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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톰 브래들리( 12월 29일)

입력
2017.12.2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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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LA시장이 된 이래 20년간 재임하며 오늘의 국제도시 LA를 일군 톰 브래들리 전 시장.
1973년 LA시장이 된 이래 20년간 재임하며 오늘의 국제도시 LA를 일군 톰 브래들리 전 시장.

톰 브래들리(Thomas “Tom” Bradley)는 1973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로스앤젤레스 시장에 당선돼 20년 간 재임한 행정가 겸 정치인이다. 재임 중 그는 동성애자 인권법(79년)에 서명했고, 80년대 AIDS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 뉴욕시장과 대비되는 행정가로 큰 인기를 누렸다. 재임 중 LA를 미국인들이 꼽은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중 한 곳으로 만들었고, 84년 올림픽으로 2억여 달러 흑자를 내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국제공항 신축과 지하철ㆍ교통망 정비로 LA를 세계적 도시로 성장시킨 주역도 그였다.

노예 할아버지와 소작인 아버지 아래 텍사스 주 캘버트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을 따라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한 뒤 UCLA를 졸업, 40~61년의 21년 간 LA 경찰로 일했다. 사우스웨스턴대 로스쿨을 나와 61년 변호사가 됐고, 63년 시의원을 거쳐 시장 선거에서 한 차례(69년) 낙선한 끝에 73년 흑인 인구 18% 도시에서 56%의 득표율로 첫 흑인 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5기 20년을 연임했고, 91년 로드니킹 사건과 이듬해 LA폭동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미국 선거에서 흑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는 앞서다가 선거에서는 패배하는 현상을 ‘브래들리 효과’라고 부른다. 톰 브래들리가 82년과 86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했다가 공화당 조지 듀크메이언에게 밀려 낙선한 데서 유래했다. 82년 그는 투표 당일까지 여론조사에서 앞섰고 출구조사에서도 우세했지만, 정작 투표에서는 1.2%(약 10만 표) 차이로 패배했다. 그는 84년 올림픽 성공과 85년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탁월한 지도자상(Spingarn Medal) 수상 등으로 인기가 더 높아졌지만 86년 선거에서 또 졌다. 당시 득표율 격차는 61%와 37%로 더 벌어졌다. 브래들리 효과는, 진보적이고 윤리적인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받는 호평이 득표율에는 반영되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 확장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톰 브래들리는 17년 12월 29일 태어나 98년 9월 29일 별세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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