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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칼럼/4월 1일] 이명박 검찰 박근혜 검찰

입력
2014.03.3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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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안전과 안위를 책임지고 어떠한 비판과 비난으로부터 이 조직을 지켜내는 '조직의 수호자', 그것이 바로 MB검찰의 실체다." 참여연대는 이명박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에 발표한 '이명박 정부 검찰보고서'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정권의 방패막이로 전락한 검찰의 추악한 모습은 그 해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사건에서 유감없이 드러났다. 대통령 퇴임 후 살 집을 나랏돈으로 헐값에, 그것도 아들 명의로 매입한 사건이 실체였다. 미적거리던 검찰은 8개월이나 지난 후 관련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다. '정권 봐주기 수사'라는 여론이 들끓자 특검이 임명돼 청와대 경호처장 등 여러 명이 기소되고, 법원도 유죄로 인정했다. 검찰로서는 굴욕적인 일인데도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은 더 노골적이었다. 엉터리 수사로 국민적 지탄을 받아 재수사까지 했는데도 몸통은 철저히 피해갔다. 청와대와 총리실 중간 간부들만 마지못해 사법처리하고 불법사찰을 기획ㆍ지시하고 보고를 받아온 청와대 고위층은 손도 대지 못했다. 사찰 내용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한 것으로 의심되는 'VIP 일심 충성문건'의 실체가 드러났지만 언급조차 없었다.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한상대 검찰총장은 대통령 보호에만 급급했다. 오죽하면 보다 못한 부하들이 '검란(檢難)'을 일으켜 검찰총장을 쫓아냈을까.

그런 분위기에서 잠깐이나마 정치검찰이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들었다. "저는 제 자신이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검찰을 이용하거나 검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이 결코 없을 것임을 국민 여러분께 엄숙히 약속 드리겠다"는 박근혜 후보의 말은 기대를 부풀렸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걸 깨닫는 데는 불과 1년도 걸리지 않았다.

채동욱 검찰총장이 박근혜 정부의 역린(逆鱗)을 건드려 내몰리면서 검찰은 칼자루를 누가 쥐고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권력은 통치를 위해 검찰의 고삐를 죄고, 검찰은 출세를 위해 정권에 충성해온 관행이 다시 굳건해졌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관련 수사는 정치검찰의 완벽한 회귀를 보여줬다. 애초 이 사건의 본질은 여권 인사들이 중요한 비밀로 분류된 대화록을 끄집어내 선거에 악용한 거다. 그런데 검찰은 여권의 '사초폐기' 여론몰이에 부응해 사건을 비틀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중대 범죄를 저지른 주범이라는 취지의 수사결과를 내놓았다. 반면 명백한 범법행위인 대화록 유출 수사는 겨우 시늉만 냈다. 수사를 시작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꿩 구워먹은 소식이다.

채 전 총장 의혹과 관련한 수사에서도 권력에 굴종하는 검찰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 비서실이 전방위로 나서 혼외 의심 아들의 개인정보를 캐내려 한 사실을 진작 밝혀내고도 수사를 할 의지가 없다. 관련자 소환은커녕 몇 달 동안 법리검토만 하더니 정당한 감찰활동으로 처벌이 어렵다는 내부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 놓고는 채 전 총장의 개인비위 의혹에는 연일 속도를 내고 있다. 도덕성에 흠집을 내 불법사찰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전형적인 먼지털기식 수사다. 청와대만 만나면 주춤거리는 모습이 이명박 검찰과 한 치도 다르지 않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재수사까지 하면서도 망신을 당했던 민간인 사찰 사건의 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권력에 한 없이 나약하면서도 힘없는 사람은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게 검찰이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서 보듯 사회적 약자의 인권에는 권력자의 일만 분의 일만큼의 관심도 없다. '황제노역' 파문도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으면 애당초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검찰의 독립성은 돈 있고 빽 있는 사람에게나 해당될 뿐이다.

검찰총장은 언제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올 각오로 정치권력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은 권력이 검찰을 이용하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우선이지만 검찰 스스로도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검찰이 자꾸 정치권력에 아부하면 국민은 머지 않아 검찰을 버리려 들 것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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