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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드려라… 그것이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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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드려라… 그것이 민주주의다

입력
2017.02.1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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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혐오의 시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고답적인 물음과 대답 탈피

철학과 문학 묘한 융합을 통해

재앙 같은 삶에 ‘제동 걸기’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대한 얘기들은 풍성하다. 어찌보면 그건 주어진 조건이다.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이냐가 되어야 한다. 그게 칸트의 '선의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대한 얘기들은 풍성하다. 어찌보면 그건 주어진 조건이다.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이냐가 되어야 한다. 그게 칸트의 '선의지'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용규가 다시 철학카페를 열었다. 이번에는 젊은 문인들과 함께이다. ‘철학카페에서 시읽기’가 2011년에 나왔으니 5년만이다. 두 권으로 나온 이 책을 손에 들고 나는 아껴가며 탐닉했다. 탐닉이라는 단어에는, 그만큼 빨려 든다는 뜻과 함께 맥락을 쫓아가기 쉽지 않다는 뉘앙스도 들어 있다. 기본적으로 그의 책을 읽으려면, 그가 끌어들이는 숱한 인용들의 숲도 함께 헤쳐가야 한다. 버거운 즐거움이다.

왜 그는 철학카페를 다시 개설했을까. 각 권의 서문에서 김용규는 이렇게 말한다. “시절이 수상하고, 또 수상하”(1권)기도 하고, “삶이 비루하고 위험해졌”(2권)기 때문에 철학카페를 열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다, 지금 여기 우리는 파국으로 치닫는 재앙 같은 삶의 연속이다. 좌표가 분명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이 책에서 김용규는, 개인으로서의 나와 시민으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성찰해봄으로써 그것에 제동을 걸고자 한다.

이 책의 구성은 좀 독특하게 이루어져 있다. 각 권마다 중심주제가 있고 그에 적합해 보이는 문인이 등장하며 공연과 강연, 대담이 진행되는 구조로 짜인다. 아마도 이는 인문콘서트를 바탕으로 하여 책이 씌어져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책의 이 다채로운 플롯이 몹시 흥미로웠다.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 주ㆍ객관을 가로지르며 너울거리는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더 솔깃한 건 그가 이야기하는 ‘불의 말(철학)’과 ‘물의 말(문학)’이 빚어내는 묘한 떨림이었다. 철학과 문학의 혼종적 융합을 모색하는 입체적인 그의 시도가 내 생각을 감각적으로 이끌어주지 않았나 싶다. 고답적인 물음과 대답이 아니라, 바로 내 곁에서 그와 내가 말을 섞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그에 따라 접근하기 쉽지 않은 철학적 개념들과의 거리감도 확 좁혀졌음은 물론이다.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1ㆍ2

김용규 지음ㆍ웅진지식하우스 발행

408쪽, 392쪽ㆍ각 권 1만6,000원

이 책 1권, ‘혁명/이데올로기’ 편에서는, ‘혁명’과 ‘이데올로기’를 통해 ‘시민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조명한다. ‘혁명’ 부분은 김선우의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를, ‘이데올로기’ 부분은 김연수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를 그 중심에 놓고 논의를 펼친다.

‘혁명/이데올로기’ 편에서 나는 단연 이러한 서술들에 끌렸다.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현대 과학기술의 특성이라고 규정한 ‘몰아세움’과 ‘닦달’을, 김용규는 자본주의 경제의 탐욕적인 성격과 폭력성 개념에 적용한다. 얼마나 탁월한 접근 방법인가.

1970년대 이후부터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자유화’를 원칙으로 내세우고 ‘세계화’를 발판 삼아 전세계에서 대지와 물과 공기, 그리고 인간을 극단에 이르기까지 몰아세우고 닦달한다. 그럼으로써 그 모든 것들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것이다. 어디 이 뿐인가. 후기자본주의는 우리가 스스로를 계몽과 계발의 대상으로 삼아, 상업화하도록 몰아세우고 닦달하고 있다. 우리는 낮에는 뼈빠지게 일함으로써 과잉생산하고, 밤에는 그 과잉을 또 죽어라고 소비한다. 이로써 현대사회에는 ‘자기-몰아세움’과 ‘자기-닦달’의 새로운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발명된 것이다.

이 책 2권, ‘시간/언어’ 편에서는, ‘개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시간’과 ‘언어’를 통해 들여다본다. ‘시간’ 부분은 윤성희의 소설집 ‘웃는 동안’을, ‘언어’ 부분은 심보선의 시집 ‘슬픔이 없는 십오초’를 중심에 두고 논의를 전개시킨다.

‘시간/언어’ 편에서 내 귀에 쏙 들어온 부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나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이라는 말로 표현되는 사유와 삶의 방법에 관한 것이다. 김용규에 따르면, 칸트의 ‘선의지’라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형식을 취한다. 내가 배고픈데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내가 추운데도 불구하고 모닥불 곁자리를 내어주는 것이 선의지이다. 바로 이 선의지를 통해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그런 점에서 인간이 인간이도록 하는 희망의 촛불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은 허구적 은유를 일컫는다. 이 은유가 가상의 실재를 만들어 우리의 생각, 마음, 언어, 행동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여 지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그는 예견한다. 은유적 언어야말로 인간의 생각과 정신 그리고 세계를 구성하고 조정할 수 있는 경이로운 도구라는 것이다. 그는 은유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고 보는데, 이에 관해서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김용규의 ‘생각의 시대’를 참조하시라. 은유의 역사를 실감나게 만날 수 있을 터이니.

자, 그렇다면 철학카페 문을 나서는 나와 너,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11월과 12월 광장에서 우리 시민들이 이미 여기에 답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위험사회’와 ‘유동하는 공포’ 속으로 몰아가는 사회체제의 모든 부당한 처사에 적극 대항하라고. 생각과 행동에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라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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