 두 곳에서 연간 400톤이 넘는 인분이 쌓이고, 이를 헬기로 처리하고 있다”며 “인분으로 인한 환경오염은 물론 헬기가 뜨고 내리는 과정에서 동식물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과 같이 많은 등산객이 출입할 경우 엄청난 혈세를 들여 추진하는 지리산 반달곰과 여우 등 희귀 동식물 복원사업도 효과를 내기 힘들 것”이라며 “이제라도 두 곳 국립공원에 휴식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뜨거운 감자인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 논란에 대해 권 이사장은 “국립공원이 최상위 보호지역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며 “찬성이냐 반대를 묻기 전에 국립공원은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대표지역이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답변을 대신했다.

원주=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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