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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쾌락 뒤에 숨겨진 공포 '섹스와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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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쾌락 뒤에 숨겨진 공포 '섹스와 공포'

입력
2007.02.0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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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 지음ㆍ송의경 옮김 / 문학과 지성사 발행ㆍ353쪽ㆍ1만원

혼외정사, 동성간의 섹스, 근친상간…

사회적인 공인을 통과하지 않은 섹스에 대한 현대인들의 끈질긴 공포감은 어디서 연유된 것일까. 이 같은 공포감의 연원으로 기독교의 엄격한 청교도주의를 꼽는 것이 정설처럼 굳어져있지만,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원작자인 프랑스 소설가 파스칼 키냐르는 이에 의구심을 품었다. 특히 1980년대 에이즈의 등장으로 인한 청교도적 윤리의 확산은 키냐르의 의구심에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됐다.

섹스에 대한 현대인의 공포감의 뿌리를 찾아가던 키냐르의 눈길이 멎은 곳은 폼페이의 회화였다. 통음난무의 자유분방한 풍조를 반영하듯 폼페이의 벽화들은 에로틱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벽화에 그려진 인물들의 시선은 수줍고 심각했다. 즐겁고 쾌활해야 할 그림 속의 여인들은 정면을 바라보지 못했고 겁에 질려있었다.

키냐르는 <섹스와 공포>에서 자유로웠던 초기 로마의 성윤리가 공포감에 짓눌리게 되는 시기는 공화정이 제국의 형태로 정비되던 아우구스투스 황제기(BC 18~AD 14)라고 지적한다. 황제는 간통 처벌법인 ‘율리아의 법’ 제정 등 성의 억압을 통해 시민들을 통제하고 이를 기반으로 황제권을 강화하려 했다. 여자를 유혹, 밀애를 즐기는 내용을 노래한 당대의 인기시인 오비디우스는 당장 ‘불온시인’으로 낙인 찍혀 다뉴브 강변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생을 마쳐야 했다.

성에 대한 억압과 금기가 없었던 기독교가 ‘로마의 윤리’를 따르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온다’ ‘음행하는 자는 제 몸에 죄를 짓는 것이다’라며 기독교인의 윤리를 설파하는 신약의 로마서는 바로 이 때에 쓰여졌다. 로마인들이 알몸을 가리기 위해 팬티를 착용하게 된 것도 이 시기의 변화된 성 모럴을 반영한 풍속이라는 것.

키냐르는 아우구스투스가 재위하던 32년이 단지 로마역사의 변곡점과 같은 시기가 아니라 세계사의 ‘지진’과도 같은 기간이었다고 과감하게 결론내린다. 디오니소스적이었던 로마의 에로티시즘이 이 시기 불안과 공포감에 가득찬 우수로 변질됐고, 이 공포감은 적대감으로 탈바꿈하면서 기독교 원죄의식의 질료가 됐다는 것이다.

섹스를 지옥으로 보내버린 중세의 청교도적 윤리가 이 시기에 뿌리 내리고 있고 현대의 성 윤리 역시 일정 부분 중세 윤리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신대륙 발견기보다도 더 큰 변혁기라는 것이다.

역자 송의경씨는 “탄생이 죽음으로의 출발을 의미하는 양면성이 있듯이 섹스에는 쾌락과 공포가 본질적으로 혼재돼 있다”며 “섹스에서 공포만을 분리해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현대인들이 쾌활함이라는 에로티시즘의 또 다른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책”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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