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북 리뷰] 강남의 해는 지지 않는다

알림

[북 리뷰] 강남의 해는 지지 않는다

입력
2017.07.07 04:40
0 0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과 강북의 모습. 1970년대 초고층 아파트와 함께 시작된 강남 신화는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도시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 삶 구석구석에 박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강남과 강북의 모습. 1970년대 초고층 아파트와 함께 시작된 강남 신화는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도시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 삶 구석구석에 박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하기

서울대SSK동아시아도시연구단 기획ㆍ박배균 외 지음

동녘 발행ㆍ576쪽ㆍ2만5,000원

“홍대가 좋다”고 말하는 20대와 “강남이 좋다”고 말하는 50대의 표정은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추구해선 안 될 것을 추구하고 말았다는 그 죄책감. 20대에게 평범함이 사형 선고라면 50대에겐 구질구질함이 그렇다.

아직도 강남인가? 아파트 탈출이란 말이 나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오늘을 즐기자는 ‘욜로족’은 답답한 서울살이를 비웃고, 와이파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는 디지털 노마드들은 숫제 이 나라를 뜰 기세다. 그러나 책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 하기’에 의하면, 여전히 강남이다. 박해천 동양대 교수가 아파트를 묘사한 “담론의 가상세계에선 언제나 패배하지만, 물질의 현실 세계에선 백전백승”이란 표현은, 강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책은 박 교수를 비롯해 박배균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 이영민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황진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선임연구원 등 관련 분야 학자 13명, 총 11팀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이들은 강남을 더 이상 지리적 위치로 이야기할 수 없다는 데 목소리를 같이 한다. 강남은 이미지고, 이데올로기이며, 태도이자, 실천이다.

이동헌ㆍ이향아는 ‘강남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에서 강남의 경계를 해체하고 다시 긋는 작업을 한다. 서울에 거주하거나 생활하는 성인 남녀 183명에게 지도를 나눠주고 ‘당신이 강남이라고 생각하는 동’들을 표시하거나 선을 그리도록 한 것. 결과는 흥미롭다. 응답자 중 소위 ‘강남 3구’라 불리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의 전 동(66개동)을 강남이라고 그린 사람은 183명 중에 8명에 불과했다. 강남으로 ‘인정’ 받은 동의 개수는 평균 43개. 그렇다면 가장 강남스러운 동네는 어디일까. 논현, 압구정, 대치를 제치고 역삼1동이 179명의 선택을 받아 1위를 차지했다. 가장 적게 표시된 곳은 송파구와 강동구의 경계에 있는 마천2동(20명)으로, 행정상으로는 강남 외 지역인 동작구 사당2동(19명)과 비슷한 수치를 보였다.

연구자들은 응답자 전원이 강남으로 인식한 동은 하나도 없다는 데 주목하며 “기존 연구나 대중 언론에서 선험적으로 전제했던 ‘강남=강남 3구’의 등식은 실상 심상 지리(imagined geography)에 가까움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강남구 봉은사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로 일컬어지는 소위 ‘강남 3구’는 이제 지리적 경계를 벗어나 이미지로 각인, 소비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강남구 봉은사에서 바라본 도시 풍경.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로 일컬어지는 소위 ‘강남 3구’는 이제 지리적 경계를 벗어나 이미지로 각인, 소비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박배균ㆍ장진범은 ‘‘강남 만들기’, ‘강남 따라하기’와 ‘한국의 도시 이데올로기’에서 강남과 부산 해운대, 성남 분당의 도시 중산층을 대상으로 생애사 인터뷰를 했다. 1970년대 이래 초고층 아파트와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한 ‘강남 신화’의 배경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주택공사 등 국가 행위자들뿐 아니라, 강남을 대체불가의 ‘이상적 도시’로 여긴 소비 주체들의 인식 또한 강력하게 작용했다는 판단에서다.

“저희 애가 이과 쪽 성향을 많이 보였는데, 과학이나 수학 같은 경우, 분당 쪽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 애들이 안 모이잖아요, 분당은. 그런데 강남은 모여요. 대치동 쪽에 가면, 저만 애를 데리고 온 게 아니라, 강 건너 강북에서도 오고, 사방팔방에서 모이죠. (…) 거기는 전국구잖아요, 여기는 분당구고요.”

강남구에서 분당으로 이주한 50대 여성은 중학생 자녀의 교육을 위해 강남을 오갈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연구자는 사교육에 있어서 ‘전국구 강남’이라는 위상이 강남을 “회춘”시킨 동력이라고 분석했다. 강남의 도시 공간을 그대로 따라한 신도시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강남이 쇠락하기는커녕 2000년대 이후 인구와 자본이 다시 몰리는 “회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강남을 강남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요소는 비교불가의 환금성이다. 동작구, 서초구 등에 살다가 분당으로 이주한 40대 남성은 강남을 “대장주(大將株)”라고 불렀다. “여기는 이상하게 굳건해. (…) 내가 예를 들어서 1,000억 자산가가 되었다. 그래서 100억짜리, 200억짜리 빌딩을 산다, 그러면 여기를 최우선으로 할 것 같아. 이율배반적인 거지. 살고 싶지는 않아.”

살고 싶지는 않지만 모두가 원하는 도시, 강남. 연구자는 꺾이지 않는 강남의 위상과 그 닮은꼴 도시들이 복제ㆍ확산 되는 현상을 두고 “한국 자본주의와 발전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암묵적 지지도 보다 대중화”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렇게 탄생한 21세기 한국 중산층의 초상은 “금융화된 주체”다. “자산 가치의 상승 외에 중산층으로 성장할 수 있는 다른 통로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도시 중산층으로 하여금 자산가치를 지키고 불리는 데 더욱 집착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구질구질함에 대한 진저리에서 출발한 강남이라는 욕망은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데올로기로 화해 우리의 핏줄 어딘가에 박혔다. 자본주의의 총아라는 비난, 조롱, 질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남이 ‘해가 지지 않는 도시’로 굳건한 이유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