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등록 : 2017.02.02 13:00
수정 : 2017.02.02 13:32

“설날에 각자 우리집 행, 감사해야 하는 일인가요”

[사소한소다]<22>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 부부 인터뷰

등록 : 2017.02.02 13:00
수정 : 2017.02.02 13:32

'서늘한 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서밤) 작가가 그린 작가 본인과 남편의 캐릭터.

“왜 차례상에 절하지도 못하는 여자들만 음식을 만들어야 해?”

“왜 명절 전날과 당일 아침엔 시댁에 있는 게 당연하고 그 다음에 우리 집에 가야 해?”

명절을 두고 당연한 듯 이뤄지지만 많은 여성들이 마음에 품고 있는 의문이자 불만이다. 명절마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관철되는 이 불합리한 상황에 대해 어떤 이들은 불편함과 마찰을 감수하며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하지만 일터와 친구들 사이에서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이들 중에서도 명절 때만큼은 ‘어른들 생각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는 현실론 속에 가정의 평화를 위해 조용히 앞치마를 걸치고 전을 부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명절에 며느리는 시댁에 가지 않겠다”며 이러한 관습에 정면으로 맞선 부부가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 “며느리의 명절 불참을 수용한 시부모에게 고마워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자신의 블로그에 그림일기 식 웹툰 ‘서늘한여름밤의 내가 느낀 심리학썰’을 연재하고 있는 서늘한여름밤(이하 서밤ㆍ29) 작가는 설 연휴 직전인 지난달 28일 올린 최신화에서 결혼 후 처음 맞는 명절에 남편만 친가에서 연휴를 보내고 명절 다음주에 부부가 함께 시부모를 찾아 뵙기로 결정한 데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 블로그 바로가기 )

작가는 ‘우리의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라는 제목의 웹툰에서 “며느리의 명절 불참을 시부모가 수용했다고 고마워해야 하나”고 의문을 제기하며 “시부모와 며느리가 갈등이 생겼을 경우 내가 잃는 것은 ‘25년간 모르고 살던 중년부부’이지만 그분들이 잃는 것은 자신들의 자식인 남편”이라고 썼다.

이 내용은 곧 논쟁으로 번졌다. 평소 8만명이 구독하는 작가의 페이스북 페이지( 바로가기 )에 한 회당 100여개 정도 달리는 댓글은 여기서는 600여개 이상 달렸다. 회당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는 정도인 작가의 블로그에도 이번 화엔 8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의 한 장면. 서밤 블로그

평소 ‘서밤’ 작가는 작가의 전공분야인 임상심리뿐 아니라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 등 페미니즘 이슈가 있을 때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했으며 특히 최근 결혼해 이제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자신의 친부모 혹은 시부모와의 관계 맺기에 대한 고민을 그려내 2030 여성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이번화는 상황이 달랐다. “결혼생활 10년 만에 돌고 돌아 깨달은 진실을 이렇게 빨리 깨닫다니 대단하다”며 부부의 결정을 지지하는 반응도 일부 있었지만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하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오랫동안 가부장제에 살아온 시부모님이 작가의 결정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최소한 고마워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부터 “남편을 사이에 두고 시부모님과 줄다리기를 하자는 거냐” “작가가 이기적이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에 서밤 작가의 남편(31)이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오랜 시간 부모님과 대화하고 합의했던 사안”이라며 댓글을 달며 비판을 논박하기도 했다.

설 연휴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저녁 한국일보와 만난 이들 부부는 “‘고마워하지 않겠다’라는 표현이 이번화의 핵심이었다”면서 “반응을 의식해 표현을 달리했다면 주제가 바뀌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이 이야기는 결국 나의 이야기였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부부와의 일문일답. 작가가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어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웹툰이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어느 부분이 가장 쟁점이었다고 보나.

작가: 독자들이 크게 반응한 부분이 ‘25년 동안 모르고 산 중년부부’ ‘최소한의 관계가 될 조건을 통과했다’ ‘고마워하고 싶지 않다’ 이 세 부분이었던 것 같다.

-부부가 서로 합의했고 가족과 오랫동안 대화했다고 해명했다. 어떻게 하게 됐나

작가: 저는 결혼해서 가부장제 문화에 노출되고 싶지 않았고,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계속 “나는 명절에 너희 집 가서 일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해 왔고, 둘 사이에서는 합의가 쉽게 돼서 어떻게 이것을 실행할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남편: 저는 우리집에서 어머니를 보면서 많이 느꼈다. 할머니와 아들 다섯인 가부장적인 집에서 며느리로 사신 어머니는 아버지가 할머니의 부당한 요구까지 다 수용하는 효자였기에 고스란히 그 피해를 감당해야 했다. 아들인 저는 어느 정도 비껴갔지만 여동생은 부모님의 관계와 갈등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저는 이런 분위기가 군대에서 병장이 먹은걸 일병 이병들이 치우는 것 같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고, 집에서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해결책으로 어떤 것을 생각해봤나?

남편: 원래는 결혼 1년 전 쯤에는 추석에는 우리집, 설날에는 너희집 이렇게 번갈아가면서 횟수를 줄이자고 생각을 했다. 그러다 결혼을 앞두고 추석 전날 차례 음식준비를 하러 어머니와 할머니댁에 가서 함께 숙모들과 차례 음식을 만들었는데 큰아버지가 그걸 보시곤 저를 혼내셨다. 게다가 당신은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술상을 차려오라고 어머니를 시키는걸 보고 ‘필요하시면 돈을 좀 드릴 테니 나가 계시라’ 하고는 큰아버지를 내보냈다. 그걸 겪으면서 아예 결혼하면 아내가 명절엔 우리집에 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명절에 남의 집 제사를 여자들만 준비하는 걸 보기 싫었고, 명절만 피해서 그 전후로 따로 인사 드리기로 했다.

-그런 결정을 부모님께 말씀 드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남편: 처음 어머니께 명절 이야기를 꺼낸 것이 벌써 3년 전이다. 어머니가 서밤이랑 결혼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고, 저는 어머니께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말씀 드렸다. “명절에 가서 일하는 것 등 소위 '며느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바라면 안될 것 같다, 엄마는 자식처럼 생각하려고 하지만 30년간 다른 사람에게 길러진 거니 엄마의 자식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엄마를 굉장히 사랑하지만, 결혼해서 어떤 의견 충돌이 있으면 무조건 아내 편이다. 엄마도 그걸로 계속 고통 받았지 않았냐”고도 했다. 분명히 어머니가 서운해 하시는 부분도, 받아들이시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서밤 작가의 부모님은 어떻게 받아들였나

작가: 어머니는 예전부터 당신이 꿈꾸던 걸 제가 실현하니 좋아하셨고, 아버지는 제 성정을 아시니까 별 말씀 하시진 않았다.

-시어머니도 평소에 이런 명절문화에 비판적이셨나

남편: 어머니도 그런 문화를 참 싫어하셨다. 제가 명절 음식 만들며 일하는 건 그러려니 하는데 여자들이 일하는 건 싫다고 계속 말씀하셨다. ‘제사상에 절하는 사람만 일했으면 좋겠다’가 엄마의 생각이셨다. 그래서 이번에 아내가 안 오는 것에 대해서도 “시간이 지나서 우리집 문화가 좀 바뀌면 다같이 명절날 모여서 밥 먹을 날이 분명히 올 거다”고 말씀하시고 아버지에게도 설명을 다 하셨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의 한 장면. 서밤 블로그

-그런 어려운 선택을 한 시부모에게 고마워해야 하지 않냐는 반응이 많았다.

작가: 이 콘텐츠에서 ‘고마워하지 않겠다’가 핵심이었다. 물론 같은 내용이라도 다르게 풀 수 있을 것이다. 합의 과정을 길게 보여주고 시부모님이 이해를 해 주셨다는 식의 아름다운 스토리로 갈 수도 있지만 그렇게 가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저는 평등하게 관계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고마워한다는 건 이미 이 사람이 나에게 주지 않아도 될 것을 줬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나의 권리가 다른 사람의 허락으로 이뤄질 수 있나. 만약 마음 한 켠에 고마움이 있어도 이건 고마워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격한 반응들을 보면 이 결정에 남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아내의 결정을 부모님께 일방적으로 전달한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듯했다.

남편: 제가 집에 저희의 뜻을 전달한 것은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어머니께 “아내와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내가 있을 때 하고, 아니면 나에게 이야기 해 달라”고 했다. 서로 직접 이야기하면 엄마도 애써 웃어야 하고 아내도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게 될 텐데 중간에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게 낫다고 했다.

-부부의 결정을 지지하는 댓글 중 “시부모님과 며느리는 통성명이 필요 없는 사이라는 말이 있었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가부장제 가족문화에서 ‘며느리’라는 역할에 기대하는 부분들이 정해져 있으니 개인에 대한 설명은 필요조차 없는 상황을 지적한 말이었는데.

남편: 그 댓글을 보고 ‘그동안 내가 통성명을 시켜주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아내를 처음에 ‘며느리’니까 좋아하려고 했는데, 저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오랜 시간을 걸쳐 이야기를 해 왔다. 그러니까 어머니도 점점 며느리가 아니라 서밤 작가 개인이 어떤 사람이고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저는 편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보던 TV도 끄고 부모님과 오랫동안 아내 될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계속해 왔다. 앞으로도 계속 해야 하는 일이다.

-내용도, 전달하는 바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표현이 셌다는 의견도 있다.

작가: 물론 저도 표현이 친절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부분에선 조금도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가부장제 질서 안에서 타협하는 목소리만 내 왔다. 저는 제가 느낀걸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남편: 주변에서 ‘중간에서 네가 힘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렇게 중간에서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다. 많은 한국 드라마에서 아내와 부모님간 문제가 생기면 남편은 상황 돌아가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내에게 “엄마랑 얘기가 잘 안됐어?”라고 묻는 장면이 많이 나오더라. 그런 건 비겁하다고 생각한다.

작가: 저는 이 문제로 평생을 고민해 왔다. 결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 시댁과 관계 맺을 때 어떻게 맺을 것인가? 이 사회에서 제가 이걸 하루이틀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겠나. 사람들이 가족관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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