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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삐라 바람에 날아간 남북대화

입력
2014.11.03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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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살포로 고위급접촉 무산

남북 서로 대화 원하면서 길 못 찾아

우리 정부가 주도해 돌파구 열어야

모처럼 형성됐던 남북대화 분위기가 구멍 난 풍선 바람 빠지듯 가라 앉았다. 북측은 1일“우리의 최고존엄을 악랄하게 훼손하는 삐라 살포 망동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북남 대화도, 북남 관계개선도 있을 수 없다”고 선언했고, 우리 통일부 대변인은 다음날 “부당한 전제조건”이라고 맞받아쳤다. 남북 양측이 내세우는 명분과 기세에 비춰 가까운 시일 내에 제2차 남북 고위급접촉이 성사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반북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북측이 이를 문제 삼아 2차 남북 고위급접촉을 안 하겠다고 나서자 지난달 초 전격적으로 정권실세 3인을 내려 보내 대화하자고 한 건 도대체 뭐였냐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늘었다. 자신들의 최고존엄을 건드리는 대북전단을 해결하기 위한 꼼수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 김정은 체제가 처한 안팎 상황을 뜯어보면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국면전환의 필요성은 상당히 절실해 보인다. 핵 무력 강화와는 별개로 인민생활 향상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남북관계 개선과 교류협력이 긴요한 상황이다. 대중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가운데 러시아와 일본 통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결국 2000년대 초반 아버지 김정일 시대처럼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게 요즘 김정은 정권의 속셈이 아닐까.

그렇다 해도 남측이 김정은 체제를 진정으로 인정하는지 않는지가 불분명하고 기회만 있으면 흔들려 한다는 의구심이 커진다면 남측과 대화에 나서기 힘든 게 북 체제의 속성이다.

박근혜 정부도 남북대화의 필요성 면에서는 북측에 덜하지 않다. 국가 전체적으로 사위어가는 성장동력을 북한을 포함한 북방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추진해온 온갖 대북구상 즉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 구상,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도 북한을 끌어들이지 못하면 “아이고, 의미 없다”가 된다. 박 대통령이 “전쟁 중에도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강한 대화 의지를 피력한 건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남북 정권이 이렇게 서로 절실한 대화의 필요성을 공유하면서도 일부 단체들이 띄우는 대북전단 풍선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경직된 북한 체제에 기대할 게 많지 않다. 결국 경색의 돌파구를 여는 주도권은 우리 정부가 쥘 수밖에 없다고 본다.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생각이 다른 여러 집단이다.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가 남북관계에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반북단체들의 전단 살포 행위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는다.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해서다.

하지만 관할지역과 군사분계선 너머로 전단을 보내는 것이 과연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지 모르겠다. 이 논란과는 별개로 정부는 전단 살포가 초래하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존, 안보 불안 등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단 살포의 동기도 ‘생계형’ ‘신념형’등 다양하다고 한다. 대북관계와 협상에서 비국가행위자들의 활동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를 놓고 이 정부가 얼마나 고민하는지 궁금하다.

그간 공개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해 북측을 한층 자극했던 탈북자단체들이 3일 기자회견을 갖고 비공개 전단 살포 내지는 “남북이 대화해보라고 당분간 대북전단 살포를 자제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성의에 따라서는 남북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이들의 전단 살포 강행을 어느 정도 자제시킬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더욱이 지금은 본격적으로 북서계절풍이 불기 시작하는 때다. 지속적으로 남쪽으로 바람이 부는 동절기에는 대북전단 풍선을 띄워봐야 군사분계선 너머 북쪽으로 보내기 어렵다. 최근 며칠 잘 관리했으면 내년 봄 남서풍이 부는 시기까지 상당한 시간을 벌 수도 있었다. 북측이 부당한 전제조건을 내걸고 생떼를 쓴다고 책임을 돌리고, 좁은 시야로 자신들의 생각만 고집하는 일부 반북단체들의 무모함을 못마땅해 하기에 앞서 박근혜 정부가 더 지혜로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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