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대지진 때보다 훨씬 무서웠다”
고립된 이재민들 “물… 빵” 호소
두 차례 강진으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한 일본 규슈(九州) 구마모토(熊本)현 동북쪽을 찾아가는 길은 처참했다. 도로 옆 주택은 산중턱에서 아래로 휩쓸려나가기 직전이고 갓길에 있던 자동차는 집 앞으로 굴러 떨어져 뒤집혔다. 도로는 활처럼 휘어지거나 끊겼고 산중턱 주자창의 아스팔트는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18일 구마모토현 청사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걸려 도착한 니시하라무라(西原村) 지역에서는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자위대와 경찰, 소방대원 등 2,500명이 투입돼 연락이 두절된 10여명의 주민들을 찾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실종자 수색작업은 더뎠다. 지붕이 바닥에 깔린 집을 헤집고 들어가 사람이 있는지 일일이 확인해 나가는 작업에 속도가 붙을 리 없기 때문이다. 무너진 다와라(俵)산 터널쪽으로 가는 길목에 진입하자 이장인 이와무라씨가 따라붙으며 “터널 300m 안쪽에서 붕괴가 이뤄졌다”고 취재진을 말렸다.
16일 소규모 분화가 발생한 아소(阿蘇)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나미아소무라(南阿蘇村)에서 마주친 한 주민(58ㆍ여)은 “한신대지진 때 효고(兵庫)현에 있었다, 내가 몸으로 느낀 지진의 강도는 당시 규모가 ‘5약’쯤이라면 이번엔 ‘6강’쯤 된다”고 몸서리를 쳤다. 그러면서 이 주민은 “일용품이 다 떨어졌다는데 곧 자위대가 흙을 치우는 공사를 시작한다”면서 볼멘 소리를 했다.
아소대교 붕괴현장은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였다. 미나미아소무라와 오이타(大分)현쪽을 연결하던 거대한 다리가 거짓말처럼 끊어져있었다. 바로 밑은 천길 낭떠러지. 근처에 있는 도카이(東海)대 아소(阿蘇)캠퍼스는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12명이 매몰됐다가 1명이 사망한 기숙사 건물은 폭탄을 맞은 듯 가구와 가스통, 책들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애꿎은 옷가지들만 널브러진 채 이슬비를 맞고 있었다.
구모마토현 전체가 사실상 고립되면서 이재민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생명줄(lifeline)인 전기와 수돗물 공급은 차단된 지 오래다. NHK집계에 따르면 18일 오전10시 기준으로 구마모토 현 내 약 3만4,700가구가 정전을 겪고 있다. 미나미아소무라 등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인해 송전선을 연결한 여러 철탑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17일 오후11시 기준으로 수돗물 공급이 끊긴 가구도 27만 가구나 됐다.
이러다 보니 곳곳에서 구호물자 부족을 호소하는 이재민들이 늘고 있다. 긴급대피소가 마련된 각급 학교나 노인복지센터의 운동장과 주차장에는 책걸상 등으로 "종이(화장지), 빵, 물"이라는 글씨를 그리는 장면들이 속출했다. 헬기를 이용해 취재하는 언론사나 구조대 등에게 보내는 구조요청인 셈이다. 철도가 마비되고 주요 도로가 차단되면서 수송이 원활하지 못해 구호물자가 턱없이 부족하다. 16일 규모 7.3의 강진 이후로 집을 버리고 대피소 등에서 지내고 있는 이재민이 20여만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주민들 중에는 이코노미석 증후군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구마모토=박석원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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