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 2조원대 부채 들고 압박
정부 철수 대비한 대책 준비
호주 정부, GM공장 철수하자
전기차 공장 전환 적극 지원
생산시설 그대로 재가동하고
실직 근로자에 일자리 제공
업계도 “GM 탈피 검토해볼만”
정부는 20일 군산 지역을 고용위기지역 및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으로 지정하며 이 지역실직자와 소상공인 등의 지원대책을 마련하는 등 제너럴모터스(GM)의 철수에 대비하는 대책 마련을 본격화했다. 한국GM 사태 관련 부처들이 ‘호주 정부의 GM 철수 대응 사례’에 대해 본격적으로 검토에 착수한 것은 GM 철수 후 남게 될 생산시설을 재가동하고, 실직 근로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이날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GM은 우리나라에서만 떠나려는 게 아니라 호주에서도 마찬가지”라며 단순히 공적자금투입 만으로는 한국GM을 회생시키긴 어렵다고 우회적으로 밝힌 것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최 금감원장이 언급한 GM의 호주 자회사 GM홀덴은 한국GM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미국의 두배를 웃도는 높은 인건비로 자동차 생산비가 다른 해외 GM공장보다 많게는 1대당 평균 300만원 이상 높다고 GM이 계속 지적해온 것부터 비슷하다. 또 폐쇄하기까지 계속 장기간 적자 경영을 이어온 것도 그렇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호주 정부는 GM이 철수하는 기간 근로자들에게 재취업을 할 수 있는 직업전환 교육 등을 제공하면서도, GM에는 어떠한 혜택도 주지 않으며 철저한 경제 논리로 풀어갔다”고 말했다.
호주 정부는 GM이 호주 내 자산을 매각하고 완전히 떠나갈 때를 기다리며, 남은 생산시설을 첨단 제조업으로 전환하려는 청사진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GM이 운영하던 남호주 엘리자베스 공장을 영국 자본이 매입한 후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하려 하자 호주 정부가 적극 지원에 나선 것이 그 결과물이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유력한 미래 운송수단이며, 배터리ㆍ통신 인프라 등 연관 산업도 무궁무진하다. GM도 2023년까지 전기 배터리나 연료전지를 사용하는 20종의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계획하에 미국 내에서 집중 투자를 벌이고 있다. GM이 팔고 떠난 공장에 GM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회사를 세우게 한 것이다. 테슬라가 2010년 토요타가 폐쇄한 누미 공장을 헐값에 인수한 후 글로벌 1위 전기차 업체로 올라선 것처럼 내연 자동차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도 호주 정부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줬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쟁력이 떨어진 회사는 정부의 도움으로 회생할 수는 없다는 것을 호주 사례를 통해 배울 수가 있다”며 “호주는 겉으로는 철저한 경제적 논리를 펴면서, 안으로는 자국의 산업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업계에서도 폐쇄가 결정된 군산공장 등 한국GM의 다른 공장들도 홀덴처럼 변화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GM에게서 벗어난 후 적절한 활용방안만 찾아낸다면 한국GM은 이번 기회에 인력 구조조정 등으로 몸집이 가벼워진데다 투명하지 않은 경영도 사라지게 돼 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 정부가 ‘GM 철수’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본격 나선 것은 GM이 약 2조4,000억원(2016년 기준)에 달하는 본사로부터의 차입금을 한국GM이 갚을 수 없다며 ‘4월 위기설’을 흘리고 나선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GM 본사가 대출만기 연장 권한을 쥐고 있으니, 공장을 계속 돌리려면 한국 정부가 자금을 넣으라는 압박이다. 이는 2009년 자금난에 빠진 한국GM에 대해 산업은행이 수조원에 달하는 여신을 앞세워 GM을 압박해 한국GM이 독자 생존할 수 있는 협약(GM대우 장기발전 기본합의서)을 따냈던 협상 전략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한국GM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이 GM본사에서 빌린 차입금 2조4,570억원(2016년 말 기준) 중 7,220억원에 대한 만기가 이달 말 도래한다. 이어 4월2일 1,600억원을 시작으로 8일까지 총 9,860억원을 GM에게 갚아야 한다. GM이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고 상환을 요구한다면 사실상 한국GM은 폐쇄 수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GM은 2009년 한국 정부에 굴욕을 당했다고 생각했고 그 이후 한국 금융권 여신을 모두 GM 본사 차입금으로 전환한 후, 한국GM 독자 차종 개발을 중단하는 등 장기간에 걸친 한국GM 고사 작전을 이어왔다”고 말했다. 정부가 “무리한 요구는 들어주지 않겠다”는 분명한 선 긋기를 한 것도 이런 의도를 알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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