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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칼럼] ‘약함’을 ‘정의’로 포장하는 사람들

입력
2018.07.11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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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복수’는 사전에 없지만 다음의 두 사항 가운데 한 가지라도 해당되면 사적 복수라고 볼 수 있다. ①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과 이해득실로 누군가의 죄를 구성하고 그에 따라 상대방을 징치하려는 행동. ②법률을 어긴 죄인을 사법 절차에 맡기지 않고 개인이 직접 벌을 주려고 나선 행동. 이 기준은 ‘미투’와 사적 복수가 뒤섞일 수 없다고 말한다. 미투는 애초부터 법률에 명시된 죄를 묻는 것이었으며, 대부분의 미투는 ‘공개 폭로’와 함께 자신의 피해를 어김없이 법정으로 가져갔다. ‘김부선 스캔들’이 미투가 될 수 없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심기를 사법 절차에 부칠 근거가 없었기에 유권자에게 자신의 사적 복수를 위탁했다. 참고로 사전에 등재된 ‘사형(私刑)’은 오직 ②만을 가리킨다.

인간 본능은 약자를 동정하고 지원하려고 한다. 우리는 스포츠 경기를 볼 때도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한에서는 보통 강팀(강대국)보다는 약팀(약소국)을 응원한다. 이런 공감 능력이 인간을 고귀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약해서 옳다”라는 주장은 틀렸다. 예컨대 위안부 할머니들은 약하기 때문에 옳은 것이 아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제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옳은 사람들이지 “우리는 약하기 때문에 옳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히틀러에 환호했던 평범한 독일 소시민들이 실로 그러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베르사이유 조약과 유대인 양쪽으로부터 노략질 당하는 약자라고 생각했고, 자신을 구원해줄 초인적인 힘을 갈망한 끝에 나치즘을 지지하게 되었다. 정의롭지 못하면서도 “약해서 옳은 것”이 맞다면 제주도에 입도한 예멘 난민들에게 돌팔매질을 하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정의롭다. 이들은 자신들이 예멘 난민보다 더 약자라고 강변한다. 매일의 뉴스를 보면 한국인의 일자리와 여성을 위협하는 것은 난민이 아닌 우리인데도 이들의 선입견과 감상은 사실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니체의 인간학’(다산북스,2016)은 ‘착함’을 내세운 약자가 파시즘과 친화적일 수 있다고 강력하게 경고한다. “모두가 괴로워하는 것은 올바른 괴로움이고, 모두가 바라는 것은 올바른 바람이며, 모두가 그만두기를 바라는 것은 즉시 그만둬야 한다. ‘모두가 곤란해 하잖아요!’라고 눈물을 글썽이며 그 이상함에 대해 조금도 반성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착한 사람이다. 모두가 틀릴 때도 있는데, 그런 진리가 머릿속을 스치는 일조차 없다.” 인용된 문장에 나오는 ‘모두’와 ‘눈물’은 밀란 쿤데라가 키치(kitsch)를 새로 정의하려고 했을 때 필요했던 단어들이기도 하다.

쿤데라는 눈물과 같은 온갖 감상벽(感傷癖ㆍsentimentality)을 통해 대중을 한 덩어리로 반죽하는 키치는 파시즘의 도관(導管)이라고 말한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민음사,1999)에서 이렇게 말한다. “키치는 백발백중 감동의 눈물 두 방울을 흐르게 한다. 첫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 저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 번째 눈물은 이렇게 말한다. 잔디밭을 뛰어가는 어린아이를 보고 모든 인류와 더불어 감동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키치가 키치다워지는 것은 오로지 이 두 번째 눈물에 의해서다.” 필요한 것은 이성이지만, 감상이 독재를 행사하는 ‘키치의 왕국’에서 “이성이 반박의 목청을 높이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짓이다.”

천부인권은 인종ㆍ성별ㆍ나이ㆍ직업ㆍ종교를 가리지 않는다. 공직자의 사생활 역시 뭇 시민과 마찬가지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의 사생활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한, 유권자가 ‘알 권리’를 요구할 권한은 없다.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공적 가치란 없다. 6월13일 치러진 경기지사 선거는 공적 가치로 둔갑한 사적 복수가 유권자의 눈과 귀를 온통 가려버린 탓에, 출마자들에 대해 따져보아야 할 진짜 중요한 사항들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가령 이재명 당선인의 정책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 가장 크게 손해 보는 것이 경기도 도민들이라면 이 책임은 누가 져야 하나. 경기지사 선거를 ‘깜깜이 선거’로 만든 장본인들은 반성해야 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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