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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맞는 연인과 헤어지듯… 퇴사가 자연스러운 사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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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맞는 연인과 헤어지듯… 퇴사가 자연스러운 사회를”

입력
2018.05.30 04:4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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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한 퇴사학교 대표

삼성전자 나와 퇴사 경험 공유

2년간 5000명이 수업 들어

“준비 안 되면 퇴사하지 말고

사회는 실업급여 현실화 등

퇴사 이후의 삶을 도와야”

 

장수한 퇴사학교 대표는 “대리, 과장급인 인사 실무자는 퇴사 등 트렌드를 공부하고 관련 교육을 준비하는 등 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결정권자인 임원이 실무자의 아이디어, 기획에 힘을 실어주고 지원해야 조직에 변화가 온다”고 말했다. 퇴사학교 제공
장수한 퇴사학교 대표는 “대리, 과장급인 인사 실무자는 퇴사 등 트렌드를 공부하고 관련 교육을 준비하는 등 깨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결정권자인 임원이 실무자의 아이디어, 기획에 힘을 실어주고 지원해야 조직에 변화가 온다”고 말했다. 퇴사학교 제공

최근 1, 2년간 국내 출판계의 화두를 꼽는다면 단연 페미니즘과 퇴사다. 페미니즘 저서들이 소설 ‘82년생 김지영’ 같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픽션과 예의 인문학적 ‘분석’을 장착하고 줄줄이 출간됐다면 퇴사 관련 저서는 ‘해 봤더니’가 주를 이룬다. 재작년 번역 출간된 ‘퇴사하겠습니다’를 시작으로 ‘퇴사 준비생의 도쿄’, ‘퇴사학교’ 등 인생 선배들의 경험담이 쏟아졌다.

현실이 수요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이시균 한국고용정보원 부연구위원이 2016년 고용보험 취득자 데이터베이스와 고용보험 상실자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2005~2013년 고용유지율을 비교한 결과 청년층 고용안정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 책들이 ‘타깃’으로 하는 2030세대가 퇴사와 이직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면서, 불안을 해소할 창구로 책을 읽는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2005년 청년층의 6개월 고용유지율은 61.1%, 1년 고용유지율은 43.1%였지만, 2013년에는 6개월 이상 고용유지율이 55.2%, 1년 이상 고용유지율은 39%로 줄었다.

장수한(33) 퇴사학교 대표는 이런 트렌드를 먼저 실천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2015년 4년여 몸담았던 삼성전자를 그만둔 후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퇴사추억’이라는 글을 연재했고, 내친김에 이듬해 퇴사 준비를 교육하는 ‘퇴사학교’를 차렸다. ‘창업 캠프’, ‘퇴사학 개론’ 등의 수업을 듣기 위해 5,000여명이 다녀갔다. 2016년부터 올해 초까지 본보의 ‘삶과 문화’도 연재한 바 있다.

최근 서울 신사동 퇴사학교 사무실에서 만난 장 대표는 “2015년만 해도 퇴사를 주제로 한 글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퇴사를 ‘생각만’ 했는데 누군가 대놓고 말하니까 공론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세를 몰아 최근 장재열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 대표와 책 ‘사직서에는 아무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스노우폭스북스 발행)를 냈다. 두 사람이 ‘학교’와 ‘상담소’를 운영하며 만난 1,000여명의 사례를 통해 이 땅의 직장인이 왜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사는지 원인을 분석하고, 이런 촌극을 바꾸려면 직장인 스스로와 회사, 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들려준다.

장 대표는 퇴사를 고민하는 시기를 3단계로 본다. 첫 단계는 신입사원 1, 2년 차에 현실을 직시하면서 퇴사하는 시기다. 두 번째는 5~10년 차, 경력도 쌓고 돈도 모았으니 이직이나 창업을 고민하는 때다. 장 대표는 이 시기 삼성을 떠났다. 세 번째 단계는 40~50대로 경력과 돈은 있지만 조직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질 때다. “20~30대 퇴사자와 40~50대 퇴사자의 유형은 완전히 달라요. 50대는 평생 직장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습니다. 대기업 큰 회사, 안전한 조직을 벗어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고요. 본인들의 경험으로 실제 그런 회사가 여전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20~30대는 평생직장이 없다는 개념이 있죠. 워라밸이나, 자아 성취에 대한 욕구가 훨씬 강합니다. 과거에 롤모델이 또래 집단, 부모 밖에 없었다면 요즘은 워낙 사회관계망서비스가 발달해 다른 삶의 유형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볼 수도 있고요.”

2030세대가 퇴사를 경험하는 계기는 몇 가지로 나뉜다. ▦날로 증가하는 비정규직이 ‘재계약’에 성공하지 못할 경우 ▦‘재계약’ 여부가 너무 불안한 나머지 자발적으로 먼저 사직서를 내는 경우 ▦반대로 엄청난 노력으로 공무원 등 평생직장을 찾은 뒤 적성과 너무 다른 현실을 체험하고 ‘평생 이렇게 살 수 없어’ 퇴사를 고민하는 경우 등이다.

장수한(오른쪽) 퇴사학교 대표가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퇴사학교 제공
장수한(오른쪽) 퇴사학교 대표가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다. 퇴사학교 제공

그렇다면 사직서를 가슴에 품은 ‘퇴사학교’ 학생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장 대표는 4가지 유형으로 결론이 나뉜다고 말했다. 첫째 다른 직업,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지금 회사를 다니는 것, 둘째 같은 직종을 유지하되 회사를 바꾸는 것, 셋째 창업이나 전직, 넷째 실제 한 달 내로 퇴사하는 경우다. 아이러니하게도 절반 이상이 첫 번째 솔루션, 회사에 더 애착을 갖는 선택을 했단다. “사실 퇴사 여부는 상관이 없어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한지 스스로 탐색하고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죠.” 사직서를 가슴에 품은 직장인에게 장 대표가 들려주고 싶은 충고는 ‘철저히 준비하지 않았다면 절대 퇴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기업도 노력할 부분이 있다. “월급 많이 주고, 고용과 주 5일 확실하게 보장하는데도 직원들이 줄줄이 나갈 때 이해하지 못하는 임원들이 가끔 있어요. 사내 복지가 좋고, 제 시간에 퇴근하고 회사식당 밥 잘 나오는 건 회사를 다니는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죠. 사람들이 원하는 건 두 가지더라고요. 재미있고 흥미를 느끼는 일을 할 수 있느냐와 그걸 통해 성장할 수 있느냐. 물론 이걸 다 들어주는 한국 회사는 없습니다. 다만 이 두 가지를 들어주기 위해 회사가 대단히 신경 쓴다는 메시지는 줘야 합니다. 업무 10가지 중 1,2가지라도 성취감을 줄 수 있는 업무를 주고, 그 비율을 늘려야 해요.”

장기 근속자를 대상으로 한 안식월, 장기 휴직 등도 추천하는 제도다. 푹 쉬고 돌아온 직원은 회사에 더 충성심을 갖는다. 장 대표는 “퇴사가 자연스러운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회사나 정부 차원에서 퇴사를 공론화하고 실업 급여를 현실화 하는 등 직장인의 ‘퇴사 이후 삶’을 고민하고 돕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해요. 회사와 직원도 연인처럼 안 맞을 때 ‘잘 헤어지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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