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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시드니 드렐 (12월 21일)

입력
2017.12.21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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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기 미국 정부의 과학ㆍ군사 자문그룹인 '제이슨그룹'의 리더 시드니 드렐이 1년 전 오늘 별세했다. hoover.org
냉전기 미국 정부의 과학ㆍ군사 자문그룹인 '제이슨그룹'의 리더 시드니 드렐이 1년 전 오늘 별세했다. hoover.org

1960년대 냉전기 미국의 과학ㆍ국방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엘리트 과학자집단인 ‘제이슨 그룹 Jason defense advisory group’의 창립멤버인 이론물리학자 시드니 드렐(Sidney Drell)이 1년 전 오늘(12월 21일) 별세했다. 향년 90세. 그는 미국 에너지부의 지원으로 스탠퍼드대가 운영하는 선형가속기센터(SLAC)로 입자 속 쿼크와 안티쿼크가 충돌해 전자와 양전자가 만들어지는 과정(드렐-얀 프로세스)을 연구하는 등 양자역학, 양자전기역학 등 현대 입자물리학 분야를 개척한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하지만 냉전기 소비에트와의 첨단 군비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학자로서보다는 과학정책 자문가이자 키신저의 숨은 조언자로 더 알려졌다.

제정러시아의 유대인 이민자 아버지와 교사 어머니의 아들로 1926년 태어난 그는 16세에 프린스턴대 물리학과에 입학해 46년 졸업했고, 일리노이대에서 49년 박사 학위를 땄다. 스탠퍼드대와 MIT에서 강의했고, 56년 독일출신 물리학자 볼프강 파노프스키(1919~2007)의 권유로 스탠퍼드 선형가속기센터로 옮겼다.

그가 정책자문그룹에 가담한 것은 1960년 ‘레이저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타운스(Charles Townes, 1919~2015)의 권유를 받고서였다. 궤도 적외선 센서를 이용한 대륙간탄도미사일 조기감지 기법 등에 대한 과학적 자문이었다. 그 일이 미사일 방어전략 전반으로, 광역 스파이위성 사업으로, 베트남 전쟁 중의 ‘맥나마라 라인’으로 확장돼 갔다. 맥나마라 라인 작전은 남ㆍ북베트남의 일종의 장벽으로, 전자감시를 포함한 전략지점의 지뢰 매설 등을 통해 인적ㆍ물적 교류를 차단한다는 구상이자 공군력을 동원한 무차별 폭격의 터 닦기 전략이었다. 다시 말해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드렐 등의 제이슨그룹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는 학자 진영과 시민운동 진영으로부터 비난 받았고, 훗날 그도 후회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드렐은 80년대 이후 MX미사일 등 전략무기 개발과 레이건 정부의 스타워즈계획에 반대했고, 핵 군축 등을 적극적으로 조언했다. 그는 인터뷰 등을 통해 생애의 주요 구비에 대한 소회를 밝히긴 했지만, 자서전을 쓰지는 않았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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