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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도] 이런 검사 퇴임사를 기대한다

입력
2017.06.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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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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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모르고’ 검사가 되어 20년 이상 동안 몸 담았던 검찰을 떠나려는 고위간부들이 지난주 여럿 나타났다.

이들은 퇴임사 또는 이임사를 통해 검찰 조직을 위해, 그리고 남아 있는 직원들을 위해 당부의 말을 남겼다. ‘직무를 바르게 수행하고, 항상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 ‘공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하고 인권보호라는 사명을 기억해야 한다.’ ‘위기의 원인은 검찰 내부에 있다.’ 이구동성으로 검찰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걸 보니, 단지 말의 잔치가 아니라 정확한 진단이고 새겨 들어야 할 주문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이들의 바람과 달리 검찰은 아주 오래 전부터 개혁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문제의식을 갖고 고쳐 나갔다면 이미 사랑 받는 기관이 되고도 남았음이 마땅한데도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들을 ‘신성한’ 퇴임사에까지 남기는 걸 보면 떠나는 사람들도 조직이 걱정스러운가 보다. 그들의 당부를 거꾸로 해석해 보면 현재 검찰 조직과 검사들의 문제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검찰은 남의 일처럼 불성실하게 직무를 수행하고, 참고인과 피의자를 마구 다룬다.’ ‘검찰은 불공정하게 권한을 남용하고 편파적으로 수사한다.’ ‘검찰은 위기의 원인을 밖에서 찾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똑똑한 검사들이 차가운 외부시선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으니 한편으론 신기한 일이다.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한 원인을 너무도 잘 알고 있고, 이를 타개할 방법도 정확히 진단하고 있다면 왜 바뀌지 않을까.

이는 검찰 조직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아온 고위간부들의 무책임한 인식 탓이 크다. ‘조직 내의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 합리화가 조직 문제를 개인과 분리시킨다. 실제로 이번에 떠나는 간부들은 대체로 자신을 향해서는 후한 평가를 내렸다. ‘진정성을 가지고 검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부끄러움 없이 사건을 처리하고자 노력했기에 의연함과 당당함을 잊지 않겠다.’ ‘(주요 혐의가 무죄로 확정된) 송두율 교수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들의 주장을 듣다 보면 검찰 간부 개개인은 모두 떳떳하고 오류가 없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못하고 있다’는 지사적 기질까지 느껴진다. 하긴 검찰은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하지 않는 ‘전통’을 갖고 있다 보니 이들의 발언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진범이 바뀐 ‘나라슈퍼 삼례 3인조’ 강도사건에서도,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에서도 검찰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쯤 되면 검찰이 불신 받는 원인을 자신들 탓으로 돌리는 고백이 필요한데 누구 하나 나서는 검찰 간부가 없다. 공직생활 23~24년 만에 차관급 자리를 꿰차고, 그 기간 동안 조직 내에서 온갖 혜택을 누리고, 공직을 떠나서는 전관예우를 통해 훨씬 많은 부를 쌓을 수 있는 대한민국 0.1% 인사들. 이제는 떠날 때만이라도 업적과 소신을 설파하기보다는 자신을 ‘내려 놓는’ 검찰 간부들을 보고 싶다.

다음에 물러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퇴임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10년 전 자백을 받겠다는 욕심에 죄 없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던 점 사과합니다. 9년 전 원하는 답변을 하지 않는다고 참고인과 피의자에게 윽박지른 점 사과합니다. 8년 전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고 반복적으로 불러서 폭언을 퍼부었던 점 사과합니다. 7년 전 검찰 출신 변호사 선배의 부탁을 받고 수사를 보류하고 일부 혐의를 빼버린 점 사과합니다. 6년 전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했지만 무죄가 나와 풀려난 피고인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재판을 받는 5년 내내 사회적으로 매장돼 인생의 크나큰 오점을 남기게 한 점 다시 한번 사과합니다. 오류를 지적 받았을 때 사과해야 검찰권 행사는 더욱 정당성을 인정 받습니다. 여기 남은 검사들은 저 같은 과오를 저지르지 말고, 새로운 검찰 문화를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강철원 사회부 기자 str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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