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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

등록 : 2018.01.09 17:43
수정 : 2018.01.09 19:07

여성 목소리 울려퍼진 골든글로브… “새로운 날이 수평선에 걸쳐있다”

할리우드 '미투'운동과 75회 골든글로브 말말말

등록 : 2018.01.09 17:43
수정 : 2018.01.09 19:07

8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공로상인 세실 B. 드밀 상을 수상한 후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LA=AP 연합뉴스

지난 8일(한국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할리우드 성폭력 사태에 대한 진행자와 수상자들의 발언들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날 시상식의 진행은 NBC의 심야 토크쇼인 ‘레이트 나이트(Late Night)’의 진행자인 세스 마이어스가 맡았다.이번 시상식은 지난해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과 배우 케빈 스페이시 등 많은 남성 영화인들의 성폭력 전력이 드러나면서 업계에서 퇴출된 이후 처음으로 열린 주요 시상식인만큼 진행자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관심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2018년은 마리화나가 마침내 합법화됐고, 성적 괴롭힘(sexual harassment)은 용납되지 않는 해입니다”라며 시상식의 문을 연 마이어스는 자신의 발언에 집중된 사람들의 관심을 의식한 듯 “우주 공간에 처음으로 쏘아 올려진 우주견을 보는 것처럼 오늘밤 나를 지켜보고 있는 앞으로 열릴 시상식들의 진행자들에게 특별히 인사를 보냅니다”라고 농담을 던졌다.

마이어스는 이날 하비 와인스타인과 케빈 스페이시, 감독 우디 앨런 등에 대해 농담하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진행자인 세스 마이어스. LA=AP 연합뉴스

마이어스는 남성 후보자들을 가리키며 “남성 후보자들에게 오늘밤은 지난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당신의 이름이 호명되는걸 듣는 것이 무섭지 않은 날”이라고 말했다. 지난 수개월간 각종 성폭력 가해자로 남성 배우들이 고발돼 온 것을 빗댄 것이다.

수십명의 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반복해 온 사실이 폭로돼 자신의 회사에서도 퇴출당한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에 대한 농담도 빠지지 않았다. 마이어스는 “하비 와인스타인은 오늘 밤 함께하지 않았는데요, 그가 정신이 나가서 함께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는 20년 안에 ‘인 메모리엄(In Memoriamㆍ그 해 사망한 업계인을 추모하는 코너)’에서 야유받는 사람으로 돌아올 테니까요”라며 일침을 놨다.

주연 배우 케빈 스페이시의 성추행 혐의로 다음 시즌 제작이 불투명했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 대한 발언도 이어졌다. 최근 ‘하우스 오브 카드’ 제작진은 스페이시 없이 다음 시즌 제작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또한 스페이시는 지난해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 ‘올 더 머니 인더 월드’에 출연했으나 성추행 혐의가 제기된 후 영화에서 하차했고 출연 분량이 ‘통편집’ 됐다. 대신 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대신 출연해 스페이시의 역할을 소화했다.

마이어스는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다음 시즌이 나올 거란 소식이 들려 기쁘군요.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그것도 가능할까요? 그가 남부 억양을 할 수 있으면 하네요. 왜냐면 케빈 스페이시는 절대 못 할테니까요. 오, 너무했나요? 케빈 스페이시에게?”라며 비꼬았다.

거장 감독이자 자신의 양딸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오랫동안 받아온 우디 앨런도 화살을 피할 수 없었다. 최근 앨런 감독의 개인 문서고에 보관된 그의 미발표 시나리오와 단편소설에는 어린 여성에 대한 꾸준한 집착이 드러난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마이어스는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가장 많은 분야에 후보작으로 오른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를 언급하며 “처음에 그 영화가 순진한 젊은 여성이 징그러운 바다 괴물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라고 들었을 때, 저는 또다른 우디 앨런 영화라고 생각했죠”라며 앨런 감독의 여성관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75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TV시리즈 부문에서 드라마 '핸드메이즈 테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모스. LA=AP 연합뉴스

여성 배우들 “우리는 더 이상 가장자리에 살지 않는다”

진행자인 마이어스가 할리우드 남성 거물들을 조롱하는 농담을 줄기차게 던진 가운데 수상자로 무대에 선 여성 배우들은 성폭력 경험을 고발한 여성들의 용기에 존경을 표시하며 성폭력 문화 근절에 함께 동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캐나다의 페미니스트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핸드메이즈 테일(시녀 이야기)’을 영상으로 옮긴 드라마로 TV부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모스는 애트우드에게 상을 헌정했다.

모스는 “이 상은 이 세상에서 평등과 자유를 위해 싸우고 불의에 맞설 만큼 용감한 당신과 당신 이전의, 이후의 모든 여성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핸드메이즈 테일’에서 여성들을 묘사하는 문장인 ‘우리는 신문에 이름이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신문 가장자리의 여백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게 훨씬 더 자유로웠다. 우리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간격 속에서 살았다’를 인용했다. 그는 “우리는 더 이상 기록 가장자리에 있는 여백에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의 간격 속에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이야기이며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스스로 쓰고 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드라마 ‘빅 리틀 라이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로라 던은 수상 소감으로 “우리 중 상당수는 고자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회복적 정의를 위해 피해자를 지지하는 것뿐만 아니라 용기 있는 목격자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보복을 두려워하지 말고 진실을 말하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우리 문화의 새로운 북극성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8일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메릴 스트립(왼쪽)과 전국가사노동자연대 디렉터 아이 젠 푸. 이날 인권운동가 6명이 배우들의 초대를 받았다. LA=UPI 연합뉴스

윈프리 “그들의 시간은 끝났다… 새로운 날이 수평선에 걸쳐 있다”

이 날 가장 큰 박수는 공로상인 세실 B. 드밀 상을 수상한 방송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의 수상 소감 후 나왔다. 윈프리는 수년간 자신의 일터에서 폭력을 견뎌 온 여성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인종차별과 성폭력 피해에 맞서 목소리를 낸 여성을 조명했으며 미래 세대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립 박수를 받았다.

이날 윈프리는 1944년 흑인 여성 리시 테일러가 무장한 백인 남성들에게 강간당한 후 NAACP(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에 신고하고 로자 파크스가 조사관으로 나섰으나 당시 인종차별 분위기 속에 아무도 처벌 받지 않았던 사건을 언급했다.

윈프리는 “리시는 우리 모두가 그러했듯 야만스러운 권력 있는 남성들에 의해 망가진 문화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을 살아야 했다. 오랫동안 여성은 그런 남성들의 권력에 맞서 진실을 이야기했지만 들어주는 곳도, 믿어주는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윈프리는 “하지만 그들의 시간은 끝났다(their time is up)”고 강조했다. 그는 “11년 후 로자 파크스가 몽고메리의 버스에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결심한 그의 마음 한 편에 리시의 진실이 있었을 것”이라며 “그리고 지금 여기 ‘미투’라고 말하기를 선택한 여성들과 경청을 택한 모든 남성들에게도 리시의 진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윈프리는 “지금 이것을 보고 있는 모든 소녀들은 새로운 날이 수평선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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