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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멍드는 은퇴자 제2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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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멍드는 은퇴자 제2의 인생

입력
2016.08.2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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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60대 이상 비정규직 급증

환경도 나쁘지만 무시는 더 고되

“정규직 아니면 성취 못한 사람

“성과주의 풍조, 제도로 보완해야”

서울 신사동에서 주차관리원으로 일하는 박모(58)씨는 올해 6월 씁쓸한 일을 겪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대리주차(발레파킹)비용으로 1만원권 지폐를 바닥에 던진 후 차를 몰고 사라진 것이다. 박씨는 22일 “발레파킹비를 내지 않고 가려고 해 비용 지불을 요구하자 나를 한 번 쓱 보더니 지갑에서 돈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며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귀찮다는 듯한 표정으로 돈을 던지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2018년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14% 이상) 진입을 앞두고 은퇴 후 비정규직 노동자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인구가 늘고 있다. 이들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 못지 않게 일반 시민들의 무시와 차별을 감내하고 있다. 폭염이 기승을 부렸던 이달 17일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경비원 초소에 설치됐던 에어컨이 동 대표의 문제 제기로 철거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고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용자들의 횡포는 고용노동부에 신고라도 할 수 있는데, 일반 시민들의 무시는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32%에 해당하는 615만6,000명으로 지난해 대비 14만4,000명 증가했다. 이 중 50대와 60대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는 각각 135만2,000명과 133만8,000명으로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43.7%에 달한다. 비정규직 일자리의 절반 가량을 장ㆍ노년층이 도맡고 있는 것으로, 그만큼 고령 노동자들의 일자리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치열해진 경쟁만큼 이들이 직업 현장에서 겪는 고충도 함께 늘었다. 시의원 출신으로 아파트 경비원 일을 하는 김모(68)씨에게 주민들의 무시와 타박은 일상이 됐다. 2교대 근무 중 0시부터 오전 4시까지는 경비원들의 휴식시간으로 할당돼 있지만, 주민들은 이 시간에 쪽잠을 자는 김씨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주민들 중 일부가 휴식시간에 그를 찾아와 잘못 주차된 차량에 대해 따지는 경우도 있다. 김씨는 “휴식시간에 경비원을 깨우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주민들이 많다”며 “잠만 자고 일을 제대로 안 한다고 면박을 주거나 심지어 욕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 역시 사회생활을 할 만큼 했고 직업에 귀천이 없는데도, 천한 일을 하는 늙은이로 여길 때는 속상하다”고 덧붙였다.

대부분 고령인 청소노동자들도 시민들의 차가운 시선과 멸시하는 듯한 말투를 참아내고 있다. 김포국제공항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는 박모(56)씨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공항이용객들의 반말 섞인 타박을 듣고 있다. 그는 “흡연실 청소 중에 ‘조금 이따가 하지’라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 대합실 의자 근처 바닥을 닦을 때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용객 등 근무 중 무시를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하루 11시간을 걸어 다녀야 하는 고강도 노동 못지 않게 공항 이용객들의 차가운 시선도 청소노동자들을 힘들게 한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고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무시와 차별은 고착화한 사회양극화와 성과주의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노중기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0년대 이후 사회가 심각하게 양극화했고,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 서기 위한 성과주의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며 “그 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성취를 못 한 사람’ ‘낮은 계층의 사람’ 등 무시해도 되는 대상으로 치부하는 풍조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개선, 저소득층 보호 등의 제도적 보완장치가 선행돼야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경비실에서 경비원이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 시내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경비실에서 경비원이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한 채 업무를 보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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