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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국형 기본소득

입력
2016.12.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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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7대 죄악 중 하나는 나태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나 직장을 잡지 못한 사람도 굶어야 한다. 그런데 굶는 것을 개인 능력으로 돌리면 되는 걸까. 일자리를 구해 주지 못한 사회의 책임은 없는가. 일을 하건 말건 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일정한 소득이 주어진다면 우리 생활은 어떻게 변할까.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울 것인가. 아니면 행복한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일을 하거나,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서 직장을 떠날 것인가.

▦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것이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복지차원을 넘어 인간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 인식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산을 오를 때 ‘안전밧줄’을 매야 하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생존 개념이다. 스위스가 시동을 걸었다. 올해 6월 성인 1인당 월 300만원(어린이ㆍ청소년 78만원)씩 지급하자는 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진 것이다. 비록 부결됐지만, 세계 각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핀란드와 네덜란드는 내년부터 기본소득 실험에 들어간다.

▦ 걸림돌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기본소득은 게으른 사람에게 득이 되고, 사회 정의를 무너뜨린다는 선입견이다. 하지만 독일의 한 경제잡지의 설문조사 결과는 흥미롭다. 기본소득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나는 일을 할 것’이라는 응답이 90%에 달했고,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80%였다. 똑같은 질문이지만 스스로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은 불신하는 선입견을 꼬집은 것이다. 두 번째는 재원 마련이다.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많은 재원이 필요하지 않다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 탄핵 정국에 묻히기는 했지만, 이달 초 ‘한국형 기본소득’에 대한 구체적 아이디어가 나왔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정원호 선임연구위원과 한신대 강남훈 교수의 공동연구 결과다. 모든 국민에게 월 30만원씩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4인 가족 기준 월 120만원으로 최저 생계비 수준이다. 문제는 연간 180조원에 달하는 재원이다. 시민세(110조원) 환경세(30조원) 토지세(30조원) 등을 신설하면 해결이 가능하단다. 취지야 나무랄 데 없지만, 증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다.

조재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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