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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는 나쁜 결말에 이를 것” 워런 버핏의 마지막 승부는

입력
2018.01.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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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 트위터 캡처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 트위터 캡처

세상사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세계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위인들도 온갖 실패와 좌절을 딛고 성공 신화를 썼다. 기업 경영이나 투자의 세계도 다를 게 없지만 예외도 있다.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7)이다.

소위 ‘흙수저’ 출신인 버핏은 자신의 능력으로 세계 최고 부호에 등극했다.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기적에 가까운 수익률을 올리면서도 흔들림 없이 꽃길만 걸었다. 재산은 873억달러(약 93조원)에 이른다.

투자를 넘어 삶의 이치를 꿰뚫는 그의 주옥 같은 어록은 투자자가 아닌 이들의 마음까지 훔쳤다. 더욱 놀라운 것은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여전히 현역이고 지금도 전 세계가 그의 한 마디에 주목한다.

가치투자로 실현한 ‘복리의 마술’

워런 버핏은 1930년 8월 30일 미국 중부 내륙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마하는 현재 버크셔해서웨이의 본사가 있는 소도시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우리 속담처럼 버핏은 어렸을 때부터 수리와 사업에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다. 6세 때 할아버지 식료품점에서 콜라를 산 뒤 되팔아 이익을 남겼고, 아르바이트로 모은 100달러로 겨우 11세에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17세에 고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신문배달과 중고 핀볼 게임기 대여 사업으로 6,000달러 이상을 벌었다.

그가 투자자의 길을 걷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주식투자 이론의 창시자’로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 컬럼비아대학 교수다. 그레이엄 교수가 1949년에 출판한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충격을 받은 버핏은 그의 제자가 돼 ‘가치투자’를 전수받았다.

가치투자는 잠재적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시장이 알아볼 때까지 기다리는 투자법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재무제표의 행간을 읽고 경영자 성향까지 파악해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단기적 주가 변동이나 세간의 시선과는 담을 쌓고 끝까지 자신의 선택을 믿어야 하는 인내심도 필요한데 버핏은 해냈다.

26세였던 1956년 오마하에서 결성한 첫 투자조합으로 연 30%대 수익률을 올린 버핏은 1962년부터 방직회사 버크셔해서웨이 주식을 매입해 1965년 경영권을 인수했다. 방직은 사양산업이었지만 그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가진 버크셔해서웨이를 투자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버핏은 보험업을 시작으로 ‘숨은 진주’에 잇따라 투자하며 가치투자 신화에 시동을 걸었다. 실체가 있는데다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고, 주가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기업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코카콜라와 질레트 등이 가치투자를 한 대표적인 종목이다.

버핏은 1993년 당시 83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해 처음으로 ‘포브스’가 선정하는 세계 최고 부자가 됐다. 연평균 수익률은 20%대 초반이라 낮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쌓인 이자가 다시 투자금이 돼 마치 눈덩이(스노우볼)를 굴리듯이 더 큰 수익을 창출하는 ‘복리(複利)의 마술’을 수십 년에 걸쳐 완벽히 입증했다.

버크셔해서웨이는 현재 계열사를 200개나 보유한 세계 최대 투자회사로 성장했다. 뉴욕증시 주가는 1992년 1만달러, 2006년 10만달러를 돌파했고 지난해 말에는 사상 최초로 장중 30만달러(3억2,500만원)를 돌파하기도 했다. 최초 매수가인 주당 7.5달러로 따지면 성장률은 무려 400만%에 이른다.

워런 버핏이 2011년 7월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나루고 있다. 위키피디아
워런 버핏이 2011년 7월 미국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대화를 나루고 있다. 위키피디아

전설을 완성한 건 수익률이 아니다

워런 버핏은 전 세계 투자자들의 롤 모델이다. 그의 투자법을 다룬 책은 국내외에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왔지만 정작 그가 직접 쓴 책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버핏은 오로지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서한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투자철학 등을 밝혔다.

지금이야 연일 신문 경제면을 장식하고 방송에도 활발히 출연하는 뉴스메이커지만 버핏은 1980년대 중반까지 무명의 투자자였다. 미국 경제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캐피털시티즈가 미국 3대 방송사 중 하나인 ABC를 인수합병한 1986년쯤이다. 56세의 적지 않은 나이였다.

이 때문인지 버핏의 젊은 시절 사진은 매우 희귀하고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인상은 언제나 옆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하다. 게다가 억만장자답지 않은 검소한 생활과 소탈한 성품은 부자에 대한 선입견마저 걷어냈다. 주주총회 등 공식행사에서 대놓고 자신이 투자한 코카콜라를 마시고 아이스바를 빨아먹는 모습은 웃음까지 자아낸다.

‘워런 버핏의 주주서한’ ‘버크셔해서웨이’ 등을 펴낸 워싱턴대 로렌스 커닝햄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오랜 시간 만나온 버핏은 겉으로 매우 실용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낙천적이고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경제대공황 시절 유년기를 보내며 가난을 경험한 버핏은 1950년대 3만1,500달러를 주고 고향 오마하에 구입한 주택에서 평생을 살고 있다. 담과 대문도 없는 평범한 집이다. 햄버거와 콜라를 즐기고 맥도널드에서 3달러 안팎의 모닝세트로 아침을 해결한다. 중고차를 10년 가까이 타다 2014년 4만5,000달러에 새로 산 차를 타고 다닌다. 그의 휴대폰은 아직도 삼성전자 폴더폰이다.

2004년 아내가 숨진 뒤 재산의 99%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도 충실히 이행 중이다.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275억달러(약 31조원) 이상을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시장경제는 나 같은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 주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작동하지 않아 기부가 필요하다”는 그의 말은 기부 문화를 논할 때 끊임없이 회자된다. 미국인들은 버핏에게 ‘월가(街)의 양심’이란 또 다른 별명을 선사했다.

워런 버핏은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소도시 오마하의 평범한 주택에서 살고 있다. 위키피디아
워런 버핏은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소도시 오마하의 평범한 주택에서 살고 있다. 위키피디아

마지막 승부는 가상화폐

철저한 가치분석과 장기투자로 요약되는 워런 버핏의 투자공식은 대성공을 거뒀지만 수십 년간 반대 주장과 맞서야 했다. 기술 발전으로 투자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해 단순한 논리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란 게 비판의 핵심이다.

기술주가 떠오른 1990년대 버핏이 시스코와 오라클 등에 투자를 하지 않자 일부 주주들은 불만을 표출했다. 결과적으로 곧 거품이 가라앉았고 그의 판단이 맞았다는 게 증명됐다.

버핏은 뉴욕 헤지펀드(개인자금을 모아 특정분야에 투자) 운용사 프로테제 파트너스의 테드 지데스 회장과의 10년에 걸친 투자수익률 대결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2007년 버핏과 지데스 회장은 ‘향후 10년간 인덱스펀드(주가지수 등에 연동된 펀드)가 헤지펀드 수익률을 앞설 것”이란 전망을 두고 내기를 걸었다. 지난달 29일 2017년 뉴욕증시가 마감되며 버핏의 승리가 확정됐다. 버핏이 선택한 인덱스펀드는 연평균 7.1%의 수익을 냈지만 헤지펀드는 2.2%에 그쳤다.

버핏은 지난 10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가 나쁜 결말에 이를 것으로 확신한다”고 밝혔다. 이전에도 그는 수 차례 가상화폐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실체가 있고 자신이 이해하는 분야에만 투자하는 원칙에서 가상화폐는 벗어나 있다.

중국과 우리 정부를 비롯해 가상화폐에 대한 국가별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지만 세계적으로는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히 적지 않다. “비트코인은 사기”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던 제이미 다이먼 JP모간체이스 회장도 최근 “비트코인 발언을 후회한다”며 태도를 바꿨다.

버핏의 나이를 감안하면 앞으로 더욱 가열될 가상화폐 논쟁의 결말을 보지 못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실패를 모르고 달려온 그의 생애 마지막 승부가 시작된 것은 분명하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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