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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 느끼하지 않은 멜로’ 그려내는 섬세한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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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그대로… 느끼하지 않은 멜로’ 그려내는 섬세한 연출

입력
2018.05.02 04:4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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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작마다 출연 배우 몸값 급등

촬영장 주변 시민에게 공손하고

배우ㆍ스태프 배려하는 수칙 운영

완성대본으로 리허설 없이 촬영

“다큐멘터리 같은 사실성 추구”

감정 전달 위해 탁월한 선곡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안판석 PD의 섬세한 세공술로 빚어졌다. JTBC 제공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안판석 PD의 섬세한 세공술로 빚어졌다. JTBC 제공

드라마 애호가라면 쉽게 풀 수 있는 문제 하나. JTBC ‘아내의 자격’(2012)과 ‘밀회’(2014)의 공통점은? 불륜을 아름답게 그려낸 멜로 드라마라고 답할 사람이 적지 않다. 난이도를 조금 높인 문제 하나 더. 두 드라마와 요즘 인기몰이 중인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예쁜 누나’)의 공통분모는? 답은 안판석(57) PD. MBC ‘장미와 콩나물’(1999)과 ‘하얀 거탑’(2007) 등 화제작을 만들며 최진실 유아인 김명민 등 출연배우들의 이름값을 급등시킨 인물이다. 안 PD는 짧은 시간 숱한 재능이 명멸하는 드라마 세계에서 어떻게 20년 넘게 생존하며 화제작들을 잇달아 빚어냈을까.

지난 3월 열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안판석 PD. JTBC 제공
지난 3월 열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안판석 PD. JTBC 제공

“스태프 가족관계까지 훤한” 50대 아재의 섬세함

“저 분들은 우리의 촬영에 피해를 주는 게 아닙니다. 저 분들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겁니다.” 지난달 경기 수원의 한 카페 앞에는 구경꾼 수십 명이 모여들었다. ‘예쁜 누나’ 촬영을 위해 배우 정해인이 나타나자 “정해인!”을 외치는 사람들로 소란이 일었다. 안판석 PD는 스태프를 불러 모아 “저 분들에게 ‘조용히 해달라’거나 ‘잠깐 나와달라’ 할 때 신경 써서 말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안판석 연출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안 PD는 방송계에서 섬세한 ‘드라마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드라마 기획이나 연출을 넘어 배우 및 스태프 관리 등 세세한 곳까지 살핀다. ‘예쁜 누나’의 김지연 총괄프로듀서(CP)는 “안 PD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아 배우나 스태프에게 인간적으로 다가간다”며 “스태프들의 가족 관계까지 다 알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배려를 바탕으로 일을 하니 안 PD와 처음 손발을 맞추는 스태프는 ‘문화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하루 촬영 시간 12시간’ ‘최소 휴식시간 보장’ 등 다른 촬영장에서 볼 수 없는 근무 규칙을 적용해서다. 손예진은 최근 인터뷰에서 “안 PD께서 노트에 ‘나와 일하면 지켜질 수 있는 것’으로 ‘촬영 시간 엄수’ ‘화장실 찾기 어려운 현장은 가지 않는다’ 등을 일일이 적으셨다”고 말했다.

뜨거운 화제를 모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키스 명장면들은 대부분 1회 촬영으로 완성됐다. JTBC 제공
뜨거운 화제를 모은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키스 명장면들은 대부분 1회 촬영으로 완성됐다. JTBC 제공
사실성을 중요시하는 안판석 PD는 날 것의 느낌을 최대한 담아내는 연출을 추구한다. JTBC 제공
사실성을 중요시하는 안판석 PD는 날 것의 느낌을 최대한 담아내는 연출을 추구한다. JTBC 제공

‘메모광’ 안판석이 그리는 ‘리얼리티 마술’

50대 노장 PD는 3년 전 한국일보에 소개된 시 한 구절을 휴대폰에 저장해 품고 다닌다. “세상은 자주 이상하고 아름다운 사투리 같고, 그래서 우리는 자주 웃는데. 그날 너는 우는 것을 선택하였지.” 안 PD는 지난달 열린 ‘예쁜 누나’ 기자간담회에서 김승일 시인의 시 ‘나의 자랑 이랑’의 일부를 읊으며 “어느 날 한국일보에 나온 시를 보는데 가슴을 쳤다”고 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오늘의 일상은 살아남은 자의 일상”이라며 일상의 특별함을 강조했다. 그의 드라마도 일상을 다루며 특별한 순간을 시청자에게 안긴다.

안 PD가 연출하는 드라마 대부분은 리허설 없이 촬영이 이뤄진다. 첫 촬영 만에 “컷! 오케이!”를 종종 외친다. 여느 드라마 현장과 달리 대본을 거의 완성해놓고 촬영에 임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꾸미지 않은 사실성을 추구하며 날 것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는 연출 의도도 작용한다. ‘예쁜 누나’와 ‘아내의 자격’에 출연한 배우 길해연은 “배우들은 엄청 긴장하지만, 안 PD께선 그때(첫 촬영)의 느낌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 PD의 드라마에는 여러 각도에서 따로 찍거나, 재촬영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16부작 미니시리즈 한 편은 보통 90~100회차 촬영을 하는데 비해 ‘예쁜 누나’(16부작)는 66회차 만에 촬영이 마무리 될 예정이다.

여성 시청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예쁜 누나’의 키스 명장면도 1회 촬영으로 빚어진 경우가 많다. 정해인이 손예진을 번쩍 들어 안고 입을 맞추는 장면 등도 연습 없이 바로 촬영됐다. 손예진은 “다큐멘터리인지 드라마인지 모를 정도로 안 PD님은 현장에서 사실성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JTBC ‘아내의 자격’은 강남 계급사회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JTBC 제공
JTBC ‘아내의 자격’은 강남 계급사회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JTBC 제공
JTBC ‘밀회’는 두 남녀의 파격적인 멜로를 그리며 상류층의 위선과 허세를 풍자한다. JTBC 제공
JTBC ‘밀회’는 두 남녀의 파격적인 멜로를 그리며 상류층의 위선과 허세를 풍자한다. JTBC 제공

음악의 향연… 막장도 품격 있게

‘아내의 자격’과 ‘밀회’는 불륜 드라마지만 저질로 느껴지지 않는다. 강남 상류층의 이중성(‘아내의 자격’)과 재벌가 예술재단의 비리(‘밀회’)라는 현실을 더하며 여느 ‘막장’과 거리를 둔다. 감성 어린 음악이 곁들여지며 기이한 품격까지 느껴진다. ‘아내의 자격’에선 윤서래(김희애)가 자전거를 타거나 김태오(이성재)를 만날 때마다 ‘예스터데이 예스 어 데이’(제인 버킨 노래)가 흘렀다. ‘밀회’ 속 오혜원(김희애)과 이선재(유아인)의 불륜은 ‘피아노 맨’(빌리 조엘 노래)이 흐르며 애절한 사랑으로 표현됐다.

‘예쁜 누나’도 음향과 음악 효과를 적절히 활용한다. 윤진아와 서준희(정해인)의 데이트 장면에서 주변 소리를 소거하고 ‘스탠드 바이 유어 맨’(카를라 부르니 노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도드라지게 볼륨을 높였다. 진아의 빡빡한 직장생활에는 음표 하나 넣지 않아 현실과 사랑의 판타지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몰입도를 높였다.

안 PD는 감정 전달을 위해 음악을 적극 활용하지만 남발하진 않는다. ‘아내의 자격’부터 안 PD와 협업하고 있는 이남연 음악감독은 “‘예쁜 누나’의 음악 사용 비중은 사실 다른 드라마에 비하면 적은 수준이지만, 음악이 효과적으로 활용돼 감동이 큰 듯하다”고 밝혔다.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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