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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등록 : 2016.02.02 15:03
수정 : 2016.02.02 18:54

[이정모 칼럼] 자본주의 체제 위협하는 인공지능

등록 : 2016.02.02 15:03
수정 : 2016.02.02 18:54

“이것 봐라! 기계가 사람을 이길 수는 없어. 컴퓨터가 아무리 똑똑해 봤자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지.” 1996년 2월 18일 전세계 언론은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 해 2월 10일부터 17일까지 당대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와의 다섯 차례 체스 대국에서 3승 2무 1패로 인간이 승리했다.

나도 덩달아 두부처럼 연약한 인간의 두뇌가 반도체와 구리선으로 연결된 슈퍼컴퓨터에게 이긴 사실에 대해 자랑스러워 했으며 인체와 생명의 신비를 찬양했다.

그러나 우리의 우쭐함은 잠깐이었다. 그게 끝이었다. 이듬해인 1997년 5월 IBM은 딥블루를 개선한 디퍼블루(Deeper Blue)를 새로운 도전자로 내세웠다. 디퍼블루는 당시 세계 259위의 슈퍼컴퓨터였는데 512개의 칩으로 초당 2조 개의 위치를 계산해냈다. 디퍼블루는 지난 100년 동안의 주요 체스 대국 기보를 기억했으며 열두 수를 내다보았다. 결과는 1승 3무 2패로 가리 카스파로프의 패배. 경기가 끝난 후 카스파로프는 “나도 이해할 수 없는 기계의 창의성을 보았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창의성이란 하늘에서 툭 떨어지는 게 아니다. 무슨 괴상한 생각을 해내는 게 창의성이 아니다. 해 아래에 새로운 것은 없다. 창의성이란 있는 것들을 이렇게 엮고 저렇게 편집하여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창의성의 근본 바닥에는 기억된 지식이 있다. 기억이 없으면 창의성도 없다.

1996년을 마지막으로 사람은 머리 쓰는 분야에서 컴퓨터를 거의 이기지 못했다. 2011년에는 켄과 브래드라고 하는 두 명의 미국 퀴즈 챔피언이 IBM의 컴퓨터 왓슨(Watson)과 함께 미국의 퀴즈쇼 ‘재퍼디’에 출연하여 게임을 벌였다. 퀴즈는 에베레스트산은 해발 몇 미터인가 따위의 문제가 아니었다. 구문을 분석해서 논리적으로 추론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지식뿐만 아니라 논리와 유머를 이해해야 하는 문제였다. 결과는 왓슨의 승리. 한 사람은 컴퓨터와 비겼지만 다른 한 사람은 컴퓨터에게 졌다. 컴퓨터가 사람에게 1승 1무로 승리했다. 그래도 우리 인간들은 자존심을 지킬 여지가 있었다, 당시 왓슨에게는 100만 권의 책이 입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단지 기억력의 차이였을 뿐이지 사고능력의 차이와는 거리가 멀다고 여전히 우길 수 있었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바둑이 남아 있었다. 바둑 전문가들은 바둑만큼은 컴퓨터가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바둑은 체스나 장기처럼 상대방의 말을 없애는 방식이 아니라 빈칸을 채워 나간 후 집의 크기를 비교하는 방식인데다가 무한의 경우 수가 생기는 ‘패’도 있고 두터움이나 기세처럼 인공지능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많아서 알고리즘을 만들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다. 실제로 체스와 퀴즈에서 사람이 매번 지는 것과 달리 바둑에서만큼은 컴퓨터가 사람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알량한 자존심마저 지킬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2015년 10월 5일부터 9일 사이에 유럽 바둑챔피언 판 후이 2단은 구글의 딥마인드(Deep Mind) 팀의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a Go)와 다섯 차례 맞대결을 펼쳤다. 결과는 5전 전패. 그것도 첫 번째 대결에서만 접전 끝에 2.5집 차이로 졌을 뿐이고, 두 번째 게임부터는 183수, 166수, 162수, 214수만에 불계패를 당했다. 알파고는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을 통해 게임을 거듭할수록 실력이 늘었으며 유럽챔피언은 속수무책이었다.

이 소식은 영국의 과학매거진 ‘네이처’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주 ‘네이처’ 표지는 중앙처리장치인 CPU가 있어야 할 자리에 바둑판이 자리잡고 있는 컴퓨터 회로 기판이 장식했다.

IBM은 매번 거창한 이벤트를 벌여서 딥블루와 왓슨을 시장에 소개한 것과 달리 구글은 과학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이번에는 구글이 이벤트를 할 차례다. 구글은 세계 최강의 바둑기사인 우리나라의 이세돌 9단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오는 3월 8일부터 15일 사이에 서울에서 이세돌 9단과 5판 3선승제 맞대결을 펼친다. 상금은 12억 원.

결과는 어떨까? 구글의 전문가들은 확률이 50대 50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바둑팬들은 이세돌 9단이 쉽게 이길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세돌 9단 자신도 설사 한 판 정도는 질 수도 있겠지만 승리를 장담한다고 밝혔다. 내 생각도 그렇다.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이길 것이다. 1996년 가리 카스파로프가 딥블루를 이겼던 것처럼. 그러면 다음 번은 어떨까? 자존심이 무척 상하지만 내년에도 같은 게임을 한다면 이세돌은 질 것이다. 마치 1997년 카스파로프처럼.

스티븐 호킹 박사는 인공지능이 100년 안에 인간을 지배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터무니 없는 얘기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긴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인공지능은 이미 IT 분야을 뛰어넘어서 과학, 의학, 예술, 언론, 상담 및 상업 분야로 진출하여 활발히 활동하면서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공지능과 대화를 하고 인공지능의 혜택을 받고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인간을 지루하고 힘든 노동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들이 1년 내내 24시간 쉬지 않고 일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노동조합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의 세상이 될까. 천만에. 이대로 가면 자본주의는 붕괴한다. 구매력이 없는 시장이 자본주의에 어떤 득이 되겠는가. 진지하게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는 ‘기본소득’을 고민할 때다. 재원확보 방안이나 직업윤리를 따질 때가 아니다. 자본주의가 붕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아직까지는 기본소득이 자본주의를 구원할 유일한 수단으로 보인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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