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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경의 반려배려] 산양들이 내는 소송, 이벤트에 그치지 말기를

입력
2018.02.20 15:15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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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군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태어난 새끼산양.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강원도 양구군 산양증식복원센터에서 태어난 새끼산양. 한국산양보호협회 제공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그냥 이벤트지 뭐.”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구간에 사는 산양 56마리가 21일 산양 연구가와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사업 허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낸다는 기사(본보 2월12일 17면)가 나간 이후 들은 주변의 반응이었다.

사실 동물이 당사자로 소송을 내는 게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국내에서는 낙동강 재두루미 소송사건을 비롯해 도롱뇽, 검은머리물떼새, 황금박쥐 등 동물을 원고로 한 소송이 제기된 바 있으나, 법원에서 한번도 소송당사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자연물이나 자연 자체는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로서의 능력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앞서 지난달 10일 강원도 양양 지역주민과 산악인 등 350여명이 문화재청을 상대로 케이블카 사업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낸 것과 다르지 않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11월 문화재위원회의 반대에도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설악산 천연보호구역의 현상변경을 허가했는데 이는 재량권을 일탈한 것이며, 절차상 하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환경ㆍ동물 전문 변호사들이 멸종위기 1급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을 소송 당사자로 내세우는 것은 케이블카 설치로 직접적 피해를 입는 게 산양임에도 인간의 이익으로 바꿔서 소송을 내는 데 대한 문제 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또 국내에서도 원고 적격을 너무 좁게 인정한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소송이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제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논란은 있지만 인간이 동물의 후견인으로서 또는 대리인으로서 행정처분을 다투거나, 동물 또는 자연물을 원고로 인정한 사례가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점박이올빼미, 그래엄산 붉은 다람쥐사건 등은 동물을 소송 당사자로 인정한 경우로 꼽힌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도 1999년 홋카이도 국립공원 인근의 주민과 환경단체가 터널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국립공원에 서식하는 ‘우는 토끼’를 원고로 소송을 제기, 30년 만에 승소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동물권 변호사인 스티븐 와이즈가 이끄는 '넌휴먼 라이츠 프로젝트'(NhRPㆍ비인간권리협회)는 인간과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는 침팬지가 자연에서 살아가야 하며 동물원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며 인신보호영장을 내달라는 소송을 미국 내에서 수년째 지속해 오고 있다.

지난 2015년 3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장소 부근에서 발견된 산양. 자연공원케이블카반대범국민대책위원회 제공
지난 2015년 3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 장소 부근에서 발견된 산양. 자연공원케이블카반대범국민대책위원회 제공

산양 소송을 이끌고 있는 동물권 연구를 위한 변호사 단체 피앤알(PNR)의 서국화 대표는 “우리나라처럼 성문법 해석을 전제로 하는 대륙법 체계를 가진 경우 판례를 만들기 어렵다는 특성은 있다”면서도 “원고적격 확대 논의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구체적으로 이익을 갖는 자가 해당 처분행위를 다툴 여지를 줘야 한다는 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로 피해를 입는 당사자가 산양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이번 소송이 희화화나 이벤트에 머물지 않고 보다 동물, 자연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면 좋겠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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