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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는 무슨 책을 읽을까?

입력
2017.04.1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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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 법관이자 미식가인 앙텔름 브리야 사바랭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겠다.” 요리사에 있어서는 이 말이 이렇게 대치된다. “당신이 읽는 책이 무엇인지 말해보라,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요리사인지 말해 주겠다.”

식당에 갔을 때 요리사의 손때 묻은 책이 한 쪽에 가득 꽂혀 있다면 그 식당은 신뢰해도 좋다. 요리사는 책과 매우 가까운 직업군이다. 음식과 요리에 관련된 수많은 책이 모두 요리사의 교과서다. 거장 요리사의 레시피 책은 책 자체로도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조리 과학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은 복잡한 화학과 물리의 세계를 이해하게 한다. 요리사 혹은 미식가의 경험이 축적된 에세이나 소설은 평생 다해 보지 못할 각별한 식사를 공유한다. 책 읽는 요리사는 그렇기에 신뢰해야 한다. 책은 요리사를 단지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기능공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만드는 장인으로 성장시킨다.

동시대 요리사들이 읽는 책을 물었다. 그리고 신뢰할 만한 책 리스트가 되돌아 왔다.

13일 서울 삼성동 레스토랑 '친밀'에서 만난 오세득 셰프. 2000권 이상의 음식ㆍ요리 관련 책을 소장한 오 셰프는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를 추천했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13일 서울 삼성동 레스토랑 '친밀'에서 만난 오세득 셰프. 2000권 이상의 음식ㆍ요리 관련 책을 소장한 오 셰프는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를 추천했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친밀’ 오너 셰프 오세득의 추천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 선재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 선재

“사찰 음식 명장 1호 선재스님이 올 1월 낸 책이다. 내가 그동안 먹은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나는 어떤 음식을 만들어 왔는지, 내가 앞으로 먹어야 할 음식이 무엇이며 해야 할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표가 됐다. ‘나는 여느 요리 프로그램과 다르게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 먹으라고 하기보단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요리 재료를 대할 것인가를 말했습니다’라는 책 속 구절은 특히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동시에 ‘요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짓는 일이다’라는 구절은 요리사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단순히 예쁘고 쉽게 만드는 요리가 아닌, 요리를 통한 스님의 삶의 지혜를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의 한 페이지. 오세득 셰프는 좋은 구절은 형광펜으로 줄치며 읽는다고 한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 의 한 페이지. 오세득 셰프는 좋은 구절은 형광펜으로 줄치며 읽는다고 한다. 강태훈 포토그래퍼

‘밍글스’ 오너 셰프 강민구의 추천

온지음이 차리는 맛 | 온지음
온지음이 차리는 맛 | 온지음

“한식 창작 요리를 하는 젊은 셰프로서 늘 한식의 정체성과 원형을 궁금해 하고 고민하게 된다. 한식을 깊게 공부하려 해도 마땅한 책이나 기관이 없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평소 정말 좋아하는 전통 문화 연구 공간인 ‘온지음’이 낸 이 책은 그런 갑갑함을 해소해 줬다. 꼭 만나 보고 싶었던 한식의 멋이 담겨 있다. 계절에 앞서 메뉴를 구상할 때마다 참고하는 소중한 책이다. 음식 정보가 넘치는 요즘이지만, 한식의 전통과 멋을 얘기하는 일은 여전히 드물다. 전통은 존중하되 현대적 미감이 담긴 진짜 한식의 멋을 만날 수 있는 책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출간되자마자 10권을 구입해 친한 외국인 셰프들에게 선물했다.”

‘옥동식’ 오너 셰프 옥동식의 추천

조선 셰프 서유구 | 곽미경
조선 셰프 서유구 | 곽미경

“서점에서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 읽었다. 조선시대의 음식 연구가 서유구 선생의 삶을 엿볼 수 있고, 그 시대 사대부 양반가의 먹거리를 대리 경험해 볼 수 있다. 또 과거를 들여다보는 동안 한국 음식의 방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요리사로서 조선시대 음식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역사를 바탕으로 했지만 1인칭 관점의 소설 형식이어서 부담 없이 술술 읽힌다. 책 속에 간략하게 소개된 전통음식 레시피는 따라해 볼 수 있는 것들이라 더욱 흥미롭다. 지난해 시도해 본 전복김치는 이 책을 보고 재현한 것이었다.”

‘두레유’ 오너 셰프 유현수의 추천

화폭에 담긴 한식 | 한식재단
화폭에 담긴 한식 | 한식재단

“한식은 연속된 전통의 일환이기에 이전의 역사와 흐름을 짚어 내려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연구 차원에서 한식 자료를 평소 틈틈이 찾아 두는 편이다. 자료에서 영감을 얻는 경우도 많다. 한식재단이 발간한 이 책은 조선시대 풍속화와 기록화 속 음식을 통해 당시의 한식 문화를 설명한다. 대개의 고조리서는 한자로 돼 있거나 한글로 썼다 해도 그림이 부족해서 읽다 보면 개인적인 해석의 여지가 많다. 이 책은 그림에 묘사된 음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므로 고증적으로도 더욱 객관적인 자료로 신뢰한다.”

‘한국술집 21세기 서울’ 요리사 김봉수의 추천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 | 최낙언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 | 최낙언

“전역 후 막연하게 한국 음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정식당’에 입사해 요리를 시작했다. 퇴사 후 본격적인 요리 공부를 위해 호주 유학길에 오르면서 가져간 책 중 하나다. 유학 생활 중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한국어 책이었고, 이제까지 접해 온 음식과 요리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아줬다. 음식의 맛 뿐이 아니라 향, 그리고 음식을 먹으면서 일어나는 뇌의 작용까지 종합적으로 깊게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각을 넓혀 주었다. 요리사가 아니더라도 맛이라는 주제에 대해 궁금하고 정확히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때마다 펼쳐보고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바오27’ 오종일의 추천

Culinary Artistry(요리의 기교) | 앤드류 도넌버그, 캐런 페이지
Culinary Artistry(요리의 기교) | 앤드류 도넌버그, 캐런 페이지

“‘메르씨엘’에서 일하던 당시 윤화영 셰프에게 추천받아 읽었다. 레시피가 아니라 요리사가 알아야 할 전반적인 지식을 다룬다. 각 재료를 조합하는 법, 조리 기법에 따른 대표적이고도 간략한 레시피, 메뉴를 구성하는 법, 예술적인 감각을 키우는 법 등 요리사에게 필요한 실용적인 기술을 익힐 수 있다. 레시피 하나를 외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적 이해도라는 것을 이 책에서 배웠다. 어떤 레시피를 접할 때마다 재료 간의 조합을 중시해서 보는 버릇도 이 책 덕분에 얻게 됐다. 기본적인 요리 지식조차 없다면 읽기 힘든 책이며 번역본이 없다. 그럼에도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 식재료의 의미와 조합을 통해 얻어지는 맛의 조화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될 것이다.”

‘마누 테라스’ ‘샤누’ 오너 셰프 이찬오의 추천

La Rousse Gastronomique(요리대사전) | 프로스페르 몽타뉴
La Rousse Gastronomique(요리대사전) | 프로스페르 몽타뉴

“15년 전 요리를 처음 배우던 시절 추천 받아 읽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책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는 동안 쭉 꺼내 읽곤 하는 책이다. ‘요리대사전’이라는 제목처럼 프랑스 요리의 모든 지식이 총망라돼 있다. 요리를 하면서 궁금한 점이 있을 때마다 어떤 내용을 찾아봐도 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글로 설명된 다양한 레시피들을 머릿속에서 이미지 트레이닝하듯 따라하다 보면 해 보지 않은 요리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요리에 대해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면, 누구라도 무엇이든 이 책에 물어보길 권한다.”

프리랜스 셰프 장진모의 추천

Essential cuisine(에센셜 퀴진) | 미셸 브라
Essential cuisine(에센셜 퀴진) | 미셸 브라

“프랑스를 대표하는 셰프 중 하나인 미셸 브라의 요리 세계가 한 권에 담겨 있다. 사진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요리책이 아니라 사진집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브라는 음식을 단순히 쌓아 올리던 플레이팅 스타일 대신 접시를 도화지처럼 사용한 것처럼 흩뿌리는 플레이팅 스타일을 시작한 셰프다. 이 책은 프랑스 라귀올 지역의 계절과 정취를 식재료와 요리를 통해 전달한다. 이전의 미식은 세계 최고의 재료를 지역 불문하고 사용하는 것이었지만, 브라는 자신의 지역에서 난 재료로 한정해 사용하는 관점을 제시했다.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관점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난 셰프의 요리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닷츠(Dotz)’ 헤드 셰프 현상욱의 추천

Mission Street Food(미션 스트리트 푸드) | 앤서니 마인트, 캐런 레보비츠
Mission Street Food(미션 스트리트 푸드) | 앤서니 마인트, 캐런 레보비츠

“정식당에서 신입 요리사로 근무하던 중, 아마존에서 책 쇼핑을 하다가 추천 도서로 떠서 우연히 구매하게 된 책. 제목부터 솔풀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핫한 레스토랑인 '미션 스트리트 푸드' 계열 식당들, 그 요리사 대니 보윈의 기발한 음식 세계를 면밀히 담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그의 팬이 되어 뉴욕 ‘정식’에 일하러 간 동안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갖기도 했다. 또 이 책을 통해 중국 음식 세계가 궁금해져 호주로 건너가 중식 레스토랑에서 경험을 쌓았다. 내 요리의 획을 바꾼 책이라 할 수 있다. 게토에 가까운 ‘미션’이라는 지역에서 출발한 한 식당의 성공담이 요리사뿐 아니라 모든 이에게 에너지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규자카야 모토’ 대표 한충희의 추천

Setting the Table(식탁을 세팅하며) | 대니 메이어
Setting the Table(식탁을 세팅하며) | 대니 메이어

“성공한 외식 경영자 대니 메이어의 식당 경영 노하우를 담은 책. ‘어떤 것이 좋은 서비스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메이어는 기계적인 서비스가 아닌 배려를 행하는 법, 그리고 그 배려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명쾌하게 정의한다. 특히 ‘식당은 항상 무(無)로 돌아가려 하기에 경영자는 계속해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그의 말은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식당을 운영하거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읽으면 리트머스 종이처럼 자신을 정의해 주는 책이 될 것이다. 창업을 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또 사표를 던질 것인지 말 것인지, 이 책을 보면 스스로 판가름할 수 있게 된다.”

‘그라노’ 셰프 손영철의 추천

미식의 테크놀로지 | 쓰지 요시키
미식의 테크놀로지 | 쓰지 요시키

“서점에서 펼쳐보고 그대로 구입해서 읽게 됐다. 여섯 셰프의 생각이 담겨 있는 이 책을 요리사로서 초심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연거푸 꺼내 읽는다. 일본의 유서 깊은 요리 학교 ‘츠지원 아카데미’의 쓰지 요시키 원장이 스타 셰프 여섯 명을 면밀히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문장과 행간마다 셰프들의 열정과 지속성을 느낄 수 있기에 요리사가 가져야 할 태도나 열정, 그리고 생각에 대해 깊은 울림을 준다. 이제는 요리사라는 직업이 많이 친숙해졌지만, 그래도 좀더 현실적인 요리사들의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은 모두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술술 잘 읽히는 어렵지 않은 책이다.”

‘알테르 에고’, ‘오트뤼’ 오너 셰프 박준우ㆍ‘주옥’ 오너 셰프 신창호의 추천

미식 예찬 | 에비사와 야스히사
미식 예찬 | 에비사와 야스히사

“벨기에 브뤼셀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할 때 자꾸 요리를 배우라고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권해서 읽었다. 일본인인 쓰지 시즈오가 프랑스로 떠나 미식을 배우고 문화를 체험하며 쓴 책은 똑같이 유럽의 이방인이던 나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책을 권한 지인의 바람대로 나는 벨기에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서 1년 동안 요리와 와인 유학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미식이라는 단어가 낯선 이에게도 친숙하고 재미있게 읽힐 만한 책이다. 기록 또는 교훈을 목적으로 한 에세이가 아닌 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취재와 체험을 바탕으로 스포츠와 요리 등 다양한 주제로 소설을 쓰는 작가다.”(박준우)

“동료의 책이었는데 몇 장 읽어보다가 너무 재미있어 바로 구입했다. 어떤 것이 프랑스 요리이고 이탈리아 요리인지, 서양 사람들은 실제로 어떤 식사를 하는지 등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궁금했던 점과 주인공의 궁금증이 일맥상통해서 흥미롭다. 이 책에 자극 받아 외국에서 일해 보고 싶은 열망에 해외 취업을 하기도 했다. 이야기 자체로도 재미있지만, 프랑스 요리에 관심이 많고 요리사나 서비스맨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더욱 흥미진진할 것이다.”(신창호)

‘목포낙지’ 대표 최문갑의 추천

맛의 달인 | 카리야 테츠 글, 하나사키 아키라 그림
맛의 달인 | 카리야 테츠 글, 하나사키 아키라 그림

“일본 요리 만화 ‘맛의 달인’ 전권을 소장하고 있다. 이 만화는 많은 이들이 ‘요리 교과서’로 꼽고 있기도 한데, 나도 식당을 운영하면서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공부하고 있다. 면밀한 취재를 통해 지은 이야기는 단지 만화가 아니라 자료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 한국 음식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 문화도 다루고 있어 다채로운 음식 체험을 해 볼 수 있다. 이 책이 내게 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음식과 문화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 때문이다. 먹고 즐기는 음식이 아니라 다음 세대와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고찰하게 한다. 2014년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피폭 묘사로 논란이 일면서 111권에서 연재가 멈춰 있다.”

이해림 객원기자 herimthefoodwri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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