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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관리시스템이 키운 ‘조현병 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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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관리시스템이 키운 ‘조현병 포비아’

입력
2018.07.10 04:40
수정
2018.07.10 11:4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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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 치료하면 범죄 가능성 거의 없지만

퇴원 후 지속적 치료체계 작동 안돼

환자 거주 현황 파악조차 쉽지 않고

정신재활시설 등 인프라 부족ㆍ인력난

“응급입원 조치 쉽게 법 개정을” 지적도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가 저지른 강력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조현병에 대한 공포감이 극도로 커지고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낮은 처벌을 개선해야 한다는 강경 여론도 세를 넓혀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모든 조현병 환자를 잠재적 강력범죄자로 내몰아 맹목적 거부감을 가져서는 곤란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최근의 범죄들이 조현병 관리 시스템 부실에 따른 것인 만큼 이를 메우려는 사회적 노력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8일 경북 영양의 한 시골마을에서는 난동을 부리는 남성 A씨를 제압하려다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다쳐 경찰관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씨는 병원에서 퇴원한 지 두 달도 안된 조현병 환자였다. 같은 날 광주에서도 조현병을 앓던 살인 전과자가 치료 중인 병원 폐쇄병동에서 달아났다가 9일 검거됐다. 또 지난달에는 경북 포항에서 조현병 환자의 흉기 난동으로 1명이 숨졌고, 20대 여성이 길가던 70대 노인을 흉기로 찌르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 국내 난민정책을 놓고 첨예한 논쟁을 일으킨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가 조현병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현병 포비아(공포증)’로 불릴 정도로 여론의 질타는 한층 거세진 상황이다.

조현병은 망상, 환청, 환각 증세 등을 보이는 정신질환이다. 이 병이 위험한 이유는 충동성 때문이다. 혼자 괴성을 지르거나 욕을 하다가도 어떤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분노가 커지고 이른바 ‘액팅아웃(급성 증상 발현)’이 오면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식이다. 특히 정신병력이 참작돼 처벌은 미약하다 보니 대중적 공분 효과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2016년 여성혐오와 조현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촉발한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 피의자도 심신미약이 인정돼 징역 30년형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끔찍한 피해로 이어지는 묻지마 범죄의 속성 상 강력한 처벌이 당연한데도 정신병을 앓았다는 이유 만으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에 그칠 때가 많아 분노와 공포가 동반 상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건은 ‘조현병=흉악범죄’의 등식으로 치부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통계는 달리 말한다. 지난해 대검찰청에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대비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0.08%로 비정신질환자(1.2%)보다 낮았고, 매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조현병 환자를 모두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 찍는 것은 곤란하다는 의미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조현병학회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지난달 “정신질환자로 강력범죄가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에 의한 범죄는 일반인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치료만 제때 받으면 범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다.

문제는 개인의 정신적 문제가 충동적 범죄로 이어지도록 방치하는 부실한 관리 시스템에 있다. A씨 사례가 그런 경우다. 그는 2011년 환경미화원을 때려 숨지게 해 실형을 살고, 출소 후에도 입ㆍ퇴원을 반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범 확률이 높았지만 가장 최근인 5월 말 퇴원 후 제대로 약을 먹지 않아 증세가 심해지는 등 추적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국내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 치료는 ‘발병→입원→퇴원’에 한정돼 있다. 사후 관리를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 및 정신재활시설에서 맡고 있다고는 하지만 조현병 환자를 상대로 한 지속적 치료 체계는 작동하고 있지 않다. 최준호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환자가 퇴원을 해도 동의를 거쳐야만 지역보건소에 관련 자료가 넘어가는데 정신병 이력을 밝히기를 꺼려할 때가 많아 조현병 환자의 거주 현황조차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간 5만명의 정신질환 퇴원자 가운데 한달 안에 다시 외래 진료를 찾는 환자는 65%(대한조현병학회)에 달한다.

정신건강증진센터ㆍ정신재활시설의 인프라 자체도 턱없이 부족하다. 정신재활시설은 2016년 기준 336개로 시ㆍ군ㆍ구별로 평균 1곳 정도에 그치고 있다. 여기에 예산 절반을 국비에서 지원하는 정신건강증진센터와 달리 정신재활시설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을 감당해야 해 굳이 지역주민의 반발을 감당하면서까지 시설을 늘릴 요인이 충분치 않다. 정신건강증진센터 역시 인력 부족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다. A씨 사건이 벌어진 경북만 해도 15곳에 불과한 센터에서 3,132명의 정신질환자를 돌봐야 한다. 한국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 권오용 변호사는 “조현병은 약물 조치가 가장 기초적인 치료여서 단약을 하면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역사회의 체계적 돌봄 시스템 확립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5월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의 경우 조현병 환자 인권을 위해 서로 다른 정신의료기관 등에 소속된 2명 이상의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의 일치된 소견이 있는 경우에만 강제입원을 허용하는데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김성완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퇴원 후 치료가 중단된 상태인 조현병 환자의 경우 ‘응급입원’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자 인권개선도 중요하지만 환자상태를 방치했을 경우 가족이나 타인이 우발적인 사고로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조현병 진료인원 추이_신동준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조현병 진료인원 추이_신동준 기자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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