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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은 있어도 굴복은 없다… '무대'는 홀로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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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은 있어도 굴복은 없다… '무대'는 홀로설까

입력
2015.10.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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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허공을 보는 김무성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굳은 표정으로 허공을 보는 김무성 대표. 한국일보 자료사진

“내가 무슨 ‘박근혜 꼬붕(부하)’이 돼서 ‘정치인 김무성’은 다 없어졌다.”

‘무대’(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사석에서 이런 자조 섞인 토로를 한 적이 있다. “친박계에 좌장은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그에게 ‘정치적 결별’을 선언하기 직전인 2009년 7월이었다. 그 즈음 무대는 ‘홀로서기’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무대 ‘양보의 역사’

자력으로 집권 여당 대표에 선출된 지 1년 3개월, 무대를 두고 여권에선 물음표가 크게 따라붙고 있다. 최근 국민공천제 정국에서 보인 ‘회군’에 가까운 행보를 두고 “화합이냐, 굴복이냐” 논란이 분분한 것이다.

과거에도 무대는 정치적 고비 때마다 반대 세력과 싸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보다 한 발짝 물러서는 ‘양보의 정치’를 해왔다. 대표적인 게 19대 총선 때의 불출마 선언이었다. 18대 공천 때는 친이계에, 19대 공천 때는 ‘탈(脫)박’한 죄로 그는 또다시 낙천의 쓴 잔을 받아 들어야 했다. 당시 김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무소속 연대 출마’를 권했다. 같은 처지인 탈박 의원과 친이계 의원 등 비박계를 합치면 족히 30명은 되니 승산이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막판 무대의 선택은 탈당이 아닌 백의종군이었다. 당시 정황을 잘 아는 무대의 한 측근은 “굽힌 게 아니라 대의를 지킨 것”이라고 설명한다. “분란은 분열을 낳고 분열하면 총선 승리는 물 건너간다는 생각이 무대를 돌려 앉혔다.”

정당 역사상 가장 치열한 내전으로 불리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직후 박근혜캠프 의원들이 한동안 이명박캠프 쪽은 쳐다보지도 않을 때조차 무대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얘기’가 되는 유일한 친박계 인사였다.

‘강자를 거스르지 않는’ 천성도 한몫 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정치를 시작한 그가 92년 총선 때 지역구 공천을 사전에 약속 받고도 양보한 일화가 있다. 칼 들고 사생결단하며 무대의 지역구를 달라는 인사에게 양보하라는 YS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 믿고, 믿다 뒤통수도… 18대 공천 ‘사나이 약속’

맞서 싸우고 거슬러 치받기보다 늘 ‘타협점’을 찾으려는 그는 종종 ‘뒤통수’도 맞았다. 18대 공천을 앞두고 당시 친박계의 좌장이었던 무대는 강재섭 대표, 공천 실무를 지휘한 이방호 사무총장과 이른바 ‘사나이 약속’을 맺는다. ①‘친이’는 ‘친이’로 교체한다 ②‘친박’은 ‘친박’으로 교체한다 ③두 사항을 지킬 수 없는 경우 김무성과 반드시 협의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천심사를 앞두고 양대 계파와 당 대표가 맺은 일종의 이면계약이었다. 그러나 믿은 결과는 무참한 ‘보복 공천’이었다. 낙천의 충격에 휩싸인 그에게 측근들이 “왜 이방호를 믿었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이랬다고 한다. “이방호는 새벽 기도 나가는 크리스찬이다. 믿어야지 우짜겠노.”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무대가 “전략공천은 없다”고 강변하고 있음에도 당 일각에선 “과연 끝까지 밀어붙일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는 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한때 ‘전략적 동지’였던 유대(유승민 전 원내대표)와 유대 쪽 의원들이 섣불리 ‘지원사격’을 않는 것도 이런 탓이 크다. 유대와 가까운 한 의원은 “종국에는 무대가 청와대나 친박계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리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며 “이번만큼은 물러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동조하는 의원들이 움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양보 없다는 무대, ‘킹’ 자질 증명할까

무대 쪽은 “지금까지 많은 타협을 했어도 정치적인 소신에는 양보가 없었다”고 항변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척을 지게 되는 것을 무릅쓰고 ‘세종시 원안 추진’에 끝까지 반대했고, 원내대표 때인 2010년 ‘야당에 매번 양보해 끌려 다니기만 한다’는 당내 비판에 시달렸지만, ‘예산안의 회기 내 통과’라는 평소 공언은 관철했다는 것이다. 그의 한 측근은 “아홉 번 양보해 대의 하나를 지키는 현실 정치인이 바로 무대”라고 말했다. 따라서 “국민공천제를 실현하고 전략공천은 않겠다는 ‘공천 개혁’만큼은 결코 양보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공천 개혁을 둘러싼 무대의 공언은 ‘킹 메이커’가 아닌 ‘킹’으로 가는 길목에 중대한 조건으로 보인다. 두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들어서게 될지는 그에게 달려있다.

김지은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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