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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현빈 소동, 그 씁쓸한 뒷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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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현빈 소동, 그 씁쓸한 뒷맛

입력
2011.04.20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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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징병제를 유지하는 건 한마디로 돈 때문이다. 120만 북한정규군의 절반수준인 현 병력을 유지하는 데도 매년 인건비만 9조원 가까이 든다. 이중 병력의 70%가 넘는 사병인건비는 7%도 안 된다. 월급 7만~10만원인 이들을 직업병사로 바꿔 생활급여를 주려면 가뜩이나 부담 큰 국방예산 전액(31조원)을 인건비로만 몽땅 털어 넣어야 한다. 우리 현실에서 지원병제는 실현 불가능이다.

징병제에서 병역은 온전한 희생이다. 가장 아름답고 희망찬 시기의 2년을 뚝 떼어 아무런 보상 없이 넘겨주는 이상의 희생이 어디 있으랴. 이 희생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하는 전제가 평등성, 비(非)차별성이다. 누구나 똑같이 감당하는 게 아니라면 그 순간 희생은 바보짓이 된다. 우리사회가 병역관련 사건마다 유독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니다

그래서 현빈 소동은 지금껏 뒷맛이 씁쓸하다. 도대체 연예인 한 명의 입대에 이렇게 요란을 떤 경우가 또 있었는지 모르겠다. 전차병으로 복무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자주 들지만 우리도 있었다. 1960년대 가수 겸 배우로 독보적이던 남진의 위상은 여러 정상급 연예인 중 한 명인 지금의 현빈보다 훨씬 위였다. 그가 절정기에 해병대에 자원, 베트남전에서 죽을 고비까지 넘긴 일을 최근 털어놓았다. 스스로는 지금까지 생색을 낼 만한 특별한 일로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빈은 입대 결정 때부터 코미디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생각 없는 정치인 등이 쏟아낸 '노블레스 오블리주' 칭송부터 그렇다. 권력과 명성에 상응한 높은 수준의 도덕적 책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징병제에서 병역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지워지는 의무다. 미꾸라지처럼 기피하려는 자들이 많은 탓이나, 자칫 병역이행을 특별한 선택처럼 받아들이게 할 소지가 있어 써서는 안 될 말이었다.

해병대에 의미를 두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육ㆍ해ㆍ공군, 전경, 공익요원 누구에게든 병역은 똑같이 공평한 희생이다. 해병대는 힘든 만큼 자부심이라는 분명한 보상을 받는다(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특히 평생 군대경험을 되씹는 남성사회에선 절대 작지 않은 보상이다). 결국 대차대조표는 같다. 실제 해병대 지원동기는 대개 "힘들어도 멋진 군생활을 하겠다"는 것이다. 현빈도 같은 동기를 댔다. 이미지가 재산인 연예인에게 해병대 복무는 손해 보는 선택이 더욱 아니다.

이후 해프닝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훈련 후반에 병과지원을 받아 소요에 따라 인원을 조정하고, 무작위로 컴퓨터를 돌려 근무지를 배정하는 원칙이 그에겐 동일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그만 먼저 사령부 모병홍보병으로 정했다가 백령도 6여단 보병으로 재배치한 과정도, 복무 중 지원자에 한하는 전문훈련 3종을 그에게만 몽땅 다 받도록 하겠다는 방침도 마찬가지다. 매주 훈련병사진이 오르는 해병대 블로그 '마린보이'가 있다. 부모들이 아들 얼굴 찾으려 눈 빠지게 들여다 보다 번번이 실망하는 그 블로그에서 현빈은 매주 특별한 존재로 늘 눈에 띄었다. 사소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다 병역의 평등성, 비차별성에 위배되는 것들이다.

병역 평등성 훼손은 안돼

갈등과 대립, 분열과 배타가 유난스런 우리사회가 허물어지지 않고 굴러가면서, 때론 계기마다 놀라운 응집력을 보이기도 하는 모습에 불가사의해하는 외국인들이 많다. 포괄적 설명은 안 될지라도 상당 부분 병역이 그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가장 감수성 강한 시기의 또래 젊은이들이 학력, 지역, 재산, 직업 등 모든 조건이 무의미해진 시ㆍ공간에서 함께 뒹군 그 경험이다. 평생 두 번 다시 없는 이 완벽한 평등의 공통경험이 우리의 정체성과 공동체적 인식을 그나마 지켜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역의 평등성과 비차별성을 훼손하는 것은 어쩌면 그나마 우리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마지막 버팀목을 허무는 것일 수도 있다. 현빈 소동을 계기로 다들 병역의 본래 의미와 엄중한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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