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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카라카조(2.27)

입력
2018.02.27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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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2월 27일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 '카라카스 항쟁'이 시작됐다. 하룻밤 새 2배로 오른 버스요금 등이 계기였다. 위키미디어.
1989년 2월 27일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위 '카라카스 항쟁'이 시작됐다. 하룻밤 새 2배로 오른 버스요금 등이 계기였다. 위키미디어.

1989년 2월 27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됐다. 갓 집권한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Carlos Andres Perez, 1922~2010) 정부의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국내 유가와 교통비, 생필품 가격 폭등이 원인이었다. 시위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소요사태로 번졌고, 군대가 개입해 일주일 여 만에 진압됐다. 시민 약 2,000여 명(정부 집계 287명)이 숨졌다.

베네수엘라는 원유 수출 재정과 연립정부 전통의 정치적 안정으로 1970년대까지 남미의 모범국가로 불렸다. 냉전기 내내 단 한 번의 쿠데타도 없이 선거를 통한 정권 이양의 전통을 이어갔다. 빈부 격차는 컸지만 보조금 정책 등 정부 재정지출로 사회적 불안 요소를 잠재울 수 있었다. 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 땐 저금리 외채로 불을 껐다. 하지만 80년대 유가가 폭락하고 금리가 폭등했다. 페레스 전 정권인 하이메 루신치(1984~89년 재임) 정부는 급기야 외채 상환 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실업 등 사회적 불안과 불만이 폭발했다. 74~79년 페레스 대통령 시절의 풍요를 기억하는 유권자들은 88년 선거에서 다시 그를 선택했다. 하지만 페레스는 취임 직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수용하며 국영기업 민영화와 관세 인하 등 세제 개혁, 재정긴축의 강도 높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생필품 가격이 폭등했다.

‘카라카스 항쟁’ 즉 ‘카라카조(Caracas+~azo)의 28일은 정부의 ‘유가 100% 인상’ 발표 다음날이었다. 하룻밤 새 두 배로 오른 버스 요금에 출근길 시민들이 분노했다. 카라카스 위성도시 과레나스에서 시작된 시위는 수도로 확산되면서 들불처럼 번졌다. 페레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와 계엄령을 선포하고 저격수까지 동원한 학살 진압에 나섰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2년 2월 3일, 베네수엘라 현대사의 첫 쿠데타가 공수부대 중령 우고 차베스(Hugo Chavez)의 주도로 일어났다. 쿠데타는 실패했지만, 차베스는 베네수엘라 시민들에게 자신의 존재와 좌파 군인 비밀 결사 ‘볼리바르 혁명운동-200’의 가능성을 과시했다. 페레스는 이듬해 공금횡령 혐의로 탄핵됐고, 후임 좌파연립정권 칼데라 정부(1994~99)는 차베스를 특사로 석방했다. -‘역설과 반전의 대륙’(박정훈 지음, 개마고원) 등 참조.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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