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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구조조정, 금융위원장이 총대 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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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구조조정, 금융위원장이 총대 멜 일인가

입력
2016.05.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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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 회의실에서 산업·기업 구조조정협의체 3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 26일 서울 중구 금융위원회 회의실에서 산업·기업 구조조정협의체 3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이후 기업 구조조정 국면에서 가장 주목 받는 인물은 임종룡 금융위원장이다. 지난달 26일 그는 각 부처 차관급으로 구성된 ‘산업ㆍ기업 구조조정협의체’ 회의를 주재한 뒤, 한계산업 정리계획, 실업대책 등 구조조정 전반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모아 발표했다. 29일에는 언론사 부장단을 상대로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법론까지 설파했다.

구조조정에 관한 한, 임 위원장의 전문성을 의심하는 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그는 1980년대부터 우리나라의 굵직한 구조조정 때마다 실무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정부 안에서 구조조정에 가장 밝은 사람일 것”이란 평가까지 나올 정도다.

그런 이에게 대사를 맡겨놓아서일까. 구조조정이 국가적 이슈로 떠올랐지만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처럼 보다 윗선의 책임자들은 좀체 앞에 나서질 않는다. 여론의 관심에 총평이나 사안별 입장 정도를 답할 뿐, 정부가 어떤 준비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지 종합적으로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임 위원장과 구조조정협의체의 일인 것처럼 보인다. 구조조정에서 채권단 문제 못지 않게 중요한 산업, 실업 대책의 주무 장관들이 조용한 것도, 예전 같으면 금융위 못지 않게 목소리를 높였을 금융감독원장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하지만 지금처럼 구조조정을 과연 임 위원장이 대표할 일인가에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이번 구조조정 종합 대책을 금융위원장이 발표한 것만으로도 이번 일을 정부가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오랜 경험상, 정부의 의지는 대체로 형식이나 격식에 비례함을 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구조조정을 정말 제대로 해 볼 생각은 없어 보인다”는 게 그의 확신에 찬 심증이었다.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현실에선 당사자들 모두가 달가워하지 않는 일이다. 실직을 앞둔 근로자, 사업체를 빼앗길까 걱정하는 대기업 오너, 자칫 책임을 뒤집어 쓸까 몸 사리는 관료, 표 떨어지는 걸 두려워하는 정치권까지…. 하나 같이 가급적 나중으로 미뤘으면 하는 게 생리다.

준비 없는 구조조정은 성공 확률도 낮다. 정부만 해도 실업대책은 물론, 산업 재편과 해당 대기업의 세부사업 재조정, 조세 지원, 책임 소재를 가릴 사법당국의 역할까지 미리미리 챙겨야 할 과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은 채권단과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란 현재 정부의 상황판단이 안이해 보이는 이유다.

그럼에도 반갑지 않은 일을 미리 준비해야 하는 건 결국 정부다. 더구나 사안마다 각 분야ㆍ부처의 이해가 갈리는데, 이 참에 한계업종에서 신산업으로 국가의 산업구조까지 재편하자는 꿈을 꾸고 있다면? 이를 위해 때론 조직적인 행정망으로, 때론 위임 받은 권력으로 갈등을 조정ㆍ강제해야 한다면? 채권은행 담당 장관(금융위원장)이 아우를 성격은 아니지 않을까.

과거 대형 비리 사건마다 기업 총수가 2인자나 3인자를 내세워 “나는 몰랐다”고 발뺌하던 사례를 많이 봐 왔다. 외환위기 책임론이나 외환은행 헐값매각 시비 등에서 정부의 최고 책임자들 역시 아랫사람에게 법적 책임을 떠넘겼었다. 이번 구조조정 역시 실패의 책임론을 피하기 위해 우선 금융위원장을 앞세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것도 그런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내년이면 대선이다. 자신들의 후보가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경쟁자에게 밀린다 싶으면, “현대중공업은 구조조정 안 되도록 특별 조처를 하겠다. 집권 여당 대표인 제가 보장한다”(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고 약속하는 게 선거다. 수십만명을 해고하겠다며 표를 바랄 대선 후보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구조조정은 올해, 지금 정부가 끝내는 게 맞다.

임 위원장은 구조조정에 임하는 자세를 ‘사즉생’(死卽生)이라 표현했다. 이게 현 집권 세력의 입장이길 바란다. 죽을 각오를 했다면 일이 틀어질 경우, 내가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대통령이든 경제부총리든 먼저 지휘봉을 잡기 바란다. 위기산업 구조조정은 금융위원장이 대표할 일이 아니다.

김용식 경제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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