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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해수욕장 “10년 전 기름유출 때처럼 썰렁... 폭염에 올해 장사 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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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안 해수욕장 “10년 전 기름유출 때처럼 썰렁... 폭염에 올해 장사 망쳐”

입력
2018.08.13 04:40
수정
2018.08.13 09:18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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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 만리포 등 토요일 절반이 빈방 

 “작년 손님의 3분의 1도 안 와 

 해변 파라솔은 90% 접혀 있어 

 연계 상품 개발 등 대책 시급 

 # 

 경쟁 지역 동해는 폭염특보 해제 

 양양고속도로ㆍKTX 개통으로 

 서해가 수도권서 접근성도 밀려 

11일 오후 7시30쯤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근처 숙박업소 열쇠가 절반 이상 남아있다.
11일 오후 7시30쯤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 근처 숙박업소 열쇠가 절반 이상 남아있다.

“이쯤이면 자연재해죠. 하늘 말고 누굴 원망합니까.”

여름휴가철 막바지인 11일 오후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서해안 대표 피서지로 꼽히는 이곳에서 20년 가까이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최연희(60)씨 얼굴엔 절망이, 목소리엔 원망이 짙게 묻어났다. 매년 더위가 오기만 손꼽은 최씨지만, 올 여름은 그가 기다리던 더위를 넘어선 상상초월 불더위에 바닷가를 찾는 손님이 뚝 끊긴 탓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년 중 예약이 가장 빨리 끝나고 웃돈을 줘도 숙소를 구하기 어려웠다는 ‘휴가 피크(절정) 토요일’인 이날, 최씨네 A모텔 사무실엔 34개 객실 가운데 19개의 방 열쇠가 그대로 걸려있었다. 숙박료는 1박에 6만~8만원. 겨울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최씨는 “작년 손님의 3분의 1도 안 오는 것 같다”라며 “그나마 주말이라 이 정도”라고 했다. 휴가철 매출 수준을 굳이 비교하자면 정확히 10년 전 2008년 여름과 비슷하다고 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2007년 12월) 여파가 이제야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생각했는데, 하늘도 참 무심한 것 같아요.”

다른 숙박업자들도 인재(人災)로 인한 피해가 어느 정도 회복되니 천재(天災)가 들이닥쳤다며 한숨을 쉰다. 2, 3박을 예약하고도 못 온다거나 1박만 하고 떠난다고 해도 ‘예약 부도’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다음에 꼭 와달라”고 도리어 부탁하며 돌려보낸다. 바비큐시설 무료 제공, 대실 시간 연장 등 이런저런 자구책을 짜내도 사람이 안 온다. 결국 ‘올해 장사는 글렀다’는 결론에 다다른다는 게 이곳 숙박업자들 얘기. 상대적으로 바다와 먼 거리에 있는 숙박업소 가운데는 한 명의 손님도 받지 못한 곳도 있다고 한다.

11일 오후 7시쯤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에 설치한 간이온도계 기온이 30.3도를 가리키고 있다.
11일 오후 7시쯤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에 설치한 간이온도계 기온이 30.3도를 가리키고 있다.

실제 태안지역 최고기온이 35도를 기록한 이날 오후 만리포 해수욕장엔 200명 안팎만 물속에 들어가 물장구를 칠 뿐 모래사장은 텅 비다시피 했다. “차라리 ‘불판’ 위를 걷겠다”는 고등학생의 허풍, “해수욕도 못 하는데 이게 무슨 해수욕장이냐”고 안타까워하는 지역 주민 목소리도 들렸다.

사람이 없으니 해변 위에 설치된 파라솔은 10개 가운데 약 9개는 접혀있다. 파라솔ㆍ튜브대여업자 이영재(39)씨는 “모래사장이 워낙 뜨거워 해변에 나왔다가 얼마 안 돼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오히려 폭염을 피해 해질녘 바다를 찾는 손님이 많다”고 했다. 오후 7시쯤 5세 아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발을 디딘 최시영(31)씨 부부는 “낮 시간 모래사장 열이 너무 뜨거운 데다, 자외선도 강해 바다에 나올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차라리 노을이나 볼 요량으로 바다에 나왔지만 여전히 뜨겁다”고 했다. 그 시각 간이온도계로 잰 모래사장 위 온도는 30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만리포 근처 파도리 해수욕장 사정은 더 심각했다. 해수욕장 규모는 작지만 해변에 모래 대신 ‘해옥’이라 불리는 둥근 돌이 깔려있는 특성 덕에 2000년대 들어 관광명소로 소문이 났지만, ‘돌이 모래보다 더 뜨거울 것 같아서’ 매년 오던 손님들도 찾지 않는 것 같다는 게 주민 얘기다. 40년 가까이 해옥 전시관을 운영한 안정웅(76)씨는 “관광객이 이렇게 없던 해는 처음”이라며 “앞으로 기후가 더 더워질 가능성이 높아 더 막막한 심경”이라고 했다.

한편에선 관광지로서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진 마당에 과거 성행했던 ‘바가지 요금’에 질린 손님들이 더 찾지 않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나마 동해보다 유리하다고 봤던 서울 수도권에서의 접근성도 서울 강릉 간 KTX, 양양고속도로 개통 등으로 대동소이해졌다.

더욱이 주말을 앞둔 10일 폭염특보에서 벗어난 동해안 기후도 서해안 상인들은 부럽다. 신순호 만리포관광협의회 사무총장은 “올해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어 지역경제에 타격이 상당히 큰 것 같다”라면서 “지방자치단체가 해안관광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연계 관광상품을 개발해 사계절 시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태안=글ㆍ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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