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지역경제 르네상스] 도심에 가죽 실은 자전거 물결… 여기는 서울 ‘성수동’입니다

알림

[지역경제 르네상스] 도심에 가죽 실은 자전거 물결… 여기는 서울 ‘성수동’입니다

입력
2018.02.23 04:40
19면
0 0

#1 브랜드가 된 ‘성수동표 구두’

1960년대 제화회사들 집결

디자인-생산-판매 인프라 풍부

#2

최근 청년 창업자들 속속 유입

온라인 편집매장, SNS 등 새 판로

#3

임대료 올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

지자체, 공간-홍보 등 지원 나서

배경미 '앤지배' 대표가 지난달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위치한 자신의 매장(‘청년창업공방’ 1호점)에서 직접 디자인한 부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배경미 '앤지배' 대표가 지난달 서울 성수동 수제화 거리에 위치한 자신의 매장(‘청년창업공방’ 1호점)에서 직접 디자인한 부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서울 지하철 2호선 뚝섬역 교각 하부 ‘청년창업공방’ 1호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앞뒤로 길다란 가죽 뭉치를 싣고 어디론가 바삐 향하는 모습이 유리창 밖으로 지나갔다.

이 공방에 입점해 있는 수제화 브랜드 ‘앤지배(angiebae)’의 배경미(45) 대표가 “성수동만의 풍경”이라며 “이 동네 사람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저렇게 자전거를 타고 연무장길 공장을 왔다 갔다 한다”고 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는 자전거가 너무 많아서 베트남인줄 알았다”고 덧붙이며 웃었다.

배 대표는 2년 전 미국 뉴욕패션기술대(FIT)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귀국할 때만 해도 내 브랜드를 만들 수 있겠다는 부푼 꿈이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디자인을 보여주며 시제품을 만들어달라 공장에 문의해도, ‘개인 디자인은 안 받는다’거나 지나치게 많은 제작비를 요구해 포기해야 했다.

그가 자신이 디자인한 신발을 만들어 팔 수 있게 된 건 성수동 ‘서울수제화아카데미’의 공이 크다. 수제화아카데미는 4개월간 수제화 제작 전반에 대해 다루는 서울시 운영 교육 과정.

배 대표는 “성수동에선 ‘아구 라인(발이 들어가는 부분)’ ‘뾰족 코(앞 코가 뾰족한 신발)’처럼 공장에서 통용되는 용어부터 배워야 원하는 신발을 만들 수 있다”며 “용어나 작업 지시서 쓰는 법에 익숙해질수록 머릿속 디자인과 공장서 만든 신발의 갭이 점차 줄었다”고 했다. 장인들과 손발이 맞기 시작한 것이다. 덤으로 “성수동 장인들은 ‘손 맛’이 다르다”는 성수동 수제화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수제화 산업은 금강제화 같은 대형 제화 회사들이 1960년대 말 금호동에 둥지를 틀면서 인근 성수동에 집적되기 시작했다. 이들 회사에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납품을 하는 청량리와 명동의 제화 공장들이 이전을 했고 뒤따라 염천교의 부자재 업체들도 일부 유입됐다. 그렇게 형성된 이 일대 수제화 관련 공장만 약 3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시는 파악하고 있다. 디자인부터 생산, 판매까지 한 동네에서 이뤄지는, 서울에서 보기 드문 도심 제조업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한 장인이 지난달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골목 안쪽에 위치한 ‘경서원’의 제화 공장에서 가죽을 재단하고 있다.
한 장인이 지난달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골목 안쪽에 위치한 ‘경서원’의 제화 공장에서 가죽을 재단하고 있다.

남성 수제화 업체 ‘경서원’의 박순섭(52) 대표도 지하철 2호선 뚝섬역 인근에 있는 매장에서 차로 5분만 가면 본인이 디자인한 신발을 만드는 공장이 나온다. 또 이 공장을 중심으로 400~500m 이내에서 필요한 자재를 모두 구입해 쓴다.

박 대표는 “구두 한 켤레를 만드는 데는 신발 창, 실, 끈 같은 부속품이 200개 정도 들어가는데 한 곳에 모여 있는 이런 환경 덕에 그나마 제작 기간이 단축된다”고 말했다. 수제화 한 켤레 제작 기간은 보통 7~10일 정도다.

성수동표 수제화는 이제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산업진흥원(SBA)이 2015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성수 수제화 거리를 알고 있다’는 응답이 전체(300명)의 60.7%였다. 어느 순간 백화점 진열대에 올랐고 이 동네 터줏대감인 유홍식 명장과 전태수 장인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의 구두를 만들면서 그 위상은 한층 더 높아졌다.

시와 구도 수제화를 지역 경제 대표 산업으로 양성하기 위해 일찌감치 여러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게 성수역과 뚝섬역 교각 하부에 위치한 ‘공동판매장’. 개당 23~26㎡ 크기의 박스 형태로 지어진 16개 공동판매장에는 심사를 거쳐 선정된 총 21개 업체가 월 10만~15만원 상당의 저렴한 사용료를 내고 입점해 있다. 성수동 수제화의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값싼 임대료라는 인센티브를 주고, 주변 거리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공동판매장에서 창출하는 카드 매출은 연 7억~10억원 정도다. 현금 결제나 온라인 판매를 고려하면 실제 매출액은 이를 훨씬 웃돌 것으로 시는 보고 있다.

유홍식 명장이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신발(위에서 두 번째 줄)과 전태수 장인이 제작한 김정숙 여사(위에서 셋째, 넷째 줄)의 신발이 서울 성동구 희망플랫폼 1층에 전시돼 있다.
유홍식 명장이 만든 문재인 대통령의 신발(위에서 두 번째 줄)과 전태수 장인이 제작한 김정숙 여사(위에서 셋째, 넷째 줄)의 신발이 서울 성동구 희망플랫폼 1층에 전시돼 있다.

이외에도 시는 수제화 전시장과 체험 공방으로 활용할 수 있는 ‘희망플랫폼’, 창업자의 사무 공간과 작업장을 마련해 주는 ‘성수 수제화 제작소’를 개관했고 청년 인력 유입을 위한 ‘디자이너 경진대회’나 ‘서울수제화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홍보ㆍ마케팅 목적으로 수제화를 할인 판매하는 ‘슈슈마켓’도 해마다 개장한다.

성수동 내부,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피’들은 온라인 판로에 주목하고 있다. 자체 온라인쇼핑몰을 운영하는 것은 물론 포털사이트의 디자이너윈도나 온라인 편집 매장에 입점하는 등 다양한 시장을 개척 중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적극 활용한다.

배 대표는 “앤지배 매출 비율도 온라인 7, 오프라인 3”이라며 “온라인 채널을 뚫고 나서 매출이 3배 넘게 뛰었다”고 말했다.

안팎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업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운동화 시장이 커지고 온라인과 홈쇼핑을 통해 저가 브랜드의 판매가 늘면서 반대 급부로 대형 제화 회사들의 매출은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OEM 업체가 다수인 성수동도 여파를 겪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년 전부터 서울숲 개발로 인근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청년들과 단골 고객층이 두터운 몇몇 장인들을 제외하고는 시장 전반적으로 침체된 상황이라는 게 업계 내부의 지적이다. 현재 성수동 수제화는 주로 연 매출액 1억~5억원 미만(40.5%), 직원 5인 미만(42.8%)의 영세 업체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근태 시 도시제조업 팀장은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와 판로 다각화가 성수동 수제화 시장 활성화를 위한 최대 과제”라며 “공동 작업장인 ‘스마트 앵커(가칭)’ 설립으로 비싼 임대료 탓에 성수동에서 밀려나고 있는 소공인들을 지원하고 젊은 디자이너들을 집중 발굴해 온라인 판매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