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콘 '민상토론'·웃찾사 'LTE뉴스'
핵심 비판 없이 말장난만 주고받아
사회 경직돼 개그맨들도 풍자 꺼려
‘정치 풍자 개그’가 위기다. KBS SBS 등 방송사마다 개그 프로그램 속 풍자 코너가 늘었는데도 사실상 풍자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풍자 코너를 들여다보면 알맹이가 없다. 2012년 끝난 ‘사마귀 유치원’ 뒤 KBS2 ‘개그콘서트’에서 3년 만에 부활한 정치 풍자 코너 ‘민상토론'은 변죽만 울리다 끝난다. 지난 4월 첫 방송된 ‘민상토론’은 개그맨(유민상 김대성)들이 우연찮게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 한 발언들이 정치적 발언으로 왜곡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한테 검찰 얘기까지 물어보고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라는 말에 “아, 검찰이 수사를 잘못했다?”고 받는 식이다. 하지만 말장난에 무게중심이 쏠려 풍자의 통쾌함은 적다.
처음엔 오랜만에 보는 시사 풍자 코너에 시청자들의 호응이 높았지만 똑 같은 수위와 포맷이 반복될 뿐 인물이나 이슈에 대한 비틀기는 실종 수준이다. ‘사마귀유치원’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확연하다. ‘사마귀유치원’에서 최효종은 “국회의원 되는 거 어렵지 않아요. 평소에 잘 안 가던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할머니가 악수만 해주면 돼요” “공약도 어렵지 않아요. 지하철 역을 개통해준다고 하면 돼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요? 말로만 하면 돼요” 등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풍자 코너인 ‘LTE-A 뉴스’도 정치 이슈의 재해석을 찾기 어렵다. 강성범이 ‘성완종 리스트’얘기를 꺼낸 뒤 “대체 그 큰돈을 어떻게 주고받았을까요?”라고 물으면, 임준혁이 ‘비타500’ 상자를 건네는 게 전부다. tvN ‘SNL코리아’도 비슷하다. 이를 두고 고 김형곤이 출연했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등을 만든 정덕균 코미디작가는 “요즘 풍자 개그를 보면 이슈나 논란에 대해 언론에 나온 사실 자체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은유와 메시지 등이 결여돼 아쉽다”고 말했다.
방송관계자들은 풍자 개그 환경이 크게 열악해졌다고 말한다. 민감한 시사 풍자 개그는 방송사에서도 몸을 사리고, 하려는 개그맨들도 없다. A 방송사는 올 초 개그프로그램에서 ‘땅콩 회항’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패러디한 녹화분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 관계자는 “풍자의 수위도 세고, 대한항공이 워낙 중요한 광고주라 사내 윗선의 지시로 촬영분을 내보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지상파 방송 3사를 비롯해 종합편성 및 케이블채널 등 다매체 시대로 접어들며 광고 경쟁이 가열되면서 광고주 눈치를 보느라 풍자 대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A 방송사 관계자는 관련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지 않은 사실은 인정했으나 이유는 함구했다.
지난해 ‘LTE뉴스’는 청와대 인사문제로 논란이 일 때 대통령이 책임회피로 외국 순방에 나선다는 풍자를 내보냈는데, 재방송과 유료 VOD 등에서는 관련 내용이 빠져 외압 의혹이 일었다. SBS 측은 “외압설은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의혹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개그맨들도 민감한 정치 풍자는 꺼리는 눈치다. 10년 차 개그맨인 B씨는“정치 관련 풍자에서 섣불리 의견을 밝히거나 어떤 입장을 취하면 방송 후 ‘네가 뭘 알아’라는 비판이 쏟아져 움츠러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우리 사회가 좌우 이념대립이 심해져 다른 정치적 의견과 풍자를 받아들이는 폭이 좁아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경제난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는 시각도 있다. ‘남성 인권 보장위원회’ 등 풍자 코너를 했던 개그맨 황현희는“공개코미디 방식에선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중요한데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지면서 정치 자체에 관심을 두지 않는데다 정치 풍자에 대한 호응이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k.co.kr
● 요즘 정치풍자 개그코너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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