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6.09.07 18:07
수정 : 2016.09.07 18:11

‘그래도 되니까’를 넘어… ‘남톡방’ 고발한 남학생

[사소한 소다]<6> 대학 남톡방 언어성폭력 공론화 현상

등록 : 2016.09.07 18:07
수정 : 2016.09.07 18:11

연세대 총여학생회 '잇다'가 지난 1일 서울 신촌의 연세대 중앙도서관 입구에 게시한 모 학과의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 대화 내용.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최근 대학생들의 단체 카톡방(단톡방)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 붙은 화약고 같다. 지난해 2월 국민대 과내 소모임 단톡방에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성희롱 등 언어 성폭력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난 뒤 6월 고려대, 7월 서울대, 경희대, 8월 서강대에 이어 최근 연세대까지 대학 내 단톡방 성희롱 사태가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힘든 언어 성폭력을 자행한 각 대학 ‘남학생 카톡방(남톡방)’의 고발 경위는 다양하다.

국민대는 자치언론 국민저널이 ‘선배들의 아찔한 음담패설’ 이라는 기고문을 보도하며 처음 알려졌다.

올해 남톡방 언어 성폭력 연속 고발의 시작이었던 고려대 의 경우 단톡방 대화 내용에 회의를 느낀 내부 고발자가 피해자에게 단톡방 내용 전문을 전달하면서 수면위로 떠 올랐다. 서울대에서는 단톡방 소속 남학생이 술자리에서 피해자를 희롱하듯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피해자들은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 에서 “죄책감을 느끼며 보여준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실실 비웃으며 ‘너희가 보면 어떻게 할건데’ 식으로 ‘(카톡방) 봐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경희대에서는 단톡방 소속 남학생이 다른 지인에게 대화 내용을 전달하다가 피해 여학생에게 알려졌고, 서강대에서는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익명의 폭로글이 올라오며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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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대화 내용 공개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남자들끼리만 한 얘기를 왜 외부에 공개하느냐’, ‘그 정도 수위의 이야기는 남자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다’라는 반응이다. 이들은 주로 문제가 된 대화 내용보다 공개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지난해 국민대 남톡방이 처음 문제가 됐을 때에는 웹툰 ‘송곳’의 작가 최규석씨가 트위터에 내부 고발자를 비판하는 트윗을 올렸다가 비판을 받고 “여성과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성과 범죄성이 주는 위협과 공포를 바로 읽지 못하고 평소 걱정하던 사적 영역의 사찰, 규제 등에 대한 우려를 먼저 했다”며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최근 연세대 모 학과 남학생 단톡방을 고발한 남학생의 글이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5일 연세대 총여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에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단톡방을 제보한 남성의 이야기’ 라는 글을 올렸다. 지금까지 공론화된 단톡방 사건 중 내부고발자인 남학생이 입장과 생각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그는 이 글에서 “처음에는 단톡방을 보며 말할 만한 수위를 넘을 때가 있다고만 여겼지,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남성으로 살아오며 ‘남자는 짐승’이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고등학교 남톡방에 야한 사진을 올리고 주변 여자들을 시선 강간한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하던 환경, 대학 과 행사에서 선배들이 예쁜 후배를 옆에 앉혀 달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후배들은 그에 태클을 걸지 못하는 분위기가 당연시되면서 언어 성폭력이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하게 됐고 인식해도 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친구들을 통해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평소 내가 당연하다고 여기거나 문제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을 말과 글로 접할 수 있었다”며 “그런 후에야 이 사회에서 문제시하지 않았던 것들과 나 자신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더불어 그는 “일상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불편하고 예민하게 대해야 한다”며 “단톡방의 가해자만 낙인 찍고 단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는 “삶에서, 미디어에서, 집단에서 불편하게 받아들이고 예민하게 인지해야 했던 말과 행동들을 ‘남자는 원래 그래’,‘웃자고 한 얘기인데 뭐가 문제야’라는 말로 넘겨 왔기 때문에 유지된다고 생각한다”며 “특히 남성들이 이러한 언행들에 대한 경각심을 놓지 말고 주변을 계속 바라봐 주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5일 연대 '남톡방'을 제보한 남학생의 글 '하나도 자랑스럽지 않습니다'가 게시된 연세대 총여학생회 페이스북 페이지.

‘남톡방’의 언어 성폭력이 왜 갑자기 폭발적으로 공개되는 것일까. ‘진격의 대학교’,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라는 책을 쓴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최근 젠더 감수성이 사회적으로 높아지면서 남성들 스스로 과거에 약간의 불편을 느꼈던 발언들을 다시 판단하며 문제를 인지하게 됐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단톡방 문제를 넘어 일상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정교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각에서 ‘남성들끼리 한 이야기를 외부 공개한 것은 너무하지 않느냐’는 항변에 대해 “2014년에 미국 프로농구팀 LA 클리퍼스의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이 여자친구와 통화하며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이 공개돼 미 프로농구리그(NBA)에서 영구 퇴출됐다”며 “사적 영역은 공익성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추구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사소한 소다 더 보기

(1) “남자들의 수다에 ‘음담패설’ 꼭 끼어야 하나요”

(2) “내 아이돌의 젠더의식을 말하면서 팬질합니다”

(3) #노브라 #명동 #아무_일도_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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