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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갈 곳 없어 외출 못하는 뇌병변 장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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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 갈 곳 없어 외출 못하는 뇌병변 장애인들

입력
2018.06.04 04:4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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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손상 등으로 사지 마비 수준 중증

장애인단체서도 관심 밖 ‘인권 사각’

“고속도로 휴게실에 배변처리 공간 마련을”

장애인부모회, 인권위에 진정서 제출

뇌병변장애 1급을 가진 노모씨를 어머니 최모씨가 서울시청 회의실에서 책상에 노포를 깔고, 노씨를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다. 이상무 기자
뇌병변장애 1급을 가진 노모씨를 어머니 최모씨가 서울시청 회의실에서 책상에 노포를 깔고, 노씨를 힘겹게 들어 올리고 있다. 이상무 기자

뇌병변장애 1급 장애인인 노모(22)씨와 어머니 최모(56)씨는 지난달 29일 서울시청 지하1층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이날 시청에서 열린 전시를 보러 온 노씨가 집(서울 노원구)에서 시청까지 오는 사이 기저귀에 실례를 해서다. 기저귀를 갈려면 노씨의 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고, 사실상 사지가 마비된 노씨를 뉘일 수 있는 침대와 공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애인 화장실은 휠체어가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았고, 수유실을 들여다봤지만 갓난아기용 작은 침대 3개 정도가 전부였다.

안절부절 못하는 모자에게 한 시청 직원이 “비어있는 회의실이라도 괜찮겠냐”고 제안했다. 회의실에서도 기저귀를 가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허리 높이 책상에 몸무게 40kg에 가까운 노씨를 뉘이기 위해 최씨는 혼자서 안간힘을 썼다. 기저귀를 갈고, 휠체어에 다시 앉히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렸다. 최씨는 “공공기관인 서울시청도 이 정도로 열악한데 다른 곳은 말해 뭣하겠느냐”며 “뇌병변장애인은 외출하면 배변ㆍ배뇨를 제대로 해결할 곳이 어디에도 없다”고 한탄했다.

뇌병변장애인은 뇌성마비, 뇌손상 등으로 대부분 사지 마비 수준의 지체장애와 발달장애를 함께 안고 있어 중증 중의 중증 장애인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어 특수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고, 스스로 밥을 먹는 건 불가능하다. 생리작용에 대한 의사표현도 못해 기저귀를 사용한다.

뇌병변장애인을 둔 가족들은 정부 당국은 물론 주요 장애인 단체로부터도 관심 밖에 있어 나들이 같은 최소한의 사회 활동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강복순(49)씨는 지난해 뇌병변장애 1급인 딸 김모(18)양과 학교 소풍 차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았던 때를 떠올렸다. 강씨는 “장애인 화장실에서도 기저귀를 갈 공간이 없어 박물관 구석에 돗자리를 깔고 담요로 가려서 갈았다”고 했다. 1주일에 최소 두 번 방문하는 재활병원에서도 기저귀 침대가 없어 빈 병상에서 남는 보조 침대를 활용한다. 강씨는 “공개된 장소에서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다 큰애 기저귀를 여기서 갈고 있냐’고 눈치를 주면 죄라도 짓는 거 같다”고 흐느꼈다.

특수학교라고 해서 뇌병변 장애인에겐 특별히 나을 게 없다. 활동보조인이 부족해 점심시간 때마다 부모가 식사를 도와주러 가지 않으면 ‘한 입’도 먹지 못하는 것이다. 뇌병변장애 1급 자녀를 둔 장모(48)씨는 지난달 잠시 보조를 못 가게 됐다고 학교에 연락하자 “어머니가 안 오시면 밥 먹일 사람이 없고, 다른 사람이 밥을 먹이다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지냐”는 답을 들었다. 지난해 말 서울의 한 특수학교에서는 부모가 2회 이상 점심시간 보조인으로 출석하지 않으면 퇴학시키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이런 탓에 부모들은 마음 놓고 아플 수도 없다. 지난해 배에 심한 통증이 있던 강모(47)씨는 뇌병변장애 1급 아들 박모(23)씨를 홀로 둘 수 없어 병원에 가지 못했다. 알고 보니 강씨는 ‘위궤양’이었다. 강씨는 “아들과 둘이 사는데 당장 응급실도 못 가겠고, 입원치료는 꿈도 못 꾼다”며 “‘뇌병변장애인 긴급 돌봄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지만 이런 제도가 논의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급 장애인(19만 9,186명) 중 뇌병변장애인은 5만여명. 하지만 이들은 국가와 사회를 향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조차 요구하지 못한 채 소외되고, 비인간적인 생활만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욱 중증중복뇌병변장애인부모회(중애모) 회장은 “사지 마비에 인지능력도 떨어져 사회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탓에 주요 장애인 단체에서도 주류 의견을 형성하지 못하고 정부에서도 이들을 위한 정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애모는 최근 서울시와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공공장소나 휴게소에서 대소변처리를 할 수 없는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라며 “기저귀를 교체할 수 있는 침대와 공간을 마련하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저작권 한국일보]1,2급 뇌병변 장애인 현황. 송정근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1,2급 뇌병변 장애인 현황. 송정근 기자

글ㆍ사진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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