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국 순방 강행군에 건강 문제”
이번주 공식 일정 잡지 않기로
작년 터키ㆍ중남미 방문 뒤에도
과로 따른 증상ㆍ병명 구체적 설명
취임 후 건강 이상 공개 5차례 이상
“여성 대통령 동정론” 자극 의심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과 프랑스 국빈방문 일정은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10박12일 동안 도시 다섯 곳을 돌면서, 네 번의 정상회담을 포함해 약 50개의 일정을 소화했다. 대통령 전용기를 다섯 번 타고 내렸고, 비행 시간만 39시간이 넘게 걸렸다. 모범생 스타일인 박 대통령은 비행 중인 전용기나 숙소에서도 제대로 쉬지 않고 다음 일정 관련 자료를 검토하거나 참모들을 수시로 불러 상의했다고 한다. 더구나 아프리카 방문을 앞두고 풍토병 예방주사를 맞아 출국 때부터 몸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예방주사를 맞은 일부 청와대 참모들이 응급실 신세를 졌을 정도로 독한 주사였다.
청와대는 이번에도 박 대통령이 순방 강행군을 하느라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공개했다.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은 4일 마지막 방문국인 프랑스에서 4개국 순방 종합 성과를 브리핑하면서,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았는데도 박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설명했다. 박 대통령이 링거(수액 주사)를 맞아 가며 빡빡한 순방 일정을 버텼고, 반드시 쉬어야 한다는 소견을 대통령 주치의가 냈다는 내용이었다. 박 대통령은 5일 귀국 직후 휴식에 들어갔다. 귀국하는 대통령 전용기에서 기자간담회도 하지 않았고, 6일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것 이외엔 이번 주 내내 공식일정을 잡지 않기로 했다.
군 통수권자이자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2급 국가기밀이다. 그럼에도 국가 안보를 위협할 만큼의 중병이 아닌 한, 청와대가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합리적 수위에서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대통령의 해외 순방→ 무리한 일정→ 건강 악화→ 청와대의 건강 상태 공개→ 대통령의 국내 일정 차질’이라는 공식이 수 차례 반복되고, 청와대가 대통령의 건강 문제로 ‘여성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을 자극해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이른 것은 문제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생전에 불편한 관계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불참했고, 청와대는 순방 과로를 이유로 들었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터키 등 3개국을 방문하느라 만성 피로에다 고열과 인후염을 동반한 감기 몸살 증세를 보인다”고 공개하고, “추운 날씨에 야외 영결식에 참석하면 곧 시작될 해외 순방에 차질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영결식 사흘 만에 프랑스와 체코 순방을 떠났다.
지난해 4월 박 대통령의 중ㆍ남미 순방 직후엔 청와대가 “과로로 인한 만성 피로로 생긴 위경련으로 인한 복통에, 인두염에 의한 지속적 미열도 있다”며 증상과 병명을 과하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도마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성완종 리스트를 둘러싼 청와대 책임론에 불이 붙고, 4ㆍ29 재보궐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었다. 박 대통령이 2014년 3월 독일ㆍ네덜란드 순방 때는 감기 때문에 일부 일정을 취소했고, 같은 해 9월 캐나다에선 강행군으로 링거를 맞았다는 사실도 청와대는 매번 소개했다. 박 대통령이 몸을 아끼지 않고 세일즈 외교를 한다는 평가는 순방 직후 국정지지도 상승으로 이어졌다. 또 이번 아프리카ㆍ프랑스 순방에 대해서는 “북미ㆍ북중ㆍ미중 관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다소 한가한 외교 일정을 한 게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터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