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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03 06:00

‘서천꽃밭’ 가는 길… 4·3의 어린 영혼을 달래다

[강정효의 이미지 제주]가장 제주적인 방식으로 희생자 위로한 것은 굿

등록 : 2018.05.03 06:00

4·3 70주년 해원상생굿에서 선보인 ‘서천꽃밭’. 당시 희생된 어린 영혼들을 위로하는 ‘질치기’ 과정이다.

지난 4월 중순 제주에서는 의미 있는 굿판이 펼쳐졌다. 4·3 70주년을 맞아 당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는 ‘4·3 해원상생굿’이 펼쳐진 것이다.특히 올해는 마을단위로 펼쳤던 예년과 달리 4·3평화공원에서 7일간에 걸쳐 현재까지 등록된 희생자 전체를 위무하는 굿이 진행됐다.

제주에서, 그리고 4·3 유족들에게 굿이 갖고 있는 의미는 각별하다. 가장 제주적인 방식으로 통한의 마음을 푼다는 의미 외에도, 모든 종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처음으로 유족들의 눈물을 닦아준 것이 굿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1990년 가을, 4·3으로 잃어버린 애월읍 원동마을 터에서 유족들이 희생된 마을 어르신을 기리는 굿을 연 것이 4·3 굿의 시초다. 개인이 아닌 조직적 행사여서 의미는 더 컸다. 이어 50주년인 1998년 제주 한라체육관에서 1박 2일간 큰굿이 열렸고, 2002년 이후부터는 제주민예총이 매년 4·3 해원상생굿을 주관해 오고 있다.

4·3 70주년 해원상생굿에서 선보인 ‘질치기’ 과정

질치기의 여러 과정 중 ‘인정걸기’

질치기의 여러 과정 중 ‘물뿌리기’.

질치기의 여러 과정 중 ‘다리놓기’.

올해도 그 연장선상에서 마련한 것인데, 확인된 희생자 전체의 이름을 한 분 한 분 부르는 열명(거명)의식을 거행해 의미를 더했다. 3만명으로 추정되는 4·3 희생자 중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된 인원은 1만4,232명이다. 이 중 생존자 115명을 제외한 1만4,117명의 이름이 이번 굿에서 일일이 불렸다.

해원굿은 모든 희생자들이 이승에서의 한을 풀고 저승으로 잘 가시라는 의식이다. 망자가 이승에서 지은 죄를 사하고 저승의 좋은 곳으로 보내 주도록 시왕(十王)에게 기원하는 ‘시왕맞이’ 굿이다. 시왕은 저승의 열 왕이다. 인간의 명부(冥簿)를 가지고 있어 타고난 목숨이 다 되면 차사를 시켜 잡아오게 한 후 생시의 업보에 따라 망자를 지옥 또는 극락으로 보내는 역할을 맡은 신이다.

시왕맞이 차례 중에 하위 신인 차사가 죽은 영혼을 맞아들이는 의식을 별도로 ‘질치기(일명 차사영맞이)’라고도 한다. 질치기는 길을 닦는다는 의미다. 질치기의 순서를 보면 저승길을 치우고 닦아서 차사와 죽은 영혼을 맞아들이고, 이어 망인의 심회를 말하는 ‘영개울림’을 들은 뒤, 저승의 열 두 문을 차례차례 열어 영혼을 위무하며 저승으로 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저승 열 두 문은 대나무를 이용해 둥근 모양으로 꾸민다. 열 두 문을 여는 순서는 길을 돌아보고 그 길에 무성한 잡초를 베고, 그 그루터기를 따비(농기구의 일종)로 파고, 흙을 발로 밟아 고르고, 나뒹구는 돌멩이를 치우고, 밀대로 밀어 지면을 고르게 하고, 일어나는 먼지를 비로 쓸고, 물을 뿌리고, 젖은 데에 띠를 깐다. 질치기는 이 세밀한 길 닦기 과정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한다. 인간 세상의 길을 만드는 과정을 연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망자가 이승의 미련을 버리고 저승으로 고이 갈 수 있는 길을 내는 것이다. 이때 후손들은 영혼을 잘 보내드리는 마음을 담아 지전이나 돈, 다라니로 저승 다리 위에 인정(신에게 바치는 재화)을 건다.

이번 해원상생굿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서천꽃밭’으로 가는 길을 별도로 마련했다는 것이다. 서천꽃밭은 저승과는 별개의 공간으로 생불꽃과 멸망꽃, 울음꽃, 웃음꽃, 환생꽃 등 가지각색의 신비로운 꽃이 피어 있는 상상의 세계다. 15세 이전에 죽은 혼령들이 극락에 가기 전에 이곳에 머문다고 전해지는 곳이기에 4·3 당시 희생된 어린 영혼들을 위해 따로 마련한 것이다. 어린 영혼에게 인정을 걸 때는 지폐가 아닌 동전을 원칙으로 하며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그릇에 담는다. 4·3 당시의 희생자 중 10세 이하의 어린이는 전체 희생자의 5.8%에 달한다.

해원굿 말미에 치러지는 ‘푸다시’.

인간과 신이 함께 어우러지는 ‘서우젯소리’.

한편 질치기의 가장 큰 목적은 원한을 가진 영혼들이 이승의 일에 끼어드는 것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죽은 영혼을 위무함과 동시에 살아있는 사람들이 편안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다시 말해 자기위안의 성격이 강하다.

굿의 말미에는 ‘푸다시’라 하여 잡귀가 사람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조치하는 한편, 심방과 단골이 함께 어우러져 노래와 춤을 즐기는 ‘서우젯소리’까지 이어진다. 서우젯소리는 굿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설은 약간 다르지만 마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놀 때도 부른다. 신과 영혼, 살아있는 사람까지 함께 즐거워지는 세상, 신인동락(神人同樂)의 세상을 꿈꾸는 것이다.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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