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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늪에 빠진 학교… 교사를 신뢰해야 혁신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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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늪에 빠진 학교… 교사를 신뢰해야 혁신이 시작된다”

입력
2016.08.0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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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연구 동아리 활성화 시도

교사로서 존엄성 느낄 수 있게

연구 주제ㆍ결과물에 간섭 않아

교육 관료에게도 신뢰감 주고

전북 교육 혁신에 기여하는

시스템 마련하는 게 교육감의 일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은 “교육감이 되고서 교사에게는 가르침의 보람을,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즐거움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했다”며 “거기서 떠오른 것이 바로 혁신학교”라고 말했다. 전북도교육청 제공
김승환 전라북도 교육감은 “교육감이 되고서 교사에게는 가르침의 보람을,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즐거움을 찾아줄 수 있는 방법이 뭔지 고민했다”며 “거기서 떠오른 것이 바로 혁신학교”라고 말했다. 전북도교육청 제공

학생들은 마음껏 배울 수 있고, 부모는 안심하고 학교를 보낼 수 있고, 교사는 소신껏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한국의 교육 ‘당국’은 모든 교육 주체들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교육부를 비롯한 교육 당국은 원성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 교육에 대해 책임을 지기보다는 책임을 ‘묻는’ 위치에서, 교육을 활성화하는 것이 아니라 위축시킨다고 비판 받는다. 재선한 진보 교육감인 전북의 김승환 교육감을 지난달 26일 만나 위기의 교육에서 탈출하기 위해 교육 당국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교사에게 필요한 건 정부ㆍ학부모의 신뢰

“교육감이 된 때가 2010년 7월 1일이다. 그때 교육 현장이 역동성보다는 정체성, 자율성보다는 타율성, 다양성보다는 획일성, 강제성이 하나로 묶여서 작동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기가 죽어 있고 교사들은 의욕이 많이 꺾여 있었다. 의욕이 꺾여 있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차마 말하지 못하지만 수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서 누가 전북 교육감이 된들 변화를 일궈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먼저 들여다 본 것이 교사들이다. 교육감이 아무리 그럴싸한 철학, 해박한 논리, 이런 걸 가지고 나를 따르라 한들 아이들과 날마다 만나는 교사들이 전혀 의욕이 일어나지 않고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가 나타나지 않을 때 그 어떤 것도 정책으로서 성공할 수는 없다. 그래서 교사들에게 뭔가를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교사들을 신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불신이다. 교육 당국은 교사들을 불신하고, 교사들은 교육 당국을, 학부모는 교사를, 교사는 학부모를 불신한다. 불신이 깊을수록 믿고 맡기는 게 아니라 감시하고 통제하고 평가하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교육 당국과 학부모 모두로부터 불신을 받는 교사들은 위축되고 교육 활동에 대해 냉소하게 된다. 가르치는 일을 맡고 있는 교사들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활기찬 교육을 기대할 수는 없다. 교사들이 가르치는 데 용기를 낼 수 없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학교가 배우는 게 안전한 공간이어야 하는 것처럼 교사들에게 학교는 가르치려는 용기를 내는 것이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 따라서 교육감으로서 그가 가장 신경을 많이 쓴 것은 교사들이 가르칠 수 있다는 용기를 내도 된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었다. 그는 이것을 “교사의 존엄성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로서의 존엄성이 존중 받고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다른 인센티브가 없더라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교사들은 기쁘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10년에 취임하고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이 교사들이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교사 스스로 전문성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 기회도 시혜적이 아니라 아주 겸손하게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교사 연구 동아리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했다. 교육국에 과가 5개 있다. 거기 몇 개 과에 연구 동아리와 관련되어 있다. 연구 동아리 공모를 해서 심사를 하고 연구비를 지급한다. 그때 내가 간부들에게 강조했던 것이 관료적으로 접근하지 말자는 거였다. 예를 들어 기간이 딱 1년 지났는데 어떤 동아리가 연구 결과물을 내지 않더라도 왜 내지 않냐고 묻지도 말자고 했다.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 했을 거라고 그런 신뢰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어떤 걸 연구하는지에 대해서도 간섭하지 말자고 했다. 교사를 신뢰해야 한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을 믿는 게 아니다. 정책을 통해 교사들이 ‘우리 교육청은 정말 교사들을 신뢰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교사들의 연구회에 대한 지원이 전북에서 초기에 혁신 교육을 정착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 고민을 하고 공부를 해온 그런 교사들이 먼저 모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움직이면서 수업도 연구하고 지역의 사정에 맞는 방법론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힘을 가지고 전북은 2011년 21개교에서 혁신학교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14년부터 방향을 ‘혁신학교에서 학교혁신으로’ 바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혁신학교 이후의 전북 교육의 목표는 ‘어느 학교를 가더라도 학생들이 안정적인 교육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느 학교를 가야 하고, 어떤 담임을 만나는지에 대한 불안과 긴장을 사라지게 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전북의 교육은 최소한은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게 교육 혁신이라는 점이다. 교사들의 신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학부모들이 교육 현장에 대해 신뢰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는 교사들이 교육 현장에서 학부모로부터 에너지도 많이 받지만 상처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학부모가 ‘참여하되 간섭하지 않으며’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게 관건이고, 이를 위해 전북 교육청이 학부모 교육에도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전북도교육청에서 문화학자 엄기호(사진 오른쪽)씨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승환 교육감. 전북도교육청 제공
지난달 26일 전북도교육청에서 문화학자 엄기호(사진 오른쪽)씨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승환 교육감. 전북도교육청 제공

관료의 욕망, 교육 혁신 자양분으로 삼다

“교육 영역 자체가 보수 영역이다. 보수의 특징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다는 것이다. 변화했다가 현재 내 상태가, 내가 가지고 있는 몫에 혹시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 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다. 이런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해주는 게 중요하다. 교육 관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교육감이 혼자 일할 수 없다. 교육 관료들과 함께 일한다. 교사들을 존중해 주는 것만큼이나 교육 관료들에 대해서도 교육감이 그들을 존중하고 신뢰한다는 확신을 일상적인 업무 처리 과정에서부터 줘야 한다. 물론 처음에는 관료들이 의심했다. 자기를 신뢰하는 게 아니라 시험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신뢰를 주는 행동이 반복되면 신뢰가 구축된다. 교육 관료들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겠는가? 승진이다. 공직 사회에서 5급 사무관 승진하는 것은 말 그대로 군인이 별 따는 것과 같다. 신주 단지에 쓰이는 말이 달라질 정도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이런 점에서 나는 관료들이 승진에 대해 욕심을 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교육감 눈치보고 그 사람의 ‘은혜’를 입어 승진하는 게 아니라 교육에 기여하며 자신의 힘으로 승진하자고 했다. 그래서 승진심사위원회를 만들고 거기에 다 위임했다. 단 그 승진이 교육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하면 된다. 학원가서 공부해서 승진하는 방식은 안 된다. 그래서 어디 한직에 가서 일은 안 하고 시험 공부하는 것 이런 걸로 승진을 심사하지는 말자고 했다.”

내가 그와 인터뷰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이었다. 소위 진보적 사람들은 승진과 같은 타인의 욕망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다. 속물적이라거나 동물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승환 교육감은 타인의 욕망, 특히 관료의 욕망에 대해 긍정했다. 그런 욕망을 가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그 욕망이 교사들이 가르치는 용기를 내고 학생들이 배움의 기쁨의 얻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럴 수 있는 기준과 시스템을 만드는 게 교육감의 일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교육감의 가장 큰 권한인 인사권을 놓는 일이기에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스스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사권을 놓아버리고서 일을 추진할 수 있겠냐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는 그런 우려가 “분명히 현실성 있는 우려고 우리 경험상 증명이 되는 우려”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직 사회가 “기관장이 직원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각인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역설했다. 그렇게 해서는 자기의 일에 대해 소신과 자부심을 가질 수 없고 눈치만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렇게 신뢰하는 만큼 관료와 교사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 없는 것이 공직사회의 기강을 세우는데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학교서 ‘지적 전율’ 느낄 수 있어야

“우리나라 교육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예를 들어 제가 전공이 법학인데 법대 4학년을 졸업하고 계약서를 못 쓴다. 다른 공부들도 비슷할 것이다. 무엇을 위해 배우는가. 살기 위해 배운다. 삶이 배움의 동기를 유발해주고 문제를 제기하고 그게 배움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해결책을 찾고 그게 다시 삶으로 이어져야 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신의 삶을 지켜주고 이끌어갈 수 있는 그런 배움이어야 한다. 이럴 때 배우는 것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순간에 몸의 반응이 있다. 지적 떨림, 지적 전율인데. 엄청나다. 이 지적 호기심의 크기가 가장 큰 존재가 바로 아이들이다. 수업은 그것으로 채워져야 한다. 이것을 잘 해나가는 게 학교 교육이어야 한다.”

혁신 교육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학력의 문제’에 대해 질문했을 때 ‘뜻밖에’ 그가 한 답변이다. 물론 그는 성적의 현실적 중요함을 강조했다. 성적이 무너지는 순간 그가 제시하는 ‘참학력’이든 뭐든 한국의 현실에서는 다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참학력’이라는 말을 통해 지식 자체가 인간에게 가져다 주는 전율, 기쁨에 대해 말했다. 지식의 효용은 ‘신분 상승’이나 ‘실용적인 효용’이라는 도구적인 것만 있는 것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지식에 대해 그런 도구적인 접근은 배움을 지속시키지 못한다. 지적 전율을 맛볼 때만 배움을 지속할 수 있다. 지식이 가져다 주는 ‘전율’은 분별로부터 온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이전까지 분별하지 못하던 것을 분별하게 되었을 때 더할 나위 없는 전율과 쾌감을 느낀다. 그리고 지식의 힘에 대해 매혹되고 이 힘에 매혹된 사람만이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학교가 이 지적 전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된다면 그것은 아마 학교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 될 것이다.

문화학자

▦김승환 교육감은

1953년 전남 장흥 출생. 전북 익산에서 성장했다. 고려대 대학원 법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전북대 법대 및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냈다. 독일 트리어대 법대 객원교수와 전북 평화와인권연대 공동대표, 전북지방노동위원회 심판담당 공익위원,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용산참사 국민참여재판 재판관, 한국헌법학회 회장, 전주인권영화제 조직위원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2010년 제16대 전북도교육감으로 당선했고, 2014년 재선했다. 교육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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