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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지원하긴 어려울 텐데”…‘취포자’ 만드는 채용설명회

입력
2017.04.1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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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 잡 페스티벌’이 열린 지난 달 29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취업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드림 잡 페스티벌’이 열린 지난 달 29일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취업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공식 행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웠어요.”

지난달 30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에서 열린 A사 채용설명회에 다녀온 취업준비생 김형원(28ㆍ가명)씨의 실망은 컸다. 채용담당자가 ‘면접꿀팁’이라며 말해준 내용이 업무와 큰 관련이 없었던 데다, 성차별적 요소까지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용담당자는 ‘남자가 패션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면 이상해 보이니 말하지 마라’, ‘여직원은 가사일을 위해 회식 빠지는걸 배려해주지만 남자 직원은 술을 못 먹는다고 하면 사회성이 부족한 거다’ 등을 조언으로 건넸다. 김씨는 “채용설명회 때부터 저런 말을 하는 건‘, 회사 문화에 순종할 사람만 들어오라’는 의도 같아서 의욕이 확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이다’ 같은 조언 대신 ‘고구마’ 발언만

상반기 공채 준비를 위해 꽃놀이를 마다하고 채용설명회로 달려갔던 취준생 중 상당수가 미세먼지를 들이마신 것처럼 답답한 마음만 안고 돌아오고 있다. 기업에 대한 세부 정보를 얻길 기대하며 설명회를 찾았지만 정작 채용담당자에게 들은 건 성별 고정관념이나 경직된 사내 문화가 그대로 드러난 설명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서울 용산구의 한 대학에서 열린 ‘B사 취업특강’에 참가한 이소현(25ㆍ가명)씨가 들은 설명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강을 진행한 전직 B사 인사담당자 출신 강사가 “영업 직무는 밖으로 많이 돌아다니면서 넉살 좋게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무이기 때문에 여성은 지원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원하기도 전에 거”절당한 느낌이었다”며 강사의 발언이 성차별적이었다고 꼬집었다.

취업을 위해선 정치적 견해를 숨겨야 한다는 ‘조언’도 여전히 등장한다. 실제 “소위 ‘촛불집회’나 ‘태극기집회’에 관련된 질문이 나온다면 임원 나이에 따라 답변을 달리하라”는 지침을 알려주는 취업설명회도 눈에 띈다. 취업준비생 조경진(28ㆍ가명)씨도 지난달 31일 참석한 취업컨설팅에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조씨가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지난해 촛불집회에도 여러 번 참석했다”고 말하자, 채용담당자는 “면접에 가면 공부하느라 한번도 못 갔다고 말하라”고 조언한 것이다. 조씨는 “이럴 거면 아예 시나리오를 짜서 다른 인격을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극히 ‘현실적’이라 더 슬픈

문제는 채용설명회에서 나온 조언이 기업 및 취업시장의 실제 분위기를 반영한 지극히 현실적인 내용이라는 것이다. A사 관계자는 “강연담당자가 질문에 자세히 답변하다 보니 자신의 사회생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견해를 조언 차원에서 말한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컨설턴트 신수정씨는 “기업들이 채용설명회에서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라며 “기업도 사회적 공간인 만큼 취업을 원한다면 취준생들이 기업 내부의 분위기를 이해하고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 조언을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이유로 채용설명회 속 발언들이 무조건 용인될 순 없다는 지적이다.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의 인권의식은 점점 성장하고 있는데, 오직 취업이라는 목표를 위해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따르라고 강요해선 안 된다”며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기업 문화와 채용과정도 젊은 세대의 자발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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