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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360˚] ‘설탕 가면’ 뒤에 가려진 백종원의 진가

입력
2016.04.1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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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설탕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설탕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쯤 되면 거의 마녀가 부리는 사악한 주술과 동급이다. 악마의 유혹에 견주기도 한다. 설탕 얘기다.

이런 격한 비유가 가능한 것은 세계 각국이 벌이는 ‘설탕과의 전쟁’ 때문이다.(관련기사 보기) 우리나라도 최근 정부에서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전쟁에 동참할 의지를 보였다.

설탕 입장에선 억울할 법도 하다. 마녀사냥을 옹호했던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조차 “설탕은 식품이 아니라 소화 촉진을 위한 약품”이라며 단식 기간에 설탕을 먹는 것은 율법 위반이 아니라고 했다. 중세 유럽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 설탕이 효과가 있다고까지 여겨졌다.

산업혁명 당시 힘든 육체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설탕을 통해 효과적으로 열량을 제공받았으며, 귀족들은 이가 상할지언정 즐겨야 할 권위의 상징으로 설탕을 찾았다. 그런데 지금은 설탕이 세계적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다.

우리나라에서 설탕하면 빼 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백종원(50) 더본코리아 대표다.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마리텔)에서 설탕을 듬뿍 넣는 쿡방(요리방송)을 선보이며 ‘슈가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설탕이 주술이라면 백종원은 마녀인 셈이다.

하지만 대중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에 대한 갈망이 더 커졌다. ‘마리텔’ 이후 tvN‘집밥 백선생’은 2탄까지 나왔고, SBS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건 ‘백종원의 3대 천왕’을 방송 중이다.

사람들은 출연자들이 복면 뒤에 숨어 노래를 부르는 MBC ‘복면가왕’에 열광하는 이유가 누군가의 진짜 가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중은 ‘설탕 가면’ 뒤에 숨은 백종원의 진가를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설탕은 백종원이 유명해진 계기가 됐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캡처
설탕은 백종원이 유명해진 계기가 됐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캡처

‘슈가보이’라는 마녀

“설탕을 싸악~ 어때유? 맛있겠쥬?”

백종원을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만든 것은 설탕이다. 그는 설탕을 숟가락으로 퍼 넣는 것도 모자라 종이컵, 심지어 사발에 가득 채워 요리에 쏟아 부었다. 시청자들은 환호했다. 설탕을 들이부은 음식을 먹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시식자를 보며 군침을 삼켰다.

백종원의 달콤한 질주에 제동을 건 인물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다. 황씨가 설탕에 대해 블로그에 쓴 글을 보면 ‘설탕은 맛을 섬세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미개하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나아가 그는 백종원표 집밥 열풍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백종원에 대한 분석은 황씨 외에도 여러 칼럼니스트들에게 화두가 됐다.

하지만 모두 백씨를 몰아세운 것 만은 아니다. 이택광 교수는 팀블로그 파벨라에 쓴 글에서 “요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면서도 탈권위적인 백종원은 요리에 자신 없는 대중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워주며 유용한 ‘비법’을 알려주는 멘토로 ‘발견’된 것”이라고 평했다. 그는 또 “건강을 위해 먹지 말아야 했던 설탕, 다이어트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진한 양념 맛을 찬양하는 백종원의 등장은 금기를 벗어난 일종의 해방감을 선사하기에 족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백씨의 해명을 들어보자. 백종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저 설탕 그렇게 많이 안 넣었어요. CG(컴퓨터그래픽) 때문에 과장되게 나와 그렇죠. 몇 십인분 음식의 양념장을 만드는 데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죠”라고 말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보기)

실제 그가 추천하는 집밥 메뉴에 설탕이 얼마나 들어가는 지 살펴 봤다. 2014년 출판된 그의 책에 52개 요리법이 나오는데 이 중 40개에 설탕이 들어갔다. 국, 탕, 찌개류를 빼면 대부분 설탕을 넣었다.

문제는 양이다. 가장 많은 설탕을 사용한 메뉴는 소꼬리찜. 4인분(소꼬리 1kg)에 설탕 1컵(170g)을 넣었다. 소꼬리 100g당 17g의 설탕을 넣는 꼴이다.(고기용 만능소스 만들기) 전통 음식 연구가 박서란씨가 소개한 소꼬리찜의 경우 4인분(소꼬리 600g)에 설탕 2 작은술을 넣는다. 1 작은술이 5g에 해당하니 소꼬리 100g당 1.67g의 설탕이 들어간다. 이것만 놓고 보면 백종원표 소꼬리찜은 전통 요리연구가의 요리보다 약 10배 많은 설탕이 들어간다. 백종원, 설탕 많이 넣는 것 맞다.

스스로 요리사는 아니라고 말하는 백종원이 방송에서 뽐내는 식재료 상식은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식대첩’ 캡처
스스로 요리사는 아니라고 말하는 백종원이 방송에서 뽐내는 식재료 상식은 전문가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식대첩’ 캡처

식재료 맞히는 명탐정 백코난

백종원의 설탕 사용을 마냥 탓하기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그는 요리 초보자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했지, 건강식을 만드는 법을 알려 주겠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굳이 백종원을 위한 변명을 하자는 게 아니다.

게다가 설탕은 단순히 단맛을 내는데 그치는 양념은 아니다. 해롤드 맥기는 저서 ‘음식과 요리’에서 설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관련기사 보기) “주방에서 설탕은 다용도 재료다. 단맛은 기본적인 맛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요리사들은 풍미를 완성하고 맛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갖가지 음식에 설탕을 첨가한다. 그저 단맛만 내는 것이 아니라 신맛, 쓴맛, 충만하고 짙은 향이 더해진다. 설탕의 단맛에는 순수하고 단순한 단맛 이상의 느낌이 있다. 단맛은 다른 재료들에서 나오는 신맛과 쓴맛의 균형을 잡거나 가리는 데 도움을 준다. 또 풍미 화학자들은 단맛이 뇌에 그 음식이 좋은 에너지원이며 따라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는 신호를 보냄으로써 우리 인체의 음식 향에 대한 지각 능력을 대폭 강화해 주는 효과가 있음을 입증했다.”즉, 설탕은 단맛을 낼 뿐 아니라 음식의 전반적 풍미를 돋우는 양념이다.

백종원은 똑똑하다. 특히 경험에서 우러난 식재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놀라울 정도다. 방송에서 ‘백코난’ ‘백설명’같은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관련 영상보기) 식재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음식만 먹고 뭐가 들어갔는지 십중팔구 알아 맞힌다. 그런 그가 괜히 설탕을 넣을 리 만무하다. 초보들도 어렵지 않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해야 하는 일종의 사명감. 백종원이 여러 음식에 두루 설탕을 넣는 이유다.

백종원이 대표로 있는 더본코리아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들. 당신의 발길이 닿는 곳에 백종원의 가게가 없는 곳이 드물다.
백종원이 대표로 있는 더본코리아의 프랜차이즈 브랜드들. 당신의 발길이 닿는 곳에 백종원의 가게가 없는 곳이 드물다.

성공한 사업가의 고집, 식재료

백종원은 식당 사업자들을 위한 참고서를 세 권 냈다. 모두 다 비슷한 내용인데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점이 있다. 주 메뉴에 전력을 다하라는 것. 전문점으로 입소문을 타기 위한 것도 있지만 한 가지 메뉴에 집중해야 신선한 식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운영하는 수많은 프랜차이즈 식당들은 몇 가지 메뉴만으로 승부한다. 짬뽕 전문인 홍콩반점, 짜장 전문 마카오반점이 따로 있다. 그만큼 메뉴의 전문화에 대해 더 말할 게 없다.

더본코리아 홈페이지에 소개된 25종 브랜드는 한신포차를 제외하면 대부분 한두 가지 메뉴로 승부하는 식당들이다. 이 브랜드들의 점포 수는 1,200여개, 매출액이 927억원이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시청자들이 캠에 비친 음식 모습이 잘 안 보인다고 하자 집에서 가져온 거울로 음식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캡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시청자들이 캠에 비친 음식 모습이 잘 안 보인다고 하자 집에서 가져온 거울로 음식 모습을 비춰주고 있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캡처

백종원이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그가 이렇게 사업에 성공한 것은 맛보다 더 큰 이유가 따로 있다. 백종원도 스스로 맛 30%, 나머지 70%를 사업 성공 비결로 꼽았다.

나머지 70% 중에 가장 큰 것이 소통능력이다. ‘50대 아재’가 1020세대의 소통방식을 차용한 ‘마리텔’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놀라운 소통능력 덕분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채팅창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바로 반응한다. ‘시청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라는 관심 덕분이다.

방송에 출연하며 출중해진 능력이 아니다. 식당을 경영하며 손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골똘히 연구하고 늘 소통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늦은 저녁에 식사를 하는 손님들이 ‘술 손님’이 아닌 ‘밥 손님’으로서 눈치보지 않고 식사할 수 있도록 술을 팔지 않는 짬뽕 전문점을 고집했다. 또 꽃등심이나 생갈비보다 싼 우삼겹도 당당할 수 있도록 우삼겹 전문점을 냈다. 손님과 소통이나 교감 없이 할 수 없는 발상이다.

최근 시작한 tvN ‘집밥 백선생2’에서 새로 맞이한 연예인 제자들의 음식을 먹어보고 누가 만든 음식인지 단번에 맞혔다. 찍은 게 아니라 제자들의 상황을 분석한 추리다. 이를테면 자녀가 있는 사람이 주로 이용하는 팽이버섯이 들어간 요리를 보고 제자 중 유일하게 자녀가 있는 배우 이종혁의 음식으로 유추하는 식이다. 백종원에게는 식당 손님이든, 방송에 댓글을 다는 시청자든, 새로운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동료든 모두 관심의 대상이고 소통의 대상이다.

백종원을 위한 변명

백종원은 많은 사람들에게 싼 값에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경영인이 되고 싶었고 많은 사람들이 쉽고 즐겁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방송인이 되고 싶었다. 이달 초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설탕은 그저 요리 스트레스를 덜어줄 재료였을 뿐”이라며 “요리를 하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요리에 충분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생각할 때쯤 나도 천연재료로 단맛을 내는 진화된 요리를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 낸 책 머리말에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사람, 잘 아는 사람 ‘백종원’. 그것이 지금의 나이고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로부터 12년이 흘렀다. 요리 초보들의 멘토이자 집밥 전도사가 된 백종원이 설탕을 사랑하는 이유는 음식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두자. 많은 요리 연구가나 영양학자들은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 가공식품을 통한 과도한 당 섭취가 문제이지 한식 위주의 식단에 들어가는 설탕은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본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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