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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빗나가는 여론조사 탓하기 전에

입력
2016.12.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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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좀 도와줘. 시험에 나올 문제 좀 찍어줘.” 고등학교 때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시험 때가 되면 내게로 다가와서 도와달라는 학우들이 종종 있었다. 영어나 수학 교과서를 들고 와서 영어 문장 구문이나 미적분 등 자신 없는 부분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음… 그건 말이지 원리가….” “아아니~ 지금 당장 구체적으로 찍어 달라고.” 이해를 시키기 위해 근본 원리에 대해 설명을 해 주려고 하면 안달복달하면서 당장 시험에 나올 문제와 답을 알려달라는 경우가 간혹 있었다. 공부를 좀 심하게 못 하는 친구들이 그랬다.

돌이켜 보면, 그때 한심하게 느껴졌던 그런 반응은 그들 탓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난 한국 학교에 다니면서 근본 원리를 천천히 심도 있게 이해하면서 학습을 한 적이 없다. 어설픈 교주의 오만한 교리 같은 도그마를 유사(pseudo) 원리처럼 허겁지겁 받아들이고 외워서 문제를 풀어야 했을 뿐이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역사 등 모든 과목이 그랬다. 그래도 공부하는 요령이 있는 친구들은 얄팍하게나마 핵심 원리에 대해 자기 나름 이해를 해서 교과서와 똑같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대응했지만, 공부가 익숙지 않은 친구들은 그게 어려웠나 보다. 그들의 눈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어떤 시험 문제가 나올지 ‘예측’을 잘해서 문제를 잘 푸는 것으로 비쳤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선거 관련 여론조사의 예측이 빗나간다고 아우성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까지 주류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나 정당, 국회 등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기존 서베이 방식 여론조사가 한계에 온 것 같으니 빅데이터 분석으로 대체할 방법이 없겠냐고 묻기도 한다. 그런데, 먼저 ‘왜’ 이런 한계상황에 다다랐는지를 진지하게 묻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베이나 통계 전문가들에게 요즘 여론조사가 빗나가는 이유에 대해 물어보면, 생각보다 답이 명쾌하지 않다. 조사 현장에서 봤을 땐 유선전화 사용 가구가 현격히 줄었다는 점이 눈에 띄지만, 그 또한 하나의 변수에 불과하다. 스마트폰 사용이 일반화했다는 사실로만 환원할 수 없는 훨씬 복합적인 요인이 조사환경 변화의 기저에서 작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최근 응답자들의 전반적인 태도 변화도 많은 함의를 내포한다. 전화 조사 거부, 무응답, 엉터리 응답이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고, 현장 전문가들은 그 이유에 대해 단지 몇 가지 단편적 짐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나 역시 이런 이유에 대해 단지 가설만 갖고 있다. 한국 영국 미국에 공통적인 정치경제 구조의 변화와 사회심리의 특성이 있다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담론이 확대된 이면에 대의제의 실패와 소외의 심화, 제도적 권위와 사회적 신뢰의 하락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이상 조사기관의 설문에 진지하게 성의껏 응답하지 않고, 자신을 대변할 길이 없는 사회와 후보자에 대해서도 침묵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필자의 생각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겠지만, 이런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규모를 갖춘 심층 연구가 필요하다.

2014년의 지방선거 때 어느 방송사와 함께 새로운 방법론으로 선거 예측을 한 적이 있다. 전통적인 리서치 회사, 앱 설문 회사, 비정형 데이터 분석 회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각 지역 유권자의 선호를 보다 과학적으로 예측하고 의미를 해석하는 작업이었다. 표면상의 결과는 수도권이 매우 정확하게 들어맞고, 표집 샘플이 부족했던 지방 도시가 틀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함께 리서치를 수행했던 팀은 맞고 틀리고를 떠나 그 과정에서 정확도를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생각지 못한 변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얻었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종종 그런 암묵적인 경험과 심층적인 지식에 대한 축적과 이해의 과정을 생략한다. 당장 답만 맞추려고 안달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과 비용으로. 오래전 느꼈던, 공부 못하는 학생의 습관이 어쩌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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