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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
시인

등록 : 2016.10.23 20:00
수정 : 2016.10.25 10:15

[이원의 시 한 송이] 이곳에 살기 위하여

등록 : 2016.10.23 20:00
수정 : 2016.10.25 10:15

하늘이 나를 버렸다. 신이 나를 버렸다는 뜻이지요. 더 이상은 실 한 오라기의 희망도 남아 있지 않다는 말.

한 줄기의 빛도 없다는 말. 암흑을 의미합니다. 그 어떤 희망도 남아있지 않을 때. 완벽한 어둠과 맞바꾸는 유일한 길이 있지요. 내가 불을 피우는 것, 즉 내가 불이 되는 것입니다.

불도 빛도 밝음 아니던가요. 빛으로 만든 것은 불이 될 수 있지요. 빛이 나에게 베풀어준 모든 것을 나는 불에 바칩니다. 그 불은 큰 숲과 작은 숲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새집과 새들. 같은 문은 열리고 닫히느냐에 따라 자유가 사라지기도 나타나기도 합니다. 집과 열쇠도 넣었습니다. 잠긴 곳은 열 수 있는 곳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지요. 꽃과 벌레는 나누어가진 것이 있기 마련이지요.

불꽃이 파닥거리며 튀는 소리, 불꽃이 타오르는 열기의 냄새 속에는 구체적인 것은 없습니다. 불이 피워질수록 나는 완벽한 어둠이 되어갑니다. 그러나 나에게 베풀어진 빛을 그 불에 바치지 않는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게 하는 것이지요. 나라는 하늘을 내가 버리는 것이지요.

불을 끄는 것인 물인가요? 흐르지 않는 물 속에 침몰하는 선박과 같은 나를 보고 있다면, 나는 죽은 사람처럼 물 밖에는 없다면, 그 나, 나, 나들은, 친구가 되기 위한, 겨울밤을 지내기 위한,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곳에 살기 위하여. 이보다 더 간절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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