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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 폐쇄적 문화, 미투사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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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 폐쇄적 문화, 미투사태 불렀다

입력
2018.02.23 16:0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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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판ㆍ소문에 인생 좌지우지…

교수 말 한마디가 곧 절대권력”

공동작업 많아 위계서열 엄격

소통 잘 안돼 문제 제기 힘들어

학교ㆍ교수 성추행 등 묵인 말고

공론화 앞장서야 문제 해결 지적

문화예술계 내 '미투운동'이 업계의 축소판인 예술학과로 번지고 있다. 사진출처=윌엔터테인먼트, 위키미디어
문화예술계 내 '미투운동'이 업계의 축소판인 예술학과로 번지고 있다. 사진출처=윌엔터테인먼트, 위키미디어

“예술대생들은 성폭력을 당해도 제대로 문제제기 못해요. 바닥이 좁아 목소리를 냈다간 업계에서 매장 당하기 일쑤거든요.”

수도권 소재 대학 연기학과를 졸업한 백모(30)씨는 최근 청주대 연극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배우 조민기씨를 향한 성폭력 고발을 비롯, 예술대생의 미투(#MeTooㆍ나도 당했다) 운동이 분출되는 것을 보며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 예술대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와 교수들의 ‘절대적 입김’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백씨 역시 예술대 재학 시절, 성희롱 피해 사실을 교수에게 알렸지만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피해자인 백씨만 ‘괜한 분란을 일으킨 당사자’가 됐다. 백씨는 “남자 선배의 성희롱을 참다못해 교수를 찾아갔더니, 가해자와 삼자대면을 시키면서 ‘알아서들 해결하라’고 했다”며 “이후 가해자가 우리 기수에게 단체 기합을 줬고, 나는 괜히 분란을 일으킨 ‘까탈스러운 애’가 됐다”고 말했다. 백씨는 결국 10년 넘게 해오던 연기를 졸업 후 그만뒀다. 예술대가 ‘업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정도로 바닥이 좁다 보니 관련 분야로 진출해도 사정이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술대 졸업생들은 특히 성추행 등 교수의 성폭력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만 이를 폭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고 입을 모은다. 평판이나 소문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폐쇄적인 예술계에서 교수 말 한마디가 곧 절대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노모(29)씨는 “가뜩이나 무용으로 돈 벌기도 힘든데 교수에게 밉보이면 그 길로 끝”이라면서 “그걸 권력으로 생각하고 술자리 때마다 불러내고, 취하게 한 뒤 성추행 하는 일이 잦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한 A씨도 “발레리노들은 몸에 밀착되는 타이즈를 입는데 여자 교수들이 중요 부위에 은근슬쩍 손을 닿게 한다든지 불룩한 것 좀 집어넣으라며 희롱도 한다”며 “졸업 이후 교수 입김이 없으면 무용단 입단도 쉽지 않아 불만을 얘기할 수도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대구의 한 사립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했던 채모(30)씨 역시 “교수가 ‘내가 이 바닥에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딴 식으로 할 거면 영화 꿈도 꾸지 말라’고 협박해 부당한 대우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후배 집단 폭행사건 등에서 드러난 예술대 특유의 군기잡기 문화도 성폭행 피해 사실 폭로를 더 어렵게 한다. 공동작업이 많은 특성상 위계서열이 엄격해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문제를 제기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미투 열기가 예술대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그 동안 학내 성추행, 성폭행에 대해 묵인했던 학교, 교수들이 문제를 지적하고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청주대는 ‘조민기 사태’ 이후 부랴부랴 교수 평의회 이름으로 사과문을 내고 성희롱ㆍ성폭력 근절을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노선이 활동가는 “학교가 엄중한 처벌과 진상조사로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교내 인권센터나 상담소들이 전문성을 확보하는 등 실질적인 변화가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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