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사비니의 여인들

입력
2017.02.28 14:44
0 0

[기억할 오늘] 3.1

자크 루이 다비드의 '사비니의 여인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사비니의 여인들'

로물루스의 로마는 새로운 전사들을 낳아줄 여성 인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신흥 강국 로마의 힘이 더 커질 것을 두려워한 이웃 국가들은 로마와의 혼인을 기피했다. 로마는 덫을 놓았다. B.C 753년 3월 1일, 바다의 신 넵투누스를 기리기 위한 성대한 축제. 음악과 춤과 포도주에 취한 이웃 국가의 여자들을 로마의 남자들이 낚아챘다. 사비니의 여자들은 로마인들의 아내가 됐다.

사비니의 군대가 빼앗긴 여자들을 되찾기 위해 로마로 진격한 건 그로부터 3년 뒤였다. 창과 칼로 대치한 전장 한복판에 사비니의 여자들이 뛰어들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의 ‘로마사’는 그들, 사비니의 딸이자 로마의 아내인 여인들은 한쪽으로는 아버지를 향해 다른 한쪽으로는 남편을 향해 간청했다고 전한다. “과부로 살거나 고아로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겠습니다.”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로 로마와 사비니는 화해했다. 사건은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들에 의해 빈번히 작품의 소재로 사용됐다.

대부분 화가들의 그림이 극적인 납치 장면에 주목한 것과 달리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작품 ‘사비니의 여인들’(1799)은 이례적으로 중재 현장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 정 중앙, 비둘기처럼 하얀 옷을 입은 여자가 양 팔을 넓게 벌린 채 서로를 노려보는 근육질의 남자들을 가로막고 서 있다. 다비드가 이 그림을 그린 때는 나폴레옹이 집권한 해다. 왕정이 무너진 뒤 들어선 공화국 정부가 분열을 거듭하다가 새로운 황제를 맞은 시기. 혁명파의 대표 화가였던 다비드는 갈등을 봉합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비니의 여인들을 평화의 상징으로 내세웠을 것이다.

다비드의 그림은 역사의 그림자에 묻혀 있던 여성을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에서 과외의 평가를 얻었지만, 정작 추앙된 여성의 심정은 어떨지 궁금하다. 국가의 기반이 되는 ‘번식재’로서의 역할은 물론이고 철부지 근육덩어리들의 등짝을 때려 화해를 시키는 역할도, 할 수만 있다면 벗어나고 싶지 않았을까.

최윤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