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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식의 세상만사] 역사교과서의 제자리

입력
2015.04.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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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현재적 해석이 전부일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살펴봐야

두 날개 펴도 새의 몸은 가운데

서울행정법원이 2일 한국사 교과서 6종 집필진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수정명령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가운데 이날 오후 서울 모 서점에서 한 학생이 교과서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행정법원이 2일 한국사 교과서 6종 집필진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수정명령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가운데 이날 오후 서울 모 서점에서 한 학생이 교과서를 고르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안 잠잠했던 역사교과서 논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금성출판사와 두산동아 등 6종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교육부의 내용 수정명령이 적법하다는 어제 법원 판결이 직접적 계기다. 6종 교과서 집필진이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취소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교육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번 소송의 출발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육부는 역사적 사실관계의 오류가 드러난 데다 독재정치를 미화하고 친일파를 옹호했다는 등의 논란이 끊이지 않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ㆍ보완 권고 당시 다른 7종 교과서도 이에 포함시켰다. 권고에 따르지 않을 경우 발행을 정지시키겠다는 통보가 병행됐다. 출판사들은 집필진을 설득해 권고를 이행, 788건이 통과됐으나 41건은 끝내 교육부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수정명령이 내려졌다. 6종의 교과서 집필진이 이를 거부하면서 취소소송과 함께 수정된 교과서의 배포를 막아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냈다. 그러나 2013년 12월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 학교 현장에는 수정된 교과서들이 배포돼 한국사 교육에 쓰이고 있다.

결국 이번 소송은 역사교육 측면의 실익보다는 교육부의 수정명령의 성격과 그 적법성에 대한 법원 판단이 관심의 초점이었다. 앞서 대법원은 2013년 2월15일자 판결(2011두21485)에서 교육부 수정명령의 적용한계와 그 절차적 요건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수정명령의 대상이나 범위에는 문구ㆍ문장 등의 기재내용 자체, 또는 전후 문맥에 비추어 명백한 표현상의 잘못이나 제본 등 기술적 사항뿐만 아니라 객관적 오류 등을 바로잡는 것도 포함된다”고 보고, “수정명령이 이런 정도를 넘어 이미 검정을 거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는 검정절차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했다.

따라서 이번 소송에서 원고측 주장은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특정사관의 반영을 강요하는 수준”의 ‘실질적 내용변경’이고, 교과서 검정절차에 준하는 적법절차를 빠뜨렸다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어제 판결에서 교육부의 수정명령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을 없애거나 고치게 하고 역사적 사안에 대한 서술을 보다 자세히 하도록 해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객관적 오류를 바로잡는 정도’, 즉 별도의 엄격한 절차를 빠뜨릴 수 있는 범위에 속한다는 판단이다.

그런데 역사 서술에서 ‘객관적 오류’는 ‘객관적 사실(史實)’을 전제로 한다. 이 때문에 법원이 현대사의 ‘객관적 사실’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게 적잖이 놀랍다. 다만 교육부의 수정명령이 내려진 6종 교과서의 실제 서술에는 ‘보수꼴통’이 아니어도 놀라는 사람들이 적잖다. 한국전쟁의 발발의 책임,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의 주체를 밝히지 않은 것 등은 결코 우연하다고 보기 어렵다. 아직 부분적 논쟁이 끝나지 않아 주체를 명시할 수 없다는 ‘학자적 양심’이라면, 교과서가 아닌 다른 서술 공간을 찾는 게 낫다. 교과서는 좌우 어느 쪽이든 특정 사관을 주입시키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역사교과서는 아이들이 다른 책보다 유난히 들기 싫어하는 교과서일 뿐이다.

대작 볼셰비키혁명사를 쓴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역사는 현재의 거울에 비춰진 과거의 허상’이라는 인식도 널리 퍼져있다. 그러나 이를 현재의 필요에 따라 과거를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비출 수 있다거나, 과거의 사실조차 마구잡이로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현재가 늘 평평할 수 없는 거울이더라도, 여러 거울에 비추면 실상(實像)을 더듬을 수 있다. 가까이서는 곰보자국만 보여도 멀리서는 미인일 수 있듯, 역사의 빛과 그림자도 늘 함께 보아야 한다. 새는 두 날개를 펴고 날지만 몸통은 가운데 있다. 좌우로 기운 역사인식의 희석과 수정 없이는 느긋한 역사산책은 불가능하다. 하긴 역사에 목숨을 걸겠다는 사람이라면 무슨 말이 필요할까.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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