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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등록 : 2017.01.17 14:16
수정 : 2017.01.17 14:55

[김월회 칼럼] 대인(大人) 같은 대국(大國)은 없다

등록 : 2017.01.17 14:16
수정 : 2017.01.17 14:55

“중국이 대국답지 못하게 왜 저리 쫀쫀하게 구나요?” 연예계의 한류 제한, 설 연휴 기간 중 한중 간 전세기 운항 불허 등, 사드의 한국 배치 결정 후 중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로 인해 곧잘 듣게 되는 질문이다.

그런데 ‘대국답다’라는 것이, 아니 ‘대국’이란 것이 과연 무엇일까.

사전적으로 대국은 국력이 센 나라를 가리킨다. 국제무대에서의 정치적 영향력이나 경제력, 군사력을 비롯하여 영토, 자원, 인구 등이 크거나 많은 나라를 대국이라 일컫는다. 인격적, 도덕적 역량은 대국 여부를 결정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국이라 하면, 뭔가 대인군자 같이 통이 크고 큰 길을 취하며, 제반 행동거지가 의젓하고 차원이 다르리라 여기곤 한다.

그러나 대국에 대한 이러한 관념은 어디까지나 선입견에 불과하다. 인간관계 차원에서 성립되는 ‘대인-소인배’ 식의 나눔을 국가관계에 고스란히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른바 ‘대국’이라 규정된 나라에도 대인다운 이들이 적지 않다. 삶 자체가 인류 공영이나 자연보존에 쇠하지 않는 빛이 됐던 이들이 적잖이 배출됐고, 지금도 그러하기 때문이다. 다만 덩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대인이라 규정할 수 없듯이, 대인들이 많다고 하여 그 나라를 대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고금의 역사를 뒤져봐도 그런 일이 있은 적도 없었고, 현실적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적다. 대국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국가 운영은 실리와 실용 지향적일 수밖에 없다. 개인 차원에선 자기 삶의 우선순위를 도덕에 둘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런 개인이 ‘집합적 신체’를 이루고 있는 국가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도덕적 성취나 진보를 국정의 핵심으로 추진한다고 해도 시민 다수가 실익을 누리지 못하게 되면, 도덕 지향적 국정 운영은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경제적 실리 없는 도덕적 국정은 이상이 아니라 몽상에 가깝다는 말이다.

단적으로 국정 운영 차원에서 보자면 도덕적 지향을 도모하지 않음은 대국이든 약소국이든, 또 중진국이든 간에 별 차이가 없다. ‘도덕적 대국’, 비유컨대 대인군자 같은 대국은 있은 적도 없고 성립될 수도 없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대국이 형성된 연유는, 이익이 된다면 기꺼이 “깨알 같이 챙겼기” 때문이다. 잘 와 닿지 않는 말일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대기업을 보자. 이명박 정부 이후 일부 대기업들은 우량 중소기업은 물론 동네 슈퍼마켓부터 빵집, 카페 등등, 덩치에 걸맞지 않게 돈이 되는 건 다 거머쥐려 해왔다. 배려나 협력 같은 도덕적 가치 실현은 그들 행보에 별다른 장애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대기업이 못됐다며 윤리적으로 단죄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만 보 물러나 그들 입장에서 사고실험을 해본다면, 그러니까 순전히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가의 차원에서만 보면, 그들의 행위는 잠재적 경쟁자를 적극적으로 제거하는 ‘배타적 이익 추구’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중소기업의 번영과 골목상권의 활성화가 우리와 무슨 관계냐는 편협한 심산의 발로에 지나지 않는다. 직접 장악하는 것에 비해 그들과의 상생과 공영이 과연 얼마나 더 큰 돈이 되겠냐는 태도다. 한 마디로 강자다운 아량과 통 큰 안목을 지닌, 그런 대인다운 ‘도덕적 대기업’이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대국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이 큰 나라가 된 까닭은 도덕에 구애되지 않고 잠재적 위협 세력을 선제적으로 제압하며, 국가에 이득이 되는 것을 깨알 같이 또 치열하게 챙긴 덕분이었다. 무슨 도덕적 우위를 갖춰 주변 나라가 그들에게 감동, 감화되어 그들을 따른 결과가 결코 아니었다.

하여 대국을 대하는 우리의 사유와 태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중국보다 힘이 약함은 객관적 사실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중국에게 대인다운 행보를 요구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상대적 약자임을 인정함과 그들에게 대인다운 통 큰 행보를 기대함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게다가 이는 우리 스스로의 자존에 대한 모욕이다. 대인관계서도 그렇지만 국가 사이에서도 강자의 도덕심에 기대는 것은 일종의 ‘노예 코스프레’다. 상대적 약자라도 자율적이고 유능한 존재로 우뚝 설 수 있기에 그렇다.

자국 안보와 이익을 중심으로 냉정하게 돌아가는 국제사회에서, 상대적 약자인 우리에겐 대국이 대인답게 나오길 기대할 여력은 없다. 자신에게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그 정도와 무관하게 힘을 앞세우는 그들에 맞서 우리는 우리의 생존과 이익 실현을 위한 길을 열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대국을 잘 알아야 한다. 강자는 약자를 잘 몰라도 힘을 바탕으로 약자를 자기 이해 구현에 이용할 수도 있지만,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적어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만큼은 잘 알아야 하는 까닭이다. 강자를 모르는 약자는 도덕적일 수 없는 대국에게 도덕심을 기대하는 우를 줄곧 범하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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