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전승절 참석 정점
밀월 1년도 안돼 최악 위기
‘안보는 美에, 경제교류는 中과’
외교지형서 일방 편들기 선택
대북제재 협조 어려워지고
中은 北 전략가치 중시 불가피
남북 대치상황도 고착화 우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해 ‘역대 최상의 한중관계’를 온몸으로 외쳤다. 이때만 해도 그 누구도 한국과 중국의 ‘밀월’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천안문 망루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과거 냉전 시대에 비춰보면 상전벽해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망루 외교를 두고 미국과 일본 외교가에서 ‘중국 경사론’이 흘러나오는 등 후유증도 적지 않았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한미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으로 역대 최상이라는 한중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내달릴 태세다. 박 대통령의 최대 외교 업적으로 꼽히던 한중 밀착관계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처지다.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한중관계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것은 미중 사이의 균형외교가 필요한 한국의 외교적 특성을 무시하고 일방적 편들기의 ‘고무줄 외교’를 펼쳤기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우리는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90년대 이후 중국과 경제 교류를 급격히 늘리면서 안보ㆍ경제 연합 체제가 분리된, 독특한 외교 지형에 놓여 있다. 예컨대 유럽연합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해 경제ㆍ안보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역대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무던한 애를 써왔다. 김동엽 경남대 교수는 “등거리 외교의 핵심은 상대들의 이익 교집합을 극대화해 우리 운신의 폭을 키우는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 정부는 한번은 이쪽, 한번은 저쪽으로 뛰면서 그 어느 쪽에서도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박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과 사드 배치 결정 모두 양쪽이 서로 극도로 민감해 하거나 반대를 했던 사안들이다. 가뜩이나 남중국해 영유권을 두고 격화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우리가 조절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정부의 ‘고무줄 외교’가 도리어 미중 갈등을 동북아로 확대시키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동아시아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갈등 양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많다.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겉으로 드러난 말과 물 밑에서 움직이는 것을 같이 볼 필요가 있지만 우리는 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돌아가는 전체 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오판이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극과 극을 달리는 대중 외교로 인해 대북제재 공조가 분열할 것이란 우려도 높다. 최 교수는 “한미일이 이렇게 가까워지면 중국이 북한에 대해 예전부터 갖고 있던 전략적 가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균형외교 소홀 또는 실패에 따른 이번 손실을 메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주도하는 대북 공조 대열이 흐트러지면 한반도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기득권이 강화하고 남북 대치 상황도 고착화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이번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국이 입게 될 경제적 타격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에 중국이 반대해 북한이 붕괴하더라도 중국이 개입해 새로운 분단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박홍서 코리아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이번 결정을 물리기는 정치적으로도 힘들 것”이라며 “한중관계 뿐만 아니라 남북관계 등도 더욱 힘들어 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사드 배치 결정으로 한중 관계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의 외교스타일을 감안하면 한중관계 악화의 후폭풍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방법으로 발현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김 교수는 “중국 정부는 은근히 조이는 방식을 쓸 것”이라며 “우리가 체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손 놓고 있는다면 더 큰 일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민승 기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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